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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자정리 거자필반은 무슨의미 인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불교용어에서 온 말입니다. 불교경전인 《유교경》에는 "세상은 모두 덧없는 것이니 만나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世皆無常, 會必有離)."라고 하였고, 《열반경(涅盤經)》에는 "흥성함이 있으면 반드시 쇠퇴함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夫盛必有衰, 合會有別離)."라는 말이 나옵니다.여기서 전하여 회자정리 거자필반은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말로, 생명이 있는 것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뜻의 생자필멸(生者必滅)과 함께 어떤 일이나 인간관계에서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말로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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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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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소설 서유기는 어느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가요?
안녕하세요. 차재우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당나라를 배경으로 했습니다. 삼장법사와 저팔계, 사오정과 인도까지 여행하는 소설이지요. 도중에 요괴도 물리치고요.재미있는 소설 이었습니다. 저도 세번 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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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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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창조론의 뒷바침되는 논리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창조론의 기반은 아무래도 성경이겠지요. 신을 믿는 것이고 그가 인간을 만들어 우리가 발전했다. 창조론과 진화론 어떤것이 옳은지는 논란이 분분하지만 밝히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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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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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4대문명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4대 문명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1. 황하 문명(중국)2. 메소포타미아 문명(중동)3. 나일강 문명(이집트)4. 인더스 문명(인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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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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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어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로 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에도막부가 일본을 지배하고 있었고 봉건적인 사회였습니다. 메이지유신이후 왕정보고되면서 일본은 급속히 개혁을 시작합니다.일본도 서양에 지배 당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자국을 방어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국방비를 증액했고집중적으로 육성하고 그 후 어느정도 국내 방어가 가능해 진 후 외국과 전쟁을 벌이고 침략을 시작합니다.일본 근대시대는 1868년 부터 일본이 패망한 1945년 까지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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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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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왜곡은 왜 멈출 줄 모르나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국제사회는 아직까지도 힘의 논리로 움직입니다. 제국주의시대보다는 나아졌지만 세계는 군사력과 경제력 인구 등의 힘의 논리가 작용합니다. 우리가 우리 목소리를 내려면 더 강해져야 하고 강한 무기로 전쟁 억제력을 가져야 합니다. 역사는 되풀이 됨을 알아야 하고 강한 힘을 육성해야지만 우리도 우리의 목소리를 낼수 있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논리적으로 안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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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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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고려보다 더 나은 세상인가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여러면으로 봐야 하지만 확실히 발전하였고 근대화 되기는 했습니다.성리학을 배웠던 신진사대부들은 조선초기 실리를 추구하고 백성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세종조때는세종이 황희를 강원도 지역으로 보내 지방 수령들의 잘못한 바를 바로 잡고 흉년시에도 백성들을 도와주는 제도도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 다짐이 쇠퇴하고 고려말보다 더 혼란스러운 시대가 정조 사후 부터는펼쳐집니다. 오죽하면 민란의 시대라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여성의 권리는 고려때가 더 있었고 조선시대에여성의 권위가 실추된것은 성리학의 영향 이었습니다. 가부장적인 집안 문화에 남자가 중심이었고 여자는 출가외인으로 취급하여 재산상속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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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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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우금령이 반포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조선왕조실록>에는 우금령(牛禁令)이 초대 조선 왕인 태조로부터 23대 순조에 이르기까지 22회 발령됐다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조선시대 우금령이란 말 그대로 소의 도축을 금지하라는 왕의 명령인데요.소의 도축을 금지하라고 왕이 지시할 정도라면 아마 소를 도축해서 먹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것 같습니다. 아마도 조선이 농업국가였기 때문에 농사일에 가장 중요한 역용우를 지켜야 하는 일이 중요했겠죠.소고기를 맛보고자 하는 백성들의 욕망이 크다 보니 소를 너무 많이 도축해서 농사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고민 했을 왕의 심사도 이해할 만합니다. 한편 우금령 때문에 몰래 소를 도축한 이들은 엄하게 처벌됐다고 합니다.우금령을 위반한 백성들은 태형에 처해 투옥되고, 조정의 관리라면 파직되거나 변방으로 내쫓겼다 합니다.조선시대에 소는 농사를 위해 정말 중요한 가축이었고 조선뿐만이 아니라 당시 일본도 소 도축을 금하여 서양인에 비해 체구가 작았다는기록이 있습니다. 일본이 근대화 된 후 메이지 천황이 자신도 소고기를 먹을테니 백성들도 소고기를 먹으라고 장려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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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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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초의 재화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문명이 성립되고 도시를 중심으로 관개시설이 정비되면서 곡물을 대규모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단, 메소포타미아는 기후가 건조해 곡물을 재배하지 못했고, 목축민들은 농민들에게 곡물을 얻어 생활했습니다. 상인이나 정치 지배자는 이들 목축민에게 곡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물품 거래, 즉 상업이 발달했죠. 그와 동시에 물품과 물품을 안정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교환권’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내 부피가 늘지도 썩지도 않는 은 등의 금속 조각이 좋은 교환증(화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출현한 것이 금속 화폐이며, 상업을 통해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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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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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정책 중 탕평책에서 궁금한게 있어요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정조는 붕당정치를 견제하기 위해서 청류(淸流) 세력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영조 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노론의 우위를 주장하는 척신 세력과 이들을 타파하려는 노선인 청류를 자처하는 세력이 정국을 주도하였다.정조는 그동안 척신 세력에 비판을 가해온 청류를 조정의 중심부로 끌어들여 이른바 탕평을 펼쳤습니다.아울러 그동안 정치에서 소외되었던 남인세력을 등용하여 정치에 참여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공개된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을 통해서 보면 그의 정적이었다고 말해지는 벽파 세력까지도 협력 세력으로 포섭하여 정치적 통합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이런 탕평책의 추진과정에서 정권의 물리력 확보를 목적으로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을 설치하였습니다다시말해 청류세력이란 명분과 깨끗함을 지켜 기존세력을 견제하였던 정조의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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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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