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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원래 묘호가 영종이었고 나중에 바꾼 것이 영조라던데 영종과 영조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본래 묘호는 영종(英宗)이었으나 1889년 영조(英祖)로 고쳐집니다. 영종의 영은 생전 영조 본인이 골라 둔 묘호 입니다.1890년 고종 시기 정통성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추숭되는데 추숭할 때 명분은 나라를 오래 안정시키고 백성을 잘 다스린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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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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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에서 마오리족의 비율은 어느정도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뉴질랜드에 거주하는 폴리네시아계 민족으로,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마오리족은 혼혈을 포함해 70만명 가량이고 취업을 위해 호주 등으로 이민간 마오리족까지 합치면 90만에 육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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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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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대표적인 작품은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피아노 협주곡 제 1전 e단조 Op.11 , 장송행진곡, 녹턴 제 1번~ 제 20번, 마주르카 제 1번~제51번 , 발레음악 레 실피드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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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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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의 지명 유래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산은 어금니+뫼 입니다.고대에 오늘날 아산시 북부에 위치한 지역 아술은 어금니 수리 라는 뜻으로 첫음절은 훈차, 뒷음절은 음차됩니다.신라 시대 때 경덕왕의 지명 한화 정책으로 아술현은 음봉현으로 개칭, 어두을 음의 중고 한어 재구음은 ʔˠiɪm으로 어금과 음상사 합니다.고려시대 때 음봉현은 인주현으로 개칭되었다가 현종 9년 아주현으로 개칭, 조선시대 주로 끝나는 고려시대 지명을 산이나 천 등으로 개칭하게 되는데 조선시대 태종 13년 아주현이 아산현으로 개칭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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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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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비변사는 어떠한 기구이고, 어떻게 변천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비변사는 조선시대 군국기무를 관장한 문무합의기구 입니다.조선 초 정치체제는 정무와 군무를 구분, 조선 전기의 정부 구조가 의정부 서사제에서 육조직계제로 변화하는 가운데 군무에 능한 재상계층이 국방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제한되고 병조의 장인 병조판서 역시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이므로 국방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제한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고 군사적 전문성을 구비하고자 한것이 지변사 재상제의 시작이나 성종 때 왜구와 여진의 침입이 계속되자 문관만으로 정확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해 변경의 사정에 밝은 종 2품 이상의 무관도 참석하게 해 문관과 군사 방략을 협의하도록 하는데 이들을 지변사재상이라 합니다.1554년 정규 관청으로 독자적인 합의기관이 되고 이듬해 을묘왜변 이후 상설화 되어 청사가 설치, 도제조, 제조, 낭청이 정해집니다. 비변사의 권한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이후 최고 기구화되어 일반 행정, 정치, 외교, 문화, 경제 등 국내의 일반 행정도 모두 협의 , 결정하게 되어 의정부의 기능은 마비됩니다.임진왜란 떄부터 의정부와 공조를 제외한 5조의 판서와 참판이 비변사의 관직을 겸하고 , 각 군영 대장, 대제학, 강화 유수 등 국가의 중요한 관원이 비변사에 참여, 그에 따라 사실상 의정부의 기능을 대신해 행정, 국방, 인사 등이 처리되므로 지나치게 확대된 기능으로 존폐 논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이와 같은 비변사 기능의 확대와 강화는 의정부와 6조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행정체제를 문란하게 만든다는 의식으로 1864년 의정부와 비변사의 업무 한계를 규정해 외교, 국방, 치안 관계를 제외한 모든 사무를 의정부에 이관, 이듬해 비변사는 의정부에 그 기능과 체계가 완전히 흡수되면서 폐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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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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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뿌리가 같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경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아들이 이스마엘과 이삭이고 아버지는 데라 입니다.그러나 꾸란 6:74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아들이 이스마엘이고 아버지가 아자르 입니다.즉 둘의 뿌리는 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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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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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희지가 쓴 난정서는 어떤 내용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 동진의 왕희지가 쓴 행서첩으로 동진 목제 영화 9년 3월 3일 회계산음의 난정에서 당시의 명사 40여명이 어울려 놀며 시를 지었는데 그 시집에 붙인 서문을 왕희지가 썼습니다 이를 난정서라 합니다.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영화 9년 계축년 3월 초 회계군 산음현의 난정에 모여 수계 행사를 열었다. 많은 선비들이 모두 이르고 젊은이와 어른들이 다 모였다. 이곳은 높은 산과 고개가 있고 깊은 숲과 울창한 대나무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여울이 좌우로 띠를 이루었다. 흐르는 물을 끌어 잔을 띄우는 물굽이를 만들고 순서대로 자리를 잡으니 비록 성대한 풍악은 없어도 술 한잔에 시 한수씩 읊으며 또한 그윽한 정회를 펼칠만 하였다 이 날은 맑은 날씨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머리를 들어 세상의 넓음을 우러르고 고개를 숙여 사물의 흥성함을 살피니 경치를 둘러보며 정회를 펼침은 족히 보고 듣는 즐거움을 다하기에 참으로 기쁘기 한이 없다. 무릇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한 평생을 살아가되, 어떤 사람은 벗을 마주하여 서로 회포를 나누고 어떤 사람은 정회를 대자연에 맞기며 유람을 한다. 비록 나아감과 머물음이 서로 다르고, 고요함과 시끄러움도 같지 않건만 자신의 처지를 만족하며 잠시나마 득의하면 기쁘고 흡족하여 장차 늙어 죽으리라는 것도 모르는 법이다.흥에 겨우면 다시 권태롭고 감정이란 세상사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감흥이란 단지 그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예전의 기쁨도 잠깐 사이에 곧 시들해지니 더더욱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사람 목숨의 길고 짧음이 비록 하늘에 달려있다 해도 결국에는 죽어여 할뿐임에랴, 옛사람이 이르기를 '삶과 죽음은 역시 중대한 일이다.'라고 했으니 어찌 비통하지 않은가, 매번 옛사람들이 감흥을 일으켰던 까닭을 살펴보면 마치 계약문서가 들어맞듯 일치하여 그들의 문장을 보면 탄식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가슴에 와닿지 않음이 없었다 그런 즉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말이 얼마나 헛된 것이며 장수와 요절이 똑같다는 말이 거짓임을 알겠다. 후세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를 보는 것 또한 오늘의 우리가 옛 사람을 보는 듯하리라. 슬프도다. 오늘 모임을 가졌던 사람들이 모두 그 술회를 시로 적었으니 비록 후세에는 세상이 달라져도 정회가 일어나는 까닭은 한가지인즉 뒤엣 사람이 이 글을 보면 또한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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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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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의 주목적은 어떤것인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홍문관은 조선시대 궁중의 경서, 사적의 관리, 문한의 처리 및 왕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맡았습니다.즉 왕실의 책이나 문서 관리, 정책을 연구해 임금의 정치에 도움을 준 관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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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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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단공원의 의미와 유래를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장충단공원은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 때 순국한 충신, 열사들을 제사하기 위해 1900년 9월 대한제국 고종이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설치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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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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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장성의 주목적은 어떻게 되는지?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천리장성은 고구려가 당나라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631년 축조를 시작한 성입니다.평안남도 대흥군 덕흥리에 위치, 오늘의 자강도 초산에서 함경남도 정쳥에 이르는 천여리의 장성이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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