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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분파중에 루터교가 어떤 교단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단 결론 부터 말씀 드리면 개신교들은 카톨릭을 이단 시 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단 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이유는 카톨릭과 개신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루터 교회란 신약의 기독교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에 서 있는 교회이며 중세 교회가 부패하고 있을 때 16세기 마르틴 루터 (1483-1546)의 종교개혁에 의해 재발견된 복음의 가르침 위에 서 있는 개신교의 장자교회로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개신교파 입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도사였던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제성기념일 전야에 "95개조 논제"를 비텐베르크성교회 문에 붙인 것으로부터 촉발된 작은 개혁의 물결은 그의 종교개혁 사상은 신학적, 문화적, 교회적, 사학적, 민족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루터란(Lutheran)'이란 말은 '루터를 따르는 사람들' 이라는 말로서 가톨릭 교도들이 붙여준 것인데 결국 교회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카톨릭과 개신교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과 지옥을 믿으며 예수님의 부활 하심을 공통적으로 믿습니다. 다만 그 방법 적인 차이가 있을 뿐 이지요. 신부님도 예수님의 사랑을 가르치시며 목사님도 예수님의 사랑을 설교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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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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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의 발생 원인과 그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4·19 혁명(四一九革命) 또는 4월 혁명(四月革命)은 1960년 3월15일 실시된 실시된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 시키기 위한 개표 조작을 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 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대규모의 시민들이 참여하며 전국적으로 확대된 반독재 투쟁이자 혁명을 말한합니다. 부정 선거 당시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은 4할 사전 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의 부정을 저질렀다고 하네여. 3.15 마산 시위에 참여한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11일 아침에 마산 중앙 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것이 부산 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지며 격화되었습니다. 결국 이승만 정권은 퇴진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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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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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이 만들어진이유와 연도가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콜로세움은 수 세기 동안 계속 개축 되어왔고, 로마 제국의 전성기에는 5만 명에서 8만 명의 관중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콜로세움에서는 주로 검투사들의 결투가 이루어졌으며, 모의 해전, 동물 사냥, 신화의 재연 등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합니다. 다만 중세에 이르러 제국이 쇠퇴하고 로마가 폐허로 변하자, 콜로세움도 이와 같은 변화를 피하지 못하고 요새, 교회와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콜로세움은 서기 70~72년 경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79년에 콜로세움의 3층이 완공되었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이 티투스 황제 치세 하에 완공되었다 합니다. 즉, 약 10년 만인 서기 80년에 건축이 완료된 콜로세움의 개막식에는 9,000마리가 넘는 야생 동물들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주화 까지도 발행되었다고 전해 지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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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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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면 경재가 더 어려워질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남북한의 통일의 문제는 아마도 서독과 동독의 통일에서 그 예를 참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1990년 동독의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로 편입됨으로써 독일은 정치ㆍ경제ㆍ사회적 통일을 이루었는데요. 급진적 통일로 동독 GDP는 30% 이상 떨어졌고 실업률 역시 급격히 증가하여 15%를 훌쩍 넘었으며, 1990년대 말에는 동독 실업률이 20%에 육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통일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서독 정부에도 큰 도전이었다고 할수 있지요.통일과 함께 이루어진 동독 주민들에 대한 사회보장과 1대1 화폐통합은 서독 제품의 수요로 이어졌고, 동독 지역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으나 1995년부터는 정상화되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시작된 단기이자율 급등은 중앙은행의 적극적 통화량 관리와 고이자율 정책으로 조기에 물가와 환율을 안정시키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자율 역시 1995년부터 통일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통일과 함께 환율의 불안정성을 우려했으나, 독일 마르크화의 미국 달러화 대비 환율은 오히려 하락하여 안정세를 보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낮은 수준으로 하락하였습니다. 즉, 단기적으로는 남북 통일이 아마도 많은 경제적인 문제를 불러 일으키겠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북한과의 통일로 인한 장점이 훨씬 더 클수 있습니다. 일단 북한의 천연 자원등을 이용한 산업 발전, 금강산 및 중국 등을 연결한 관광 산업, 인구 증가율 증대로 인한 고령화 사회 진입 시기 연장, 국제 사회에서의 발언권 강화 등등 여러가지 경제 지표로 설명 할 수 없는 국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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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동향
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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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표적인 산은 어디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 백두산, 금강산, 한라산이 있다면 중국의 3산은 황산, 려산, 안탕산입니다. 황산은 중국 명산의 장점이 황산에 다 모였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산으로 꼽힌다고 하지요. “황산을 보고나면 오악을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안회, 저장쪽의 황산과 더불어 안탕산은 동남부 최고의 명산이고, 강서성의 려산은 이태백의 자취가 서린 산으로도 유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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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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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통조림은 어느나라에서 누가 발명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계 최초의 통조림은 나폴레옹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계속된 전쟁으로 신선한 음식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 발명가의 발명품에 주목했다고 하네여. 발명가 니콜라 아페르라는 샴페인 병에 양배추와 브로콜리, 당근, 양파 등을 넣어 밀봉한 일명 '병 속의 식량'을 발명품으로 내놨다고 하는데요.나폴레옹은 '병 속의 식량'의 가능성을 한 눈에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니콜라 아페르라에게 1만2000 프랑을 결재 했다고 하지요. 이것이 통조림의 시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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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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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도 동정심이 있을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간처럼 동물들이 슬픔이나 고통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도 이제는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고 하지요. 감정을 느낄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개체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인데요. 코끼리나 오소리, 늑대, 개 등등 거의 모든 동물들이 사람처럼 기뻐하고 슬퍼하고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코끼리 같은 경우는 특히 감정에 민감한 동물인데요. 길을 가다 가도 코끼리 뼈를 발견하면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그것을 살펴보고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고 슬픔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인간 생물학적으로는 동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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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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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8일 어버이날은 누가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버이날의 유래는 본래 사순절의 첫날부터 넷째 주 일요일에 어버이의 영혼에 감사하기 위해 교회를 찾는 영국·그리스의 풍습과, 1907년경 미국의 안나 자비스라는 여성이 본인의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14년 미국의 제28대 대통령 토머스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이 5월의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하면서부터 정식 기념일이 된 이후 지금까지도 미국에서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어머니가 생존한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각종 집회를 열며,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선물을 한다고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1955년 국무회의에서 어너미날일 제정 했는데 1956년 5월8일 제1회 어머니날을 시작으로 시작 되엇고 1973년에는 아버지까지 포함시키는 어버이날로 명칭이 바뀌어서 현재 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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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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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비는 있는데 열남비는 없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열녀문을 세우고 열녀비를 세우는 것은 보통 사대부 양반 가문에서 하던 것이였지요. 남자가 죽으면 여자는 그 죽은 남자의 자식을 키우며 평생을 혼자 살았다고 해서 그 집안의 종족을 유지 했다고 하는 의미인 것이지요. 하지만 반대인 경우 여자가 먼저 죽으면 남자들은 자신의 가문의 후손을 낳아줄 다른 여성을 찾게 되지요. 종족 번성의 본능이 남자들에게는 존재 하니까요. 왕가의 경우도마찬가지였지요. 왕이 먼저 죽으면 왕비는 대왕 대비가 되고 , 후궁들은 궁을 나가 정읍원이라는 절에 들어가 여생을 홀로 살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왕비가 먼저 죽으면 왕은 그 후손을 잇기 위해서 라도 후궁을 들이거나 다니면 기존에 후궁을 왕비로 올려서 대군을 생산 하기도 합니다. 일반 사대부와 같은 경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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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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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집대성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결론적으로 말씀 드리면 성경은 한 사람이 수백권의 책을 모아서 짜집기 하듯 만든 책이 아닙니다. 약 1,600년간에 걸쳐서 마치 나무가 자라서 숲이 되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입니다. 존 바턴의 <성서의 형성 - 성서는 어떻게 성서가 되었는가?>라는 책에서 그 대답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책이 집필 되고, 모음으로 묶이고, 경전으로 읽히고, 정경이 되는 과정에서 존 바턴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바는 "무엇 하나 뚜렷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 각 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음으로 묶여져서 회람 되는 과정에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 왜 어떤 책은 경전으로 받아 들여지고 다른 어떤 책은 받아들여 지지 않았는지 모두 모호합니다. 콕 집어 '이유'라고 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저 온 교회가 경전으로 읽어 오던 성경 목록을 확정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는 모든 소개를 마친 이후에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갈음합니다. "성서는 어떤 규정의 산물이 아닙니다. 식물이 자라듯, 성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라나 성서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성경이 없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성경을 만들기 위해 세계 각처의 위대한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수백일 동안 머리를 싸매고 성경 66권을 기록한 후 반포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많은 사람이 이 위대한 업적에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뒤돌아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10년 후에 다시 한번 모여서 싹 다시 써야겠네."라고요.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그다지 간단하지 않습니다. 기나긴 시간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한 역사 속에서, 구전으로 떠돌던 자료가, 글로 기록되고, 편집 되고 융합돼 책이 됐습니다. 책과 책이 모여 모음집으로 묶여 회람 되고 읽혔습니다. 또한 후일에 이를 경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정경화가 되기 전에도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경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신약 성경과 구약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살아냈습니다. 정경 목록에서 제외된 중요한 책들도 여전히 두루 읽혔으며 예배 시에 '헤르마스의 목자'의 내용을 인용한 흔적도 있습니다. 성경은 수십 명의 사람이 기록하고 수백명의 사람들이 수 천년간 편집 되었지만 결국 그 것을 쓴 분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도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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