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면 담배가 땡긴다고 하는데요 왜 이런 증상이 일어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술의 주성분인 알코올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서 내인성 오피오이드인 도파민을 분비시킵니다. 담배의 니코틴 성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금연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술을 마셨을 경우 도파민 수용체가 활성화되어 비슷한 작용기전을 가진 니코틴에 대한 욕망이 상승됩니다. 이것은 술, 담배, 커피(카페인)도 마찬가지의 효과를 나타냅니다.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프라이밍 효과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제어할 수 있으므로 불가항력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금연 중이신 분이라면 가능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술, 커피 등은 완전하게 절연할 때까지 가능한 자제하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은 개국하고 나고 왜 유교를 숭상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건국의 기반이 성리학을 신봉하는 신진사대부 세력을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그들에 의해 옹립되어진 인물이었고, 이성계도 자신이 왕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서 신진사대부들이 태두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처럼 군부에 의해서 왕권이 흔들리고 약화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불교가 권력화되고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타락하고 국가의 기반을 흔들 정도의 문제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유교 사상을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유교는 성리학적 학문을 기반으로 한 사상이므로 자연스럽게 유교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임시휴전이 연장할 가능성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하마스 측에서 모든 인질을 석방하고, 항복 후 해체하지 않으면 이번 전쟁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계속 전쟁이 이어진다면, 이스라엘과 반이스라엘 아랍권과의 전쟁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미국 대선과도 이어져 있는 상황이므로, 그 때까지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세상에 생명을 앗아가는 무력전쟁은 사라지길 바랍니다.
평가
응원하기
구라치다 라는 말은 일본말의 잔재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구라는 '이야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거짓말을 가리키는 한국어 속어로 입니다.구라의 어원은 명확하지 않지만, 일제 시대 때 도박판에서 쓰던 말이 일반화 되었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일본어 晦ます(くらます, 구라마스, 晦 그믐 회)는 '행방을 감추다, 남의 눈을 속이다'라는 뜻인데 이게 한국 도박판 등에서 타짜들이 속임수를 써서 승부조작을 한다는 뜻의 은어였지만 이것이 확장되어서 거짓말, 속임수라는 뜻이 되었다는 설입니다.이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짓말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속어로 사용되게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 인도의 승려가 지은 저서에 나오는 가라구라충이라는 벌레가 있는데 이는 작지만 바람을 받으면 커져서 모든 것을 삼키는데 거짓말도 한번 하게 되면 또다른 거짓을 낳고 결국에 너무 커져서 감당할 수 없다는 설법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발연기의 어원과 왜 발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발 + 연기'는매우 형편없는 연기를 일컫는 말입니다. 말의 뜻은 발(足)로 글 쓰듯이 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익숙하고 능수능란한 손이 아닌 어색하고 둔탁한 발을 어두에 붙여 합성어를 만들어서 부족한 연기력을 가졌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하고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청나라는 두발의 형태가 변발이었는데 왜 그런 형태를 한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몇가지 설이 있습니다.1. 말을 타고 달릴 때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시야를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해2. 전쟁 시 갑옷과 투구로 열이 올라 머리에 땀이 많이 나 지지고 위생상 좋지 않아 투구를 벗었을 때 열이 빨리 식고 머리의 피부트러블이 적도록 하기 위해3. 물이 부족한 건조한 기후에 대안으로 머리 감는 것을 최소화 하기 위해 (완전 밀지 않은 것은 머리카락에 그 사람의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었음)4. 변발은 만주족의 전통이었는데 청이 중국을 통일 후 다수의 한족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머리를 깎고 복장을 만주족처럼 하도록 통일시켜 만주족화 하기 위해 (일종의 일제시대 일본이 우리에게 자행한 창시개명 내선일체의 목적과 동일함)변발의 실질적 이유는 1, 2, 3번인 것 같고, 중국 전체가 하게 된 이유는 4번인 것 같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귀주대첩의 강감찬장군은 무신이 아니라 문신이였다는게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강감찬(姜邯贊)은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 맞습니다. 983년(성종 3)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예부시랑(禮部侍郞),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 동북면 행영병마사(東北面行營兵馬使), 서북면행영도통사(西北面行營都統使), 서경유수내사시랑평장사(西京留守內史侍郞平章事), 상원수(上元帥)가 되었습니다.조용히 맡은 바 일을 하며 지내다가 목종 때 김치양이 천추태후와 부정을 하며, 정사를 어지럽히다가 무신 강조에 의해 처형되고 목종 또한 유배가는 중 살해되어 현종이 강제 즉위되는 시기에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고려와 요나라의 3차 마지막 전쟁 때 상원수직으로 군단의 지휘관을 하였으나 임시직이고 비상설직이므로 품계가 있는 공식 무관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략과 통솔력으로 전쟁에 승리하였으니 전략가로서 무관의 재능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고려시대 거란에 고려왕이 바뀐것을 거란에 사신을 보내 거란황제의 허가를 받던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는 황제국으로 굉장한 군사력을 가진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불필요한 전쟁을 하지 않기 위해 외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주변 강대국의 요구는 들어주었습니다. 거란이 건국한 요나라는 대진국 발해를 멸망시키고 중원의 패자로 군림하였기에 그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힘이 강해진 요나라는 고려의 땅을 차지하고, 송나라와의 국교를 단절시키고 자신들과 교역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들어주지 않자 1차 침공을 하게 됩니다. 초반에는 자신들이 이기고 있어 항복을 요구하였으나 고려는 이지백, 서희가 결사항전을 요구했고 당시 황제였던 성종이 이를 받아들여 끝까지 싸우게 됩니다. 요나라 소손녕은 안융진을 공격하다가 실패하자 본 전쟁을 쉽게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여 화친을 도모했고 이에 서희가 급파되어 담판을 지었습니다. 요나라 소손녕이 서희에게 지금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는데 요나라 땅인 옛고구려 땅도 차지하고 있으니 돌려주고 조빙을 바치라고 합니다. 이에 서희는 원래 고구려는 우리 민족이고 우리의 땅이다. 우리가 조빙을을 하지 않는 것은 여진 때문이니 여진을 물리치고, 강동6주에 성과 보루를 쌓아 도로를 만든다면 능히 조빙을 할 것이라고 실리를 제안하였습니다. 이에 요나라 소손녕은 이를 받아들였고, 원래의 목적인 송나라와 국교를 단절시키고 자신들이 사대를 받는 목적을 달성하였고, 고려의 서희는 형식적인 사대를 약속하되 전쟁을 끝내고 동여진을 몰아내고는 고려의 영토를 확장, 확정하는 실리를 취했습니다. 이후부터 고려는 황제가 바뀔 때 요나라 황제에게 책봉을 받는 형식적인 절차를 거쳤으나, 그 이후에는 고려는 여전히 황제국의 지위를 영위해나갔습니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송나라와 계속적으로 교류를 해나갔습니다. 이처럼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돌아서서 무시해버리는 고려의 실리적인 외교전략이었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조선시대의 왕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왕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21대 영조입니다. 조선왕조의 임금 27명의 평균수명은 47세였고, 일반인들의 경우 평균수명이 35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조는 83세까지 살았습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절제된 식습관입니다. 원래 왕은 하루에 5번 수라를 받았는데 이를 3번으로 줄였습니다. 그리고 열 두 가지가 넘는 반찬도 반으로 줄였고, 잡곡과 채식을 많이 구성한 건강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지 않으면 업무를 보지 않을 정도로 규칙적인 식사를 했다고도 합니다. 두번째 이유는 건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산을 좋아하여 인삼으로 만든 탕약인 건공탕을 즐겨했고, 63세 이후부터는 매일 어의에게 문진을 하였다고 합니다. 세번째로 정신건강을 위한 스트레스 관리 및 두뇌운동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영조는 살아 생전 8,500편의 시와 글을 남겼습니다. 80세 무렵에는 한 해에만 1,000편이 넘게 썼다고 하니 노년에 드는 우울감이나 치매 증상 등을 예방하는데 좋았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자기 기분을 시원하게 표출하는 스타일이라서 스트레스가 쌓일 틈이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신하나 자식들에게 기분에 따라 욕도 하고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 귀 씻을 물을 가져오라 하여 씻을 정도로 괴짜였습니다.이렇듯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건강을 챙기고, 스트레스를 즉각 푸는 생활습관을 가진 영조가 당시의 어떤 왕보다 장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평가
응원하기
옛날 미인상은 현대와 달리 뚱뚱햇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꼭 그렇지는 않았고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기준이 달랐다고 판단됩니다. 과거 미인도나 인물이 좋고 유명한 기녀들의 그림 등으로 보았을 때 미인의 기준이 뚱뚱한 사람이었다기보다는 지금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다만 지금처럼 깡마른 몸매의 여자는 자식을 낳고 하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예부터 골반의 모양 등을 보았으나 이것은 자손의 번창을 생각한 것이니 인물을 본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미의 대명사인 아프로디테나 비너스 상을 보아도 풍만하지만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것으로 표현되어있습니다.원시부족들의 경우 후덕하게 살찐 모습을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라고 하여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목이 긴 것을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웃나라 중국을 보더라도 대부분 전통적으로 날씬하고 작은 사람을 미인으로 보다가 당나라 때는 좀 통통하고 살집이 있는 사람이 미인으로 인정되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발이 작은 사람을 미인이라고 하여 전족이라 하여 어릴 때부터 발을 꽁꽁 싸매어 기형적으로 작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공동적인 미의 기준은 아래의 몇 가지로 추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도 그것이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고 판단되나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던 것이었지 일반적으로 뚱뚱한 사람이 미인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깨끗하고 맑은 피부건강한 머릿결과 풍성한 모발얼굴의 좌우대칭뚜렷한 이목구비좋은 인상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