내 본관을 확인하려면 어디서 참고해야 할까요?
자신의 본관을 확인하고 싶다면 가장 쉬운 방법이 제적등본을 열람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으로 접속하여 본인, 부모 제적등본의 '본'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적등본으로 3대를 추적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족보를 통해 확인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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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은 개인 취미시간이 따로 있었나요?
조선시대 왕들도 나름 개인 취미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세종은 독서와 음악 연구에 관심이 많았으며, 성종은 서예와 그림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숙종은 정원 가꾸기, 태종은 사냥, 고종과 순종은 당구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대개 국왕의 취미 활동은 국정이 끝나고 1~2시간 자유 시간, 또는 명절이나 휴무일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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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권과 신하 권력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되었나요?
조선의 유교적 이상 정치를 구현하는 것을 추구했으며, 이는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왕권은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고, 국정을 장악하였습니다. 반면 신권은 의정부, 삼사 등을 통해 왕권을 견제했습니다.드라마는 허구적 요소가 크기 때문에 갈등을 과정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왕권의 우위를 바탕으로 신하들의 제도적 협력으로 국정을 운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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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이라는 말의 진정한 유래를 알고 싶어요.
양반의 유래는 문반과 무반이 맞습니다. 고려시대부터 국왕 조회시 문관과 무관 양쪽, 즉 동서로 나뉘어 서던 자리를 일컬으면서 양반이라는 명칭이 일반하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문무 고위 관료만이 아니라 양반의 가족, 혈족 전체로 확대하여 부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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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나라의 한신이 만약 괴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한신의 고사성어 '토사구팽'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는 유방을 도와 초한전에서 승리하고 한제국을 세우는데 일등공신입니다. 하지만 유방의 황제권 강화를 위한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괴철은 유방이 제나라를 정벌하자 한신에게 '제나라 왕으로 봉하고 독립세력화'를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했습니다. 만약 괴철의 제안을 수용했다면 제나라를 기반으로 항우, 유방 양대 세력이 가교 역할을 하고, 항우와 유방과 더불어 천하가 3분할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한신은 중재로서 유방으로부터 토사구팽도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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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떤 경로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나요?
우리나라가 과거 베트남 전쟁에 파병한 것은 1965년부터 1974년까지입니다. 베트남 전쟁 파병은 1961년 박정희 등이 5.16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미국으로 부터 인정과 국군의 현대화, 경제 개발 자금 확보를 위해 베트남 파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미군은 베트남 전쟁 파병의 대가로 1966년 브라운 각서를 체결하여 한국군의 현대화, 경제 개발 차관 제공을 약속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려는 자유 우방에 대한 지원도 배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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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 이런거는 작자를 전혀 모르나요
전래동화는 말 그대로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전래동화를 만든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농민,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면서 변형되고 지역별, 시대별로 내용이 상이하게 형성된 것입니다. 또는 19세기 그림 형제처럼 수집하여 정리한 사례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형은 누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원시, 신화 풍속에서 유래되며, 무속과 농경 문화가 반영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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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해서 알고싶은 정린이 입니다!
정치는 '인간의 정치적 인물이다'라 같이 인간의 생활하는데 매우 중요한 활동입니다. 반드시 국가, 지방 정부 등의 기관을 맡아 운영하는 것만이 아니라 조직 생활을 하다보면 정치는 삶의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일반적으로 좌파라 불리는 진보는 개혁적이고, 평등, 변화를 강조하며, 우파인 보수는 자유 전통을 유지하고 개인의 시장 경제를 우선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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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관직에 관련해서 질문드립니다.
좌수군절도사는 노량해전에서 통제사인 이순신이 좌익 함대장으로 경상좌수사에게 맡겨 좌익 지휘를 맡긴 직책으로 해석됩니다. 본래 정대수는 정 3품의 경상좌수사로 경상도 자돠 수군절도사입니다. 즉 경상좌수사인 정대수가 노량 해전 당시 좌익 함대를 맡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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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왕과 황제를 구분하기 시작한 건 어느시대부터인가요?
중국에서 왕과 황제를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진시황때부터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주나라 천자만 '왕'의 칭호를 쓰다가 제후들도 점차 왕의 칭하게 되었으며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삼황오제의 명칭에서 황제라는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황제 아래에는 아들, 공신들에게 왕, 친왕으로 봉해 분봉하였으며, 한나라 이후 왕조 전부 황제를 독점하고 왕은 황제 혈족으로 격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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