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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한단지몽의 유래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단 지몽이란 인생과 영화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서기 731년에 노생(盧生)이 한단이란 곳에서 여옹(呂翁)의 베개를 빌려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80년 동안 부귀영화를 다 누렸으나 깨어 보니 메조로 밥을 짓는 동안이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심기제(沈旣濟)의 ≪침중기(枕中記)≫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말로 일장춘몽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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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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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프리카 사이 지브롤터 해협에는 왜 다리가 없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페인과 모로코가 서로를 잇는 지브롤터해협 터널(해저구간 28㎞)을 공동 건설한다는 데 합의했다는 AP 보도가 16년전에 이미 2007년 3월 나오기도 했으나 그 뒤론 아무런 진척 상황이 없는 이유는 90미터나 되는 심해의 그 구간을 뚫어서 기술적으로 성공한 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 이라고 합니다. 정치적인 갈등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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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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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니시비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회니 시비 사건이란 숙종 때 사제 관계에 있었던 송시열(宋時烈)과 윤증(尹拯)의 불화 때문에 그들의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분쟁으로,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갈라지게 한 사건입니다.충청도 회덕(懷德)에 살았던 저명한 우암(尤庵) 송시열과 그의 제자로서 이산(尼山)에 살았던 명재(明齋) 윤증은 여러 가지 일로 불화를 빚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사사로운 불화는 1684년(숙종 10) 4월에 송시열의 제자 최신(崔愼)이 조정에 윤증을 고발하고 처벌을 요구함으로써 국가 차원의 정치적 분쟁이 되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제자들은 각기 스승을 변호하고 상대방을 비판하는 논쟁을 벌임으로써 조정이 시끄러워지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게 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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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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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을 말한 사람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말과 작은 책자인 〈제1 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이하 성찰)〉 하나로 데카르트는 철학계의 스타가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성찰〉에서 직접 나온 말은 아니라고 합니다.데카르트가 맨 처음 생각한 개념은 아니며,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미 해당 개념을 이야기한 바가 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 텔레스 역시 비슷한 개념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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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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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백성들은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성안에서 나오는 재나 분뇨 등은 마땅히 처리할 방법이 없어 대개는 개천(開川)이라 불리던 청계천이나 길가에 그대로 버렸다고 하니 이러한 오물을 버리니 개천이 막히고, 똥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도시 위생상태가 아주 엉망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도시 위생 상태의 불량은 주기적인 전염병의 창궐로 이어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이러한 상황은 구한말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서울에서 배출되는 오물은 수거되어 묻거나 태우거나 혹은 한강에 방류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분뇨는 비료회사에서 부분적으로 비료로 재활용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소각시설이 처음으로 설치된 것은 1986년의 의정부 소각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미 일제 시대에도 서울에 소각장이 설치되어 가동했다고 합니다. 오물을 그냥 땅에 묻거나 태우는 것은 위생 관리의 차원에서 사람들이 사는 생활 공간에서 치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전보다 진일보한 것이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처리 관행은 1990년대 초반이 되어 서야 서서히 바뀌게 됩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집을 짓거나 저습지를 메우기 위해서 그냥 쓰레기를 묻는 행위가 비일 비재하게 일어났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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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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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럽 예술공연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공연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공연을 많이 한 것은 아마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일 것 입니다. 이 뮤지컬은 1986년 9월 27일, 런던 Her Majesty’s Theatre에서 초연되었고 이듬해 1월, 뉴욕 Majestic Theatre에서 브로드웨이 첫 공연을 가졌다고 합니다. 2019년 4월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에서 13,000회 공연을 돌파하였습니다. 이것은 뮤지컬 캣츠의 기록을 넘는 전무 후무한 기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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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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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순수비라는 것은 왜 만들어졌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흥왕 순수비(眞興王巡狩碑)는 신라 진흥왕 재위 기간 중 영토를 확장하면서, 그 확장된 지역을 돌아보고 정복지에 신라의 영토임을 알리기 위해 세운 비석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진흥왕 순수비는 4개이며 대한민국에 2개, 북한 지역에 2개가 있다고 합니다. 비석이 세워진 순서를 따라가면 진흥왕의 영토 정복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데 550년 남한강 상류의 단양에는 단양 적성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555년 한강 하류에 북한산비를 세웠는데 당시 남한강 유역은 고구려 땅이었고, 중원 고구려비가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 신라는 이 시기부터 함경도 까지 영토를 넓히는 전성기를 맞이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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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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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임금이 죽은후 후궁들은 어디서 머물고 처우는 어떻게 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들이 죽고 나면 후궁들은 보통 출궁을 합니다. 정업원(淨業院)은 고려 때부터 왕실 여인들이 출가하여 수도(修道)했던 절인데요. 왕이 세상을 떠났거나 왕위 찬탈 등으로 인해 궁궐 밖으로 나가야 했던 왕비나 후궁들이 정업원에서 기도하면서 생활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의 정업원은 창덕궁 후원 뒤편에 있었으며, 명종대에는 인수궁 내에 설치된 불당을 정업원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수차례에 걸쳐 정업원이 폐지되었다가 복설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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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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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내성은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고구려의 도성으로 너무 중국에 가까왔습니다. 북진 정책에는 좋지만 남하 정책을 하기에는 너무 한번도에서 멀었지요. 그래서 장수왕은 국내성에서 내부적으로 왕권의 위상을 높여서 국내성 의 귀족세력을 약화시키고, 신라와 백제를 압박 하기 위한 남진정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427년 에 평양성 으로 천도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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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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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이 시행한 6조직계제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종 이방원이 실시한 6조 직계제란 국정 현안에 대해 6조의 장관인 판서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왕에게 보고하여 업무를 처리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이를 통해 태종이 추구 하고자 했던 바는 왕권 강화 입니다. 신료 들의 입을 통해서 업무를 보고 받지 않고 직접 국정 현안에 개입 해서 왕권을 강화 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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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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