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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신용등급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채권 등금은 원리금 상환 능력을 구분 됩니다. 국내 신용 평가사는 보통 10개의 등급으로 관리를 하고 있는데 AAA, BBB등 급 까지는 안정적으로 원리금을 상황할 능력이 있다고 간주 하는 반면에 그 이하는 상환능력이 부족 하거나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 입니다.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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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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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는 우리 역사인가요 아니면 중국의 역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여는 후기 고조선과 동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공존했던 고대 국가입니다. 고구려, 백제 등 한민족의 조상이 되는 주요 국가들 중 일부는 고조선이 아닌 부여를 계승하였으므로, 우리 민족의 근원이 되는 고대국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가장 부여가 우리 민족임을 나타내는 증거로는 부여 사회의 중심적 지배 계급을 형성한 부족장의 칭호인 '~가(加)'는 씨족장·부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구려에서도 사용되었다고 하는 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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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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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통킹만 사건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2차 대전이 일본의 진주만 공ㅅㅂ으로 미국이 참전 하게 된것이라면 베트남 전쟁이 미국이 개입하게 된것은 바로 베트남에 의한 통킹만 사건 입니다. 이 통킹만 사건은 1964년 8월 미국의 정보 수집함대가 베트남 근해의 통킹만의 공해상에서 공격을 받은 사건인데 미국 정부 는 이것은 북베트남의 어뢰정에 의한 공격이라고 단정하여 북베트남의 군사 시설을 보복 폭격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는 대통령에게 무력행사 를 자유롭게 실행할 권한을 부여하는 결의인 통킹만 결의를 채택하고 미국은 그 후에 본격적인 북베트남으로의 폭격과 베트남으로의 군사개입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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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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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혁명의 주요 내용은 무엇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문화 혁명(文化革命)" 또는 더 줄여서 "문혁(文革)"이라고도 합니다 원래 내세운 목표는 파사구(破四舊)라 하여, 낡은 사상[舊思想], 낡은 문화[舊文化], 낡은 풍속[舊風俗], 낡은 관습[舊習慣]을 타파(打破)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적인 이타주의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사회주의 문화를 창조하자는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저 역사적인 문화 검열 사건이자, 전국 단위로 실행된 대규모 반달리즘이 됐을 뿐입니다. 주요 골자는 옛 것은 모조리 숙청하는데 문화, 교육, 정치, 가족 등 모든 것을 의미 했습니다. 중국이란 넓고 오래된 나라에서 전국 규모로 일어난 이 사건의 이름은 문화'대혁명'이지만 그 실상은 문화 대숙청문화 대파괴였습니다. 그 결과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 하게 되었고 경제 후퇴, 문화 파괴, 교육의 황폐화, 사회 질서의 문란 등을 남기고 허무하게 ㄲ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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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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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봄봄 비판할점 뭐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실감각을 소설에 이입하거나 사회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지 않아 일제치하의 당시 상황에 저항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사실 김유정의 소설 경향은 농촌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대다수이며 현실 이입보다는 작품내의 완성도와 구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봄봄을 본 후 처음 드는 생각은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일반적인 서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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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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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상 마지막으로 기록된 내시는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마지막 내시는 반하경 (潘夏慶)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에 반하경 (潘夏慶)이라는 인물이 안장 돼 있다고 합니다. 그는 철종부터 고종, 순종까지 조선의 마지막 3대 (代) 임금을 모신 내시 (內侍)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반하경은 일제의 핍박이 심해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내시를 그만두고 경기도 파주 집으로 내려갔다는데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國權)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그는 일주일 내내 음식먹기를 거부한 뒤 파주 삽다리 장터에 나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유서를 꺼내고 자결했다고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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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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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암행어사는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의 암행어사 제도는 왕에게서 직접 권한을 이임 받았기에 암행어사의 직책은 당연히 고을 사또 보다 훨씬 위치가 높았고 암행 어사의 상징하면 마패(馬牌)인데, 마패는 길 중간 중간에 있는 역에서 말을 빌려서 탈 수 있다는 증표입니다. 마패에 새겨진 말의 숫자에 따라서 역에서 빌려 탈 수 있는 말의 수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1마리~10마리가 새겨져 있었으며 암행어사가 출도할 때에도 증표로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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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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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모로코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 위치한 알제리의 공용어는 아랍어지만 국민 대부분은 프랑스어를 합니다. 알제리에는 80%가 아랍인, 20%가 베르베르인이며, 프랑스 식민지 였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하는사람이 많습니다. 알제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국토가 넓은 국가 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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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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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여성의 권위가 떨어지게 된 사건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부장적인 유교 제도의 전통이 가장 큰 이유 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재산 상속과 제사에 남녀의 차이가 없었고 결혼 후 친정살이를 하며 재혼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중기와 후기에 유교 질서가 강화되면서 여성의 지위가 낮아졌고 결혼 후 시집에 들어가 살게 되기 시작 하면서부터 여성의 지위가 낮아 졌다고 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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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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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시대의 서옥제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옥제란 결혼을 하면 남자가 여자 집에 들어가 살다가, 아이를 낳아 장성한 뒤 남자 집으로 돌아와 사는 고구려의 혼인 풍습입니다. 서옥제(壻屋制)를 데릴사위제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데릴사위는 사위가 끝까지 처가에서 사는 것도 의미하므로 아들을 낳아 장성한 뒤 남자 집으로 돌아가는 서옥제와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서옥제는 사위가 처가에 일정 기간 머무르는 방식이므로,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서옥제와 같이 여자 집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남자가 일정 기간 그곳에 머무르는 혼인 풍속이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도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옥저의 민며느리제와 반대되는 혼인 풍속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서옥제가 최종적으로 남자 집에 여자를 데리고 간다는 점과, 남자 측에서 여자 집에 일정한 혼납금을 지불한다는 측면에서는 민며느리제와 유사성을 가지기도 합니다. 한편 고구려의 또 다른 혼인 풍속으로,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동생과 부인이 결혼하는 취수혼(娶嫂婚)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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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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