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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기가 좋아하는 '모빌'. 이 모빌은 언제 어떻게 생겨나게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빌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여러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습니다.일종의 장식물로 오래전부터 여러나라에서 사용되어 온것으로 보이며 모빌이란 단어의 사용은 1923년 미국의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가 이와 같은 것을 만들어 오브제 모빌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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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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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가 문헌에 처음 기록된 적은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잡채는 17세기 조선시대의 광해군 재위 시절 궁중연화에서 처음 선보인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잡채의 요리법은 1670년쯤 장계향이 한글로 쓴 요리책에 등장합니다.또 한가지 음식디미방이라는 책에도 잡채 만드는 방법이 나오는데 이 책은 약 200년 후인 1800년 중엽에 쓰인 것으로 추정합니다.1921년 조선요리 제법에서는 잡채를 나물의 한 종류로 분류하고 일 년 내내 먹을수있는 사계절 음식으로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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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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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철벽이라는 고사성어는 어디에서 유래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금성철벽은 쇠로 만든 성과 철로 만든 벽이라는 뜻으로 방어 시설이 잘 되어있어 공격하기 어려운 성을 이르는 말 입니다.진시황이 35살의 한창 나이로 죽고 나자 진나라는 금방 혼란에 빠지고 뒤를 이은 2세 황제 호해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기 때문에 진나라에 패한 전국 시대 강국들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명분을 내건 야심만만한 실력자들이 저마다 왕을 자칭하며 사방에서 들고일어났는데, 그중 한사람인 무신은 스스로 무신군이라 외치며 조나라 땅을 차지하고 무섭게 세력을 넓혔습니다.머잖아 그 공격권 안에 들어가게 될 산동성 범양현의 현령 서공은 걱정이 태산 같았고 비겁하게 야반도주 할수 없고, 그냥 있자나 목숨이 위태로워 좌불안석으로 골머리를 앓던 서공의 머리에 번개같이 떠오른 인물이었습니다. 근처에 살고있는 웅변가로 이름난 괴통이었습니다.'옳거니!' 서공은 무릎을 치고 즉시 괴통을 초정해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고 지혜를 구합니다.서공의 말을 듣고 난 괴통이 말하길 ' 사실 진나라가 그동안 폭정을 일삼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원한은 하늘에 뻗쳐있는 실정입니다. 거기다 무신군의 군대가 들이닥칠 것이니, 대인처럼 관직에 계신 분들의 처지는 사실 매우 위급합니다.''그래서 그대의 지혜를 빌리자는 것 아니겠소. 제발 나를 좀 도와주구려.''별로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제가 무신군을 찾아가 잠시 혀를 놀리는 수고를 하는 것만으로도 대인께서는 무사하게 되실 뿐 아니오라, 오히려 더욱 귀하게 되실수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지요.'귀가 번쩍 뜨인 서공이 계책을 가르쳐 달라고 애걸복걸하자 괴통은 이러저어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다음 무신군을 만나러 갔고 이윽고 무신군과 대면한 괴통은 싸우지 않고 여러 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러 왔다고 태연히 말했습니다.'성을 공략하여 빼앗고 그 성주를 죽이는 통상적인 방법은 애꿎은 백성들이 피를 많이 흘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성주들이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마치 끓는 못에 둘러싸인 무쇠 성처럼 방비를 단단히 하면 함락 자체가 여간 어렵지 않지요, 그러니까 각 성주들을 설득하여 스스로 백기를 들고 공 앞에 엎드리도록 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저는 공에게 그 설득의 적임자를 천거할까 합니다.''그게 누구란 말이오?''범양 현령 서공이올시다. 그 사람은 공께 항복할 뜻을 가지고 있은 즉, 찾아오면 극진히 맞아 우대하시고 다른 성주들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서공은 공의 은의에 감격하여 적극 협조할 것이 분명하며, 다른 성주들도 범양 현령이 무사함을 보고 안심하고 공의 휘하에 앞다투어 들어올 것입니다. 이야말로 수고하지 않고 큰 이익을 보는 셈 아니겠습니까?'이말을 들은 무신군은 매우 기뻐 괴통의 계책대로 먼저 서공을 받아들이고 그를 앞에 내세워 각성주들을 설득한 경과 단시일에 큰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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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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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역사에서 정착해서 농경생활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 민족은 만주와 요하 서쪽 지방 및 한반도를 중심으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의 각 문화 단계를 거치며 발전했는데구석기 시대는 지금부터 약 50만년전, 신석기는 기원전 4천년경에 이루어졌는데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은 빗살무늬 토기입니다.신석기 인들은 주로 물가에서 살면서 어로와 수렵, 채집 경제생활을 했고 원시 농경생활도 했습니다그 뒤 기원전 10세기 경부터 청동기 문화가 성립되는데 이 시대에 이르러 농경이 본격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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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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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국이었던 로마가 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로마가 망한 이유는 약한 군사력과 귀족과 관료의 부패, 급격한 기후 변화, 기독교의 특권, 상수도 시설을 원인으로 합니다.로마는 로마 가도, 수도교, 아우구스투스 영묘, 카타콤, 폼페이, 콜로세움 등의 유적이 있으며 라틴어 표기에 사용되었던 문자를 바탕으로 하는 문자인 로마자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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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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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대의 역할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설치해 밤에는 횃불을 피워 , 낮에는 연기를 올려 외적이 침입하거나 난리가 일어났을 때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했습니다.봉수대에 5개의 굴뚝이 있으며 굴뚝에 피어오르는 불이나 연기는 개수에 따라 각각의미를 달리합니다.1개- 아무 일 없이 평화롭다.2개- 저 멀리 무언가 나타났다.3개- 우리쪽으로 다가온다4개- 적이 쳐들어왔다.5개- 교전상태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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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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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이 어떤 것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79년 10월 16일부터 10월 20일까지 부산직할시와 경상남도 마산시 등의 지역에서 일어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으로 박정희의 제 4공화국 체제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으로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1979년 5월 3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회복의 기치를 든 김영삼이 총재로 당선 된 후 정국은 여야격돌로 더욱 경색되었습니다.이어 8월 11일 YH사건, 9월8일 김영삼에 대한 총재직 정지 가처분 결정, 10월 4일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 등 일련의 사건이 발생함으로 유신 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크게 고조되었고 그러한 가운데 10월 13일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하나 공화당과 유정회 합동조정회의에서 사퇴서 선별수리론이 제기 되어 부산 및 마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의 민심을 자극했습니다.김영삼의 정치적 본거지인 부산에서 10월 15일 부산대학에서 민주선언문이 배포되고 16일 5000여명의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 시민들이 합세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전개되었습니다.시위대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정치탄압 중단과 유신 정권 타도 등을 외치며 파출소, 경찰서, 도청, 세무서, 방송국 등을 파괴하였고 18일과 19일에 마산 및 창원 지역으로 시위가 확산되었습니다.이에 정부는 18일 0시 부산 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1058명을 연행,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 20일 정오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군을 출동시켜 505명을 연행,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합니다.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시위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일주일 채 지나지 않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사살한 10.26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신 체제는 종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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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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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경기에서 발리라는 용어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테니스에서 공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노바운드로 받아 넘기는 것을 의미합니다.이 기술은 주로 선수가 네트에 가깝게 있는 상황에서 사용되며 상황에 따라 코트의 중간이나 베이스라인 근처에서도 사용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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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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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의 창은 어떤 물건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독교의 성유물의 하나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롱기누스가 그의 옆구리를 찌르는데 쓰인 창입니다.요한목음서 19장 34절 예수의 시신을 창으로 찌른것을 언급하고 그 경위까지 설명하데, 유다인들은 안식일 까지 시체를 십자가 위에 두지 않기 위해 신속히 예수와 다른 두 죄수를 처리해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했고 이에 군사들이 예수와 함께 못박힌 2명의 다리를 부러뜨려 강제로 죽였으나 그때 이미 예수는 사망한 상태로 진짜 죽었는지 확인하고자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보았습니다.후에 켈트 신화나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창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주변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파괴력과 성스러운 치유 능력을 가진 무기로 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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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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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교황청 경비는 스위스 근위대만 맡고있는걸까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의 군대가 로마를 약탈하는 소위 사코 디 로마 전투가 벌어지는데 당시 교황령은 수많은 동맹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지원군이 오지 않거나 도망쳤고, 스위스 근위대 500명과 오합지졸 시민군 4500여명만이 로마의 성벽을 지켰습니다.이에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7세는 스위스 근위대에게 조국으로 돌아갈것을 권고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남겠다는 맹세를 지켜야 한다며 교황의 권고를 거부합니다.5월6일 성벽이 뚫리고 근위대는 189명만 남았지만 이들은 도시를 약탈하며 끝없이 밀려오는 신성로마제국 용병대에 맞서 스위스 근위병의 저항이라는 이름이 붙은 마지막 전투를 치루게 됩니다.교황이 피신할 시간을 벌기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 계단에서 마지막까지 처절하게 싸워 근위병 189명 중 147명이 전사했습니다.이에 감복한 교황청은 이들을 무한히 신뢰하게 되어 교황 바오로 3세 이후 교황청은 오직 스위스 근위대만 고용하도록 못박았고 이 전통이 지금까지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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