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아직까지 반환받지 못하고 있는 문화재는 대표적으로 어떤것들이 있는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세종대왕의 왕자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광경을 화가인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 신라의 승려혜초가 인도 부근 여러 나라를 답사하고 그 나라의 종교, 정치, 문화 등을 기록한 왕오천축국전, 조선에서 제작된 대형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입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칭기즈칸이 고려에 왜 공격했습니까?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칭기즈 칸 생전에는 고려에 대한 침공은 없었습니다. 1218년 거란의 잔당 소탕을 며운으로 고려에 진입한 것이 고려와 동맹을 맺기 위해서 의도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고, 고려사 조충전에 칭기즈 칸의 명령으로 형제 맹약을 맺는다고 적혀있습니다.고려와 몽골의 전쟁은 오고타이 칸 때 발발한 것입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비스마르크가 남긴 업적에는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절묘한 외교술로 1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을 주도하였고 내부적으로 현대 사회보장제도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정묘호란으로 조선은 어떠한 피해를 입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과 후금의 화약은 두 나라가 다같이 만족하지 못했는데 조선은 후금과의 형제 관계를 굴욕적인 것으로 인식했고, 더욱이 막대한 세폐와 수시로 강요하는 물자의 조달에 따르는 과중한 경제적 부담에 반발, 배금의 길을 굳혔습니다.후금 역시 세폐와 중강의 개시 등으로 경제적 이들을 취할수 있게 되었지만 모문룡의 세력을 공명하지 못했고 조선의 배금 경향이 날로 고조되는데 불안을 느끼며 이런 양국 관계는 후금이 더 팽창된 세력을 배경으로 조선에 강압적인 태도를 강화하여 병자호란의 원인이 됩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영정법과 양척동일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종 때 제정된 공법은 전분 6등, 연분9등으로 나누어 총 54등급의 과세 단위를 설정해 그 판정과 운영이 복잡하고 전체적으로 세율이 높아 현실적으로 시행되기 어려워 15세기 말부터 전세는 풍흉과 관계없이 최저 세율에 따라 쌀 4~6두를 고정적으로 징수하는 것이 관례화되었고 영정법은 이러한 관례를 법제화하고 세수를 늘리기 위해 그 해의 풍흉에 관계없이 농지의 비옥도에 따라 9등급의 새로운 수세액을 정한 것으로 상상전 20두, 상중전 18두, 상하전 16두, 중상전 14두, 중중전 12두, 중하전 10두, 하상전 8두, 하중전 6두, 하하전 4두였습니다.농지에는 전세 외에도 1결당 대동미 12두, 삼수미 2두, 4결작 2두의 정규 부세와 여러가지 명목의 수수료, 운송비, 자연소모비 등의 잡부금이 부가되어 과중한 부담이었고 이러한 부담은 소작동민에게 전가되어 임진왜란 후 국가의 전세 수취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그래서 조정에서는 각 도의 농지 총 결수에 재해 면적을 계산해 삭감하고 수세의 총액을 할당 징수하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그것이 1760년 시행된 비총법 입니다.영정법으로 인한 재정 수입의 감소를 보충하기 위해 양전 사업을 강화했는데 양척동일법으로 토지를 측량하는 자를 통일하여 이것을 기준으로 수확량을 계산했습니다.결과는 전세율이 낮아졌지만 농민의 대다수가 자신의 토지가 없는 소작농이므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부담이 늘었으며 국가에서 부족한 전세를 보충하기 위해 수수료, 운송비, 자연소모 충당비 등의 명목으로 여러 잡세를 징수해 오히려 농민의 부담이 더 증가했습니다.
학문 /
역사
23.04.26
5.0
1명 평가
0
0
선조 대 붕당 정치가 시작 되었는데, 전개 양상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선조 때 사림파는 핵심 계층으로 자리잡게 되고 사림파가 권력의 중심에 서면서 서서히 붕당의 조짐이 보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노당-소당 분쟁입니다.노당은 영의정 이준경을 중심으로 하는 원로 사림들의 세력으로 중종 때부터 이어져오던 권신 집권기 와중에도 조정에 남았지만 권신에 굴복하지 않고 소신을 지킨 이들이었고 소당은 조식, 서경덕, 이황을 비롯해 재야에 내려가 학문을 닦은 처사들을 추종하는 젊은 사림들을 일컫느데 이들의 수장은 기대승입니다.이황을 비롯한 재야 사림들이 선조가 즉위 후 벼슬에 뜻을 두지 않다가 기대승을 비롯한 소당의 인물들은 윤원형 밑에서 해먹은 영감을은 물러가라며 주장합니다.이준경은 격노했고 소당을 소기묘라 부르며 기묘사화 때 조광조의 만행을 보고도 정신을 못차린다고 비난합니다 이때 분쟁은 이준경이 구 윤원형 세력이 기묘사화 때의 일을 한번 재현해보자고 접근한 것을 물리치면서 선을 지킨 덕에 유혈사태로 격화되지는 않았는데 노당의 수장 이준경이 얼마 지나지 않고 죽고 소당의 수장 기대승도 낙향했다가 46세를 일기로 사망하는 바람에 일단락 되었습니다.수장인 이준경과 기대승이 죽으면서 노당은 중심을 잃고 와해되었고 이준경의 뒤를 이어 노당의 수장 노릇을 할법한 원로 사림 유희춘, 백인걸, 노수신 등이 소당을 지지해 사림의 분열은 봉합되었습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조선시대때 태상왕에 관련해서 궁금한점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에서는 태조, 정종, 태종이 살아서 왕위를 물려줬고 태종 재위 기간 태조와 정종이 공존했고, 세종치세엔 정종과 태종이 공존했습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내시들도 결혼을 했다는데 모두에게 허용 된걸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의 환관들은 공식적으로 결혼이 가능했고 양자를 들이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초등학교시절 운동회가 생각이 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국에서 열리는 운동회는 일본에서 기원된 것이며, 일본에서 운동회의 기원은 1874년 해군병학교 기숙사에서 열린 경투유희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학교 차원에서의 현재와 같은 운동회는 삿포로농학교에서 1878년 5월 25일에 열린 운동회가 학교연례행사로 정착한 사례이며 이 운동회는 삿포로에 있는 초등학교, 중학교에도 점점 전파되었고 또 1883년 도쿄대학에서 정기적으로 열리기 시작했으며 1885년 초대 문부대신에 취임한 모리 아리노리가 체육에 의한 집단 훈련을 중시하고 운동회를 장려하면서 이후 대부분의 학교에서 운동회를 개최,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현재까지 남은것입니다.1960년대 대한민국의 운동회는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제를 하는 현장같았고 운동회가 열리면 부모님 , 친척들까지 출동해 한자리에 모여 운동회에 참가하는 자녀가 쉬는시간이 되면 함께 도시락을 먹기도했습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농업에서 고랭지농업이라는게 어떤농업인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랭지 농업은 고원이나 산지 따위의 여름철에 서늘한 곳에서 하는 농업을 말합니다.
학문 /
역사
23.04.26
0
0
1351
1352
1353
1354
1355
1356
1357
1358
1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