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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어떤 객관적 근거에 의해 평가하는걸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술의 가치가 주관적이며 모든 개인이 자신의 평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사실이 아닙니다. 건물 설계, 질병 치료법, 비행기 공학 및 기타 모든 발명과 분야의 장점을 결정하는 것처럼 얼마나 효과적인 지에 따라 예술의 가치를 동일한 수준으로 결정할 수도 있는 것 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예술이 이러한 주제와 동일하게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먼저 예술의 중요성을 이해 해야 합니다.과학적 이론과 틀의 중요성이 변하는 것처럼 예술 작품의 가치도 인간의 판단의 지속적인 자기 통제주기에서 변동합니다. 오늘날 예외적으로 여겨 질 수있는 예술은 미래에 잊혀 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술 비평은 중요하고 까다로운 직업입니다. 예술의 가치를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일정량의 예측과 역사적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 분야의 실수는 실제로 걸작으로 판명 된 수많은 저평가 된 예술 작품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잊혀진 초기 과장된 예술의 추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예술도 주관적인 평가가 곁들여 지는 객관적인 존재 라고 생각 됩니다.
학문 /
미술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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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후기 신분제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초중반 까지는 신분 제도는 세습되고 비교적 안정적 이였지만 고려 후기에는 사회 계층의 변동이 부단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고려 후기에는 천민 집단 구역인 향, 소, 부곡이 점차 일반 군현으로 승격되어 그 주민들이 양인화되어 갔고, 외거 노비 중에서 재산을 모아 양인으로 상승하는 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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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와 발해는 교류가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발해는 신라떄문에 망한 고구려의 유민들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옛 고구려와 같은 대국으로 발전하였으나, 신라와는 마지막까지 대립 관계를 계속하여 상호간의 문화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학문 /
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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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금리와 실질금리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명목 금리라고 하면 은행이 제시하는 저축금리, 주택담보대출금리, CD금리 등 우리 눈에 보이는 금리들 입니다. 즉 “화폐단위로 원금과 이자를 계산하여 양자의 비율에 의해 계산된 이자율”입니다. 화폐라는 눈에 보이는 단위로 계산하기 때문에 쉽고 명확하게 이해되지요. 그러나 명목금리만으로 저축과 차입의 실질적인 효과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습니다. 물가가 변하면서 화폐의 가치에 변화를 주고 이것이 화폐 단위로 측정된 명목 금리의 실질적인 가치를 변화시키기 때문인데요. 이런 이유로 명목금리가 아닌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라는 실질 변수를 이용해 원금과 이자를 측정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인데 이것을 실질금리라고 부릅니다.
경제 /
경제용어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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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에는 해외로의 무력투사가 많았는데 언제부터 조선은 해외로의 전쟁에 소극적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성리학을 숭상하는 문치주의(文治主義) 또는 문치 정치 국가 였습니다. 문치 주의는 학문을 최고의 가치 개념으로하여 정치에서 무인을 제외하고 문인을 주요 파벌로 내세우는 통치 이념이념인데 무단 정치와 대비되는 통치 용어입니다. 조선의 건국 자체가 성리학만을 숭상 하는 정도전, 남은, 조준등 오로지 성리학자들에 의해서 세워 졌기 때문 입니다.
학문 /
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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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요동정벌은 정말 현실성이 없는 작전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성계가 4대 불가설로 들며 주장한 요동 정벌 주장이 오히려 타당성이 없다고 많은 많은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최영 장군의 요동정벌 명령이 내려진 그 당시가 아무리 장마철이었고 또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 시점은 원나라가 몰락하고 명이 커가던 원명 교체 시기였습니다. 요동에는 당시 명의 군사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숨 막히는 긴장감이 도는 그 바쁜 원명 교체기에 명나라는 요동에 원군을 보낼 여력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역사학자들 입장 입니다. 당시 요동을 정벌 했다면 아마도 우리의 역사는 많은 부분이 바뀌었을 런지도 모르지요.
학문 /
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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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초로 발생한 전쟁은 언제 어디에서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초 이래 인간은 크고 작은 무수한 전쟁을 치러왔다는 사실인데 기록상으로 볼때의 날짜까지 추정이 가능한 최초의 싸움은 기원전 (BC) 1457년 4월16일 발생한 메기도 전투가 최초로 봅니다.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지금의 이스라엘 및 시나이 반도의 가나안 땅 일대의 민족들이 맞붙었는데 1만2,000여 이집트군의 지휘는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직접 맡았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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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여권국적 파워는 어느 정도 대접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재 기점으로 우리 나라 여권 파워 순위는 2위라고 합니다. 여권 파워 라고 하면 보통 비자 없이 방문 가능한 국가의 숫자를 의미 하는데 우리나라는 192개국으로 일본과 싱가폴 193개국 다음으로 세계 제 2위라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여행 강국 입니다.
학문 /
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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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4대 문명이라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불리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계 4대 문명들의 특징은 4대 문명의 발생지들은 모두 큰 강을 끼고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었고. 대부분 기후가 온화하고 기름진 토지를 지닌 지역들이며 특히 이 지역들은 중국의 황하강, 이란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도의 인더스강, 이집트의 나일강의 4대 강을 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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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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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어느 시기때부터 만들어져서 불러졌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리랑의 기원에 관해서는 사실 여러가지가 존재 합니다.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가 왕비 알영을 찬미하여 "알영 알영"하고 노래를 부른 것이 뒷날 "아리랑 아리랑"으로 변했다는 견해가 가장 신빙성 있는 것중에 하나인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왕조에 여자들이 길쌈짜기 내기 끝에 진 편에서 '회소곡'을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서기 32년) 그보다 조금 전 사람인 혁거세왕이라고 해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 리도 없을 터, '알영'과 '아리랑'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데에 착안한 알영설도 일견 그럴 듯하게 느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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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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