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유가 무엇인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팔만대장경은 동아시아의 현존하는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완본(完本)입니다. 팔만대장경에 포함되어 있는 서적 가운데에는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유일본 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이들 서적은 팔만대장경이 현존하고 있기에 그 흔적을 살필 수 있었고 또한 팔만대장경은 당대에 유통되던 초조대장경과 개보장, 거란장 등을 세밀하게 교감하여 제작한 것인 까닭에, 대장경 가운데 내용이 가장 정확하고 오자가 적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이 1885년 대일본교정대장경과 1924년 대정신수대장경을 간행할 때 모두 고려 대장경을 참고해서 만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불교가 보편적인 문화로 향유되던 중세 동아시아에서 대장경의 조성은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과 기술을 상징하였는데 경판과 장경판전이 국보일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그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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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에 호족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일 신라 말기로 갈수록 경주의 중앙 정치는 귀족들 사이의 권력 쟁탈전이 시작되었고 , 그와 동시에 지방에서는 경주의 귀족 세력을 위협하는 독자적인 정치 세력으로 호족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훗날 후백제와 후고구려를 세워 신라에 반기를 든 견훤(867∼936)과 궁예( 870∼918)가 신흥 지방 호족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들 지방 호족들은 지방에 근거지를 두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중앙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후 삼국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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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아령파천'이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령 파천이 아니라 아관 파천 입니다. 아관파천은 1896년 2월 11일부터 다음해 2월 25일까지 조선의 고종과 왕태자였던 순종이 명성왕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 이후 일본군과 친일내각이 장악한경복궁(건청궁)을 탈출해 어가를 러시아(아라사)공관]으로 옮겨 피신한 사건을 말하는 것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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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의 우리 민족은 같은 언어를 사용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구려에서 백제나 신라등에 첩자( 세작)을 보내어 각나라의 형편을 샆리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은 기본적으로 한문을 쓰고 언어적으로도 크게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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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세계적 규모의 국제 전쟁이라고 외국에서 평가 한다는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 왜란은 일본과 조선, 그리고 명나라 아시아의 3개국이 참가한 전쟁 이기에 국제 적인 전쟁이 맞습니다. 그리고 전쟁 기관과 규모도 7년이란 오랜 시간동안 벌어졌고 일본군 33만, 조선군17만, 명나라 군 5만 총 55만여명의 군대가 동원된 대규모 전쟁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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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어디까지 영토를 정벌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폴레옹의 전성기때의 프랑스는 스페인을 제외한 남부 유럽 전체, 그리고 이태리 북부, 러시아를 제외한 동부 유럽 등 거의 유럽 전역을 프랑스의 영토로 두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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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공무원 시험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는 어떠한 내용들을 주로 물어보았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왕들은 당면 과제들을 주로 괴거 시험에서 물어 봤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왜구들이 남해안에 들끊는데 이를 해결 하기 위한 방법이라 던지 금주령을 내려도 계속 해서 민가에서는 술을 만들어 파는 데 이를 완전히 금지 할 벙법은 없는지 등등 현실적이고 중요한 사안들을 과거 시험 문제로 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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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상소는 모두 임금에게 보고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소문은 보통 백성이 올리는게 아니라 관료가 작성하여 승정원(承政院)에 제출하면 승정원을 통해 국왕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상소문이 올라가면 국왕은 해당 상소를 열람하고 난 후 상소문 말미에 국왕의 답변을 적어 돌려주었는데 이를 ‘비답(批答)’이라 하였습니다. 일반 백성이 왕에게 올리는 글은 상언이라고 하는데 상언이 상소(上疏)와 다른 점은 상소는 대개 관원과 유생·사림이 국왕에게 올리는 문서양식이나, 상언은 관원으로서가 아니라 사인(私人)으로서 올리는 것이다. 또 상소에는 이두(吏讀)를 쓰지 않으나 상언에는 이두를 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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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에 케이크를 먹는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양에서 케이크의 기원에 대해서는 세가지 정도의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대 로마인들이 납작한 반죽에에 꿀을 바르고 위에 견과류를 뿌려서 만든 빵과 함께 생일을 축하했다는 게 최초의 케이크라고 하는 설입니다. 두 번째는, 중세 독일에서 아기 예수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빵에서 유래했다는 것이구요. 마지막으로는 고대 그리스에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기도하기 위해 달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게 최초라고도 합니다. 지금 우리가 흔히 먹는 케이크는 약 15세기 초부터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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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조선시대의 '도감'은 몇급 관청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도감은 고려·조선 시대 국가의 중대사를 관장하기 위해 수시로 설립한 임시관서 입니다. 궁궐을 축조하기 위해 궁궐도감을, 군사들의 의복을 관장하기 위해 정포도감(征袍都監)을, 토지의 분급을 위해 급전도감(給田都監)을, 토지와 노비 분급을 정리하기 위해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을,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관할하기 위한 입법기관으로 식목도감(式目都監)을 두기도 하였다고 합니다.이들 관서의 다수에 도제조가 설치되어 총괄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도제조는 정 1품이고 지금으로 따지면 장관급 혹은 그 이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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