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위인들의 호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람이 본이름이나 자(字) 외에 허물없이 부를 수 있도록 지은 이름이 바로 호인데 호는 2종 이상의 이름을 가지는 풍속〔複名俗〕, 또는 본이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實名敬避俗)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의 경우, 호의 사용은 당대(唐代)부터 시작하여 송대(宋代)에는 보편화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호는 본인이 만들어서 다른 친구들에게 편하게 부르도록 한 것인데 이것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다른 이들이 함부로 부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해서 만든 별명 같은 것 입니다.
학문 /
역사
23.06.25
0
0
노아의 방주는 정말 있었던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터키 아라랏산에서 노아의 방주를 목격했다거나 유물이 남아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던 가운데 최근 홍콩의 한 탐사팀이 한국을 방문해, 노아의 방주 내부라고 주장하는 영상을 공개했다고 합니다. 홍콩 노아방주선교회 탐사팀이 촬영한 노아의 방주 내부 등을 공개 했듯데 홍콩에 위치한 기독교 영화제작사 및 터키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탐사대는, 2019년 10월 터키 아라라트산 해발 4,000m 지점에서 '목재 구조물'을 발견했다고 밝혔고 그것이 노아의 방주 흔적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25
0
0
주식에서 감자라는것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주식 감자란 주식감소의 줄일말 입니다. 정성 적인 회사라면 사업 잉여금을 늘리면서 자본을 증자 해야 맞는 것 입니다. 그런데 기어에서 감자를 한다는 것은 부채를 얻어 와서 그 것을 메꾸기 위해서 구짓으로 대체 한다거나 하는 이유 에서 입니다. 즉, 주주들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 성이 높습니다.
경제 /
주식·가상화폐
23.06.25
0
0
외국은행과 거래할때 꼭 사용해야하나요?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해외 거래처에서 송금 받거나 보낼 때 보통 은행 식별 코드인 swift code 는 기본 입니다. 거래 은행에 전화 해서 물어 봐도 되고 인터넷에서 찾아 봐도 됩니다. 인터넷에 거래 은행 swift code 치면 다 나옵니다. 나머지 은행 주소및 계좌 번호도 영문으로 물어 봐서 보내 주면 됩니다. 계좌 비밀 번호같은 걸 물어 보면 절대 알려 주면 안되지만 계좌 번호 정도는 알려 줘도 별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경제 /
예금·적금
23.06.25
0
0
명나라 탕화는 어떻게 주원장의 숙청을 피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주원장의 피의 숙청으로 주변의 모든일들을 죽이고 주원장의 최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이는 탕화만이 남았을 때 탕화는 결심을 하고 자신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군대를 지휘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시골로 내려가 묘 자리나 찾아보면서 죽을 때를 기다리게 해달라고 주원장에게 간청을 한다고 합니다. 주원장은 탕화의 진심어린 청에 마음이 움직였고 바로 허락하고 집터는 물론 집을 지을 수 있는 돈도 하사하면서 그러면서 1년에 한 번은 남경으로 올라와 문안인사를 올리라 명령했다고 합니다. 주원장은 다른 측근에 비해 유독 탕화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홍건적 시절부터 다른 장수들은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탕화는 한결같이 곁을 지킨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25
0
0
실크로드에 신라가 포함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실크로드의 끝에는 중국만이 아니라 신라도 있었습니다. 신라와 서역의 긴밀했던 관계를 유물과 기록을 들어 보면 신라 원성왕(재위 785~798) 때 제작된 경주 성덕왕릉의 ‘무인상’은 전형적인 서역인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또 경주 황성동 돌방무덤에서 나온 토용 중에는 고깔모자를 쓰고 홀을 든 서역인의 상이 있습니다. 이 두 유물은 서역인들이 신라에 들어와 무관이나 문관으로 기용됐음을 알려주는 데요. 또 불국사 경내에서 출토된 돌십자가와 성모 마리아 소상은 이미 7~8세기에 기독교 종파인 네스토리우스교가 당나라를 거쳐 신라에까지 전해졌음을 알게 해준다고 합니다. 한반도와 기독교가 신라에서 이미 조우한 것이지요. 더 놀라운 것은 그리스·로마의 물품들이 다수 경주 유적에서 발굴됐다는 사실인데요. 4~6세기 신라 고분에서는 ‘후기 로만 글라스’가 다수 출토됐고, 와인잔 풍의 토기가 발굴됐으며, 말머리로 장식한 뿔잔도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뿔잔은 풍요를 상징했는데, 신라는 그 뿔잔을 받아들여 다양한 형태와 용도로 변형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25
0
0
사람의 이름 뒤에 바로 님자를 붙이는 것이 올바른 어법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체부 산하 국립 국어원에서도 이렇게 이름 뒤에 님을 붙여서 부르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도 사람 이름 뒤에 '님'을 붙여서 서로 존대 하자는 운동이 한글학회 계열의 일부 국어운동가들 사이에 있었다 합니다. 2000년대 중 후반 대에 인터넷 문화에 의해서 완전히 대중화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습관이 안되서 어색 할수도 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25
0
0
조선 태종의 세자였던 양녕대군은 왜 망나니 짓을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화나 드라나에서는 양녕 대군이 마치 세종에게 왕권을 양보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자 자리에서 쫗겨 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기록에도 나와 있듯이 양녕 대군은 동생 충녕 대군과 사이가 안 좋았고 충녕 대군( 세종)은 그릇이 작아 왕이 될 그릇이 못 된다고 자신의 아버지 왕인 태종에게 간언은 올리고는 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계유 정난 후에도 안평 대군을 죽이는데 앞장 섰고 단종을 처단 하는 데도 앞장 섰던 인물 이기도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25
0
0
이순신 장군이 스스로 자진을 했다는 설이 신빙성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노량해전 (노량대첩) 은 1598년 11월 19일 노량진 바다 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과 일본의 수군이 벌인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이며 노량해전은 조선과 일본의 지속적인 전쟁인 발발 하였으며, 이순신 장군도 노량대첩에서 적이 발사한 유탄에 맞고 숨지게 됩니다. 이것은 징비록의 기록에도 나옵니다.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 당시의 상황이 담긴 결정적인 기록인데 (이순신이 노량해전) 당일 직접 돌과 화살을 무릅쓰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하기를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 라고 했으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하다가 이윽고 날아온 탄환을 맞고 전사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순신 장군이 자살 한 것은 분명 아니지만 아마도 이 전투가 마지막 전투이고 전쟁이 끝난 후에 선조가 전쟁 중에 명령을 어긴 자신을 비롯한 휘하 장수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까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 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목숨을 바쳐서 싸우려고 노력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듭니다.
학문 /
역사
23.06.25
0
0
이순신 장군의 일본에서의 위상은 어느정도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일본인들 사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데는 '일본의 국민작가'로 통하는 시바 료타로의 역할이 컸는데 '올빼미의 성' '료마가 간다' 등 숱한 베스트셀러와 수상작을 남긴 그는 일본인들이 역사 교과서 대신 시바 료타로의 소설로 근현대사를 배운다고 할 만큼 일본 내에서 높은 위상을 가진 역사 작가입니다. 대표작들 중 러·일 전쟁 시기를 무대로 한 '언덕 위의 구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직접 한국을 여행하고 낸 기행 문집 '한(韓)나라 기행' 등에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 부분이 나오는데 이순신 장군을 영국의 넬슨 이전 유일한 명장 등으로 극찬하고 있습니다. 그의 서적은 누적 발행 부수가 2000만부를 훌쩍 넘고 2009년에는 드라마화 돼 NHK에서 인기리에 방영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이순신 장군만 집중 연구하거나 관련 저작물을 내놓은 여타 일본인 학자들보다 그 한사람이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일본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곡이 심하기로 유명한 일본 교과서에 조차 이름이 등장하고 높은 인지도까지 있는 유일한 한국인은 이순신 장군 입니다. 한국인 중 일본 역사 교과서에 이름이 나오는 건 이순신 장군이 유일하다고 할 정도이며 임진왜란과 관련해 장군과 거북선 사진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6.25
0
0
1540
1541
1542
1543
1544
1545
1546
1547
1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