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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동연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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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문가
보가9 그래픽 디자인 및 영상 편집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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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종교로 인한 전쟁에는 어떤게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인도와 파키스탄의 캬슈미르 지방을 둘러싼 갈등-> 인도는 힌두교 국가입니다. 옛날에 남부유럽에는 인도라는 하나의 나라만이 있었는데 종교로 인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으로 분리되었습니다.카슈미르라는곳은 인도에 있는 지방 이름입니다.아까도 말했듯이 인도는 힌두교 국가입니다. 그리고 파키스탄은 이슬람교 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파키스탄은 인도에서 독립했는데,아직까지 인도에 남아있는 카슈미르는 지리적으로는 인도에 속해있지만 그 지방은 이슬람교를 믿고있습니다.그러니 파키스탄에서는 카슈미르지방을 달라 그러는것이죠.그래서 아직까지도 그들은 카슈미르 지방을 놓고 분쟁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지금 카슈미르 지방은 인도령도 아니고 파키스탄령도 아닌,분쟁지역으로 놓고 있답니다^^;2.스리랑카의 종교 분쟁스리랑카의 타밀반군 : 불교인 싱할리족과 힌두교인 타밀족간의 종교, 민족 분쟁입니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남인도의 타밀족을 스리랑카로 이주시킨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은 휴전중이긴 하지만 일촉즉발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3.팔레스티나 지방의 종교 갈등팔레스타인이겠죠ㅡ서남아시아는 이슬람세계라고 불릴정도로 모든 나라들이 이슬람교를 믿고있습니다.단 한나라를 제외 하고 말입니다. 그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 입니다.이스라엘은 유대교를 믿습니다. 유대교란, 크리스트교와 성격이 비슷한데 약간의 차이가 있거든요. 그들은 아직 예수님은 이땅에 내려오지 않으셨고예수님이 내려오실 때에는 그들은 구원을 받고 나머지 인류는 큰 벌을 받는다고-.- 믿습니다.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안에있는 자치도시입니다.이스라엘이 유대교를 믿는 국가인데 팔레스타인은 이슬람교를 숭배하죠-.-그렇기때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항상 분쟁을 하게 됩니다.주변의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이 아닌,자신들과 같은 이슬람교를 믿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국가들은 미국과 사이가 않좋습니다4.북아일랜드의 크리스트교도와 카톨릭 교도의 분쟁크리스트교도라 함은 신교, 카톨릭이라함은 구교인데 원래 영국은 카톨릭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헨리 7세가 하는 사람이 이혼을 하기 위해 영국의 국교를 성공회로 바꿉니다. 그 성공회도 하나의 신교입니다. 영국은 4개의 나라가 모여서 만들어진 연합왕국입니다.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그리고 나머지 두나라이죠.중요한것은 북아일랜드인데 영국 본토 옆에있는 섬이 아일랜드 섬입니다.그 섬의 북쪽이 지금 영국령인데 북아일랜드는 원래 아일랜드이기 때문에 당연히 독립해 지고 싶어합니다.그래서 독립운동도 벌이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아일랜드는 카톨릭 국가입니다. 그래서 북아일랜드역시 본래는 카톨릭 국가이구요.그런데 영국에 속하면서 영국의 신교도들도 많이 건너오게되었죠.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신교도와 구교도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그리고 그런것들이 북아일랜드의 독립운동으로 번지게 된 것입니다.5.코소보 분쟁코소보는 알바니아계 주민이 전인구의 80% 가까이를 차지하는 자치주로서 영토는 세르비아내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90년대 초 유고연방의 해체 후 세르비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바라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1998년 3월 초 코소보의 알바니아 분리주의 반군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면서 코소보사태가 시작되었죠.세르비아 경찰은 즉각 반격에 나서 반군은 물론, 반군 거점지역의 주민들을 대량학살했는데얼마나 무자비했으면 그 사건을 가르켜 일명 "인종청소"라고 했습니다.이에 맞서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코소보해방군(UCK)을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계속적으로전개했습니다.6.아제르바이잔 분쟁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ㆍ카라바흐지역 : 구소련의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독립할 때 인구의 다수가 기독교도인 나고르노 카라바흐지역이 이슬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으로 편입되면서 분쟁이 시작되어 전면전까지 치렀습니다.7.나이지리아 분쟁독립과 함께 발생한 부족간 대립 및 분리운동에 대한 정부와 반군간의 투쟁이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군부정권과 민주화 세력간의 대립으로 변화된 분쟁임. 1967년 바이프라주가 독립을 선언하여 1970년까지 정부군과 분쟁이 지속됨. 반복되는 쿠테타 속에 1976년 연방제를 강화하고 1979년 다당제 선거를 통해 샤가리 정권이 출범하나 1983년과 1985년 쿠테타가 발발하여 바반기다 정권이 등장함. 1993년 6월 대선에서 사민당의 아비올라가 승리하자 바반기다 정권은 선거를 무효화함. 야당의 반발 등 정세 혼란속에 동년 11월 아바차 국방상을 중심으로 한 무혈쿠테타 발생함. 아바차 정권은 1995년, 1998년 10월까지 민정이양 일정 발표. 아바차 정권은 지속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해 영연방에서 축출되는 등 국제적으로 비난받음. 1998년 6월 아바차의 사망에 따라 아부바카르가 승계함. 1998년 7월 아비올라의 옥중사망에 따라 군부에 대한 반정부 세력의 민주화 투쟁이 격렬해 짐. 1999년 5월 오바산조 대통령 취임으로 군정에서 민정 이양. 99년 11월 북부지역에서 회교율법을 시행하려하자, 회교계의 하우사族과 기독교계의 요루바族간의 종교분쟁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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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선조는 왜 이순신을 고문시켰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유재란이 발발하기 전, 이순신이두려웠던 일본은 이순신을 제거할계획을 세우는데, 고시니 요시라 라는일본의 첩자를 통해 가토군이 어느 시기에 바다를 건너올다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흘립니다.조선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출전명령을 내리지만 불확실한 정보로 함부로군을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한 이순신이이 출정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그런데 실제로 요시라의 말대로 가토군이 상륙하자 선조는 이를 계기로이순신을 파직하고 한양으로 압송하게되어 이른바 백의종군하게 합니다.칠전량해전에서 조선 해군이 대패하자다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임명 합니다.조선 역사상 인조와 더불어서 가장 멍청하고 왕위에 집착했던 선조의대 패착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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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 호위무사와 공주는 못만나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공주는 왕의 딸입니다 그 혼인은 둘만의 사랑으로 완성될수 없습니다. 무릇 왕실이란 모든 백성의 모범이 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집안에서 정해주신 가문으로 시집갑니다 당대 유서깊은 사대부라던지 아님 화친을 이유로 다른나라로 시집을 가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일지라도 왕의 자리는 그런 것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정적이라도 시집을 가야됩니다 종사관이 이미 태어날때 왕실어른이랑 정혼을 한 사이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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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 교육정책에 대해 알려주세여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 양반자제 중심 운영 ① 인문교육과 직업기술을 발전시켰지만, 문관양성을 위한 유학만 중시 ---> 기술적인 잡학은 천시, 무관의 교육시설은 거의 전무 ② 관학보다 사학이 교육을 주도 : 양반들은 평민들과 함께 향교에서 공부하려 하지 않고 사학이나 자기 집에서 특권적으로 공부하려 하였다. 그리고 국가에서는 지배층인 양반의 요구에 못 이겨 학교제와 과거제도를 곧바로 연결하여 운영해 나갈 수 없었다. * 주로 지방양반과 향리의 자제들을 교육하였다. 단 향교에는 양인의 입학이 허용되었는데, 이것은 유교적 교화에 근본 취지가 있는 것으로 과거와의 연결은 희박하였다. (2) 관학의 비용은 국가가 부담하였다. (3) 정원제, 인구비례로 학생 수를 조정 ---> 경국대전에 의하면 부, 대도호부, 목은 90명, 도호부는 70명, 군은 50명, 군은 50명, 현은 30명으로 하였다. 전국 교생의 정원은 1만 5천명이며 그 밖에 액외생(額外生)이라 불리는 정원 이외의 교생도 상당히 많았다. (4) 인문교육은 사농일치가 원칙(공장과 상인은 제외) : 교생은 농한기에 기숙사(齋)에 기거하면서 유학, 경전을 배우고 농번기에는 방학을 맞아 농사를 돌보았다. 1년에 2번 시험을 치러 우등자는 생원, 진사 시험의 초시를 면제해 주고 성적 미달의 낙강생은 군역을 지도록 했다. (5) 향교의 교생은 출신신분에 따라 상액(上額), 중액(中額), 하액(下額)으로 구분 ---> 상액은 청금록(靑衿錄), 부거안(赴擧案)에 수록되고, 중액과 하액은 교생안(校生案)에 수록된 사람들이었다. 청금록에 등재되는 동재유생은 현족 중에서 경전시험을 보아서 3하 이상의 성적을 받은 자에 한하여 뽑았다. 다만 향안은 내외 현족의 여부만을 따지는 데 반하여 청금록은 현족 중에서도 유교지식의 유무를 필수조건으로 하고, 장차 과거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었으므로 청금록이 향안보다 어느 의미에서 더욱 중요하였다. 그 결과 양반들이 교육을 받을 생각도 없으면서 굳이 향교 청금록에 등록하고자 한 것은 향교에 이름이 등록되지 않으면 과거에 응시 할 수 없게 한 규정과 확고한 지방양반의 지위를 인정받아 향촌지배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동재유생은 정원이 없었다. 따라서 청금록은 향안과 함께 양반작격을 보증받는 중요한 문적이 되었다. 2. 교육기관 (1) 종류 ① 관학 : 성균관, 4부 학당, 종학, 잡학, 향교 ② 사학 : 서재(書齋), 서당(書堂), 가숙(家塾), 서원(書院) (2) 인문 교육 ① 서당 (사립초등교육기관) : 훈도(訓導), 접장(接長) ② 4부 학당(중앙에 설치된 중등교육기관) : 교수, 훈도가 지도, 소학과 4서 중심 --- 문묘가 없으며, 각 학당마다 정원은 100명 이었다. 성균관의 진학시험인 승보시가 있었다. * 東, 西, 南, 北, 中의 5부 학당은 국초부터 있었는데, 세종 27년에 북부학당을 폐지하여 4부학당의 제도를 확립하였다. ③ 향교(지방에 설치된 중등교육기관) : 교수, 훈도, 교도, 학장의 지도로 소학과 4서, 5경의 유교경전을 배웠다 - -- 대성전(문묘), 동 ∙ 서 무, 명륜당, 동 ∙ 서재로 구성되었으며, 지방양반과 향리의 자제들을 교육하여 양인의 입학도 허용하였다. 정원은 인구 비례이고 부(90명), 목(90명), 군(50명), 현(30명)에 각 1교를 두었다 -- 향교와 부학을 나온 학생들은 문과, 무과, 잡과의 과거를 거쳐 관리가 되고, 더러는 직접 서리로 나가기도 했다. ④ 성균관(고급관리를 양성하는 9년제 국립대학) - 200명에서 100명으로 감소 - 교수 : 대사성(총장), 사성, 사예, 직강, 박사 - 입학자격 : 소과합격자, 4학 생도, 하급관리, 공신 ∙ 훈신의 자제 중 선발된 자 - 건물 구성 : 명륜당 - 유학을 강의하는 곳 문묘 - 공자를 모신 곳 동서양재 - 유학생들 기숙사 동무, 서무 - 선현제사 비천당 : 과거시험을 보는 곳 존경각 : 도서관​ ㉠ 기능 : 유교이념을 지키는 기능, 고급 문관관료를 양성하는 교육적 기능 ㉡ 학생 : 모두 재에 기숙하고 알성시 특혜와 국정에 訴하는 권당권을 부여하였으며, 우등생은 직접 문과 복시(2차 시험) 에 나가고, 50세까지 착실히 공부한 사람은 과거를 거치지 않고도 벼슬을 주었다. ㉢ 교육 : 경국대전, 동국통감, 4서 5경, 근사록, 성리대전, 통감, 좌전, 송원절요 등 과거 시험과목을 주로 공부하였다. ㉣ 문묘 : 문묘는 공자 즉 문선왕을 향사하는 사당이다. 그러나 문묘에는 공자 외에도 이른바 10철, 72현 등 공자의 여러 제자들 및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유현들을 배향하였다. 문묘에 종사된 명현은 모두 133인이다. 그 중에서도 주희를 비롯한 송유(宋儒)들을 많이 종사하고 있다. 이 중 최치원, 설총,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조광조, 이황, 이인후, 이이, 헝혼, 김장생, 김집, 조헌,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등 18인이 한국의 유현(儒賢)이다. (3) 기술교육 (잡학) ① 잡학(8학) : 중앙(285명)과 지방(약 6천명)의 해당 관청 ---> 주로 중인, 평민, 일부 고관 자제 ㉠ 역학(외국어) : 사역원 - 한학(漢學 : 중국어), 몽학(蒙學 : 몽고어), 여진학, 왜학 ㉡ 의학 : 전의감, 혜민서 - 각 군현에 의학을 담당하는 심약 1~3인 씩을 둠 ㉢ 음양학(천문, 지리, 명과) : 관상감 ㉣ 산학 : 호조 - 산학교수, 산학훈도를 두어 주관 ㉤ 율학 : 형조의 고율사(考律司) - 각 군현마다 율학을 담당하는 검율(檢律) 1인 씩을 두었다. ㉥ 기타 : 圖學 - 도화원, 道學 - 소격서, 악학 : 장악원(掌樂院) ② 의학, 율학, 역학의 3학 : 지방에서도 교육 - 의학과 율학은 모두 군현에서 가르치고, 외국어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한학과 여진학은 주로 평안도에서, 왜학은 경상도 삼포에서 각각 가르쳤다. 그러나 지방의 의학과 율학은 부진하였다. ③ 조선시대 잡학에 대한 교육정책 : 유학 중심이었고 잡학 교육은 부차적이었다. 그러나 잡학교육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었고 끊임없이 장려되었다. ④ 양반자제들은 잡학 생도가 되는 것을 기피한 배경 ㉠ 유교의 기술직 천시 관념 때문에 (사농공상) ㉡ 조선 초기 지배신분의 분화현상 때문에 ---> 문무양반체제가 확립되어 감에 따라 기술직은 관념적, 제도적 차별대우를 받게 되어 기술관은 체아직만 받고 직전은 받지 못하였다.​ * 고려시대에는 기술관에 대한 차별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기술관에게는 녹봉은 물론 전시과의 제15과부터 제16과가 지급되었다. 양반자제들도 잡과시험을 통하여 기술관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양반자제들을 기술관에 입속 시키는 것은 조선 건국 초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난 15세기 후반기부터 차별을 받기 시작하였다. 기술관은 6개월이나 3개월마다 다시 임용시험을 거쳐야 하는 체아직을 받았으나, 직전법이 실시되면서부터 직전이 주어지지 않았다. 나아가 기술직을 맡으면 양반과의 통혼 길도 막혔다.​ * 고려 말 사대부세력의 성장과 더불어 기술직에 대한 차별의식이 심해지고 조선 초기에 이르러서는 잡학과 기술직에 대한 관념적, 법제적 차별로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반자제들은 잡학 생도가 되는 것을 싫어했다.​ * 평민의 자제들이 주로 잡학을 배웠으나 의학과 역학은 양반 자제들도 많이 배웠다. 조선 초기에는 다른 시기와 비교하여 잡학이 비교적 존중되고, 잡학을 한 사람 중에서도 고관이 많이 배출되었다.​ ⑤ 잡학의 생도 : 조선 초기만 해도 양인 자제뿐 아니라 양반 자제들도 잡학에 입속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러나 양반 자제들이 잡학 생도가 되는 것을 싫어하였다 ----- 따라서 주로 양반의 자기도태 계층(서얼, 문무관 2품 이상의 첩자손)이나 향리나 일반 양인계층이 잡학생도나 기술관으로 입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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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조선시대 임금이 밥을 다먹으면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그건 좀 과장입니다.가족들끼리 그렇게 먹었던건 맞지만저건 과장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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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옛날 사람들의 헤어스타일???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어짜피 상투틀때 정수리쪽 머리는 밀고 상투를 틀기때문에 탈모로가운데 머리가 없더라도 주변머리만 있으면 틀수있습니다.머리 묶어서 탈모가 오는건 모발이 얇아지고 한 상태에서 묶으면 상관이 있는것이지머리를 왠많하게 잡아당겨도 건강한곳은 안빠지기에크게 연관은 건강하면 없다고 보시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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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축구가 영국에서 시작한건알겠어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축국(蹴鞠)'이란 놀이 형태의 공차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축국은 둥근 놀이기구, 이를테면 가축의 방광이나 태반에 바람을 넣어 차거나 던지는 놀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영국을 모태로 하는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피시호의 승무원들을 통해서인 것으로 전해진다.1900년엔 유학생 출신의 궁내부 참리들과 어전통역관 등이 축구클럽을 조직했으며, 1905년 관립 외국어 학교에서 프랑스인 교사가 학생들에게 축구를 지도하기 시작하면서 축구의 체계적인 보급이 시작되었다.한국 최초의 공개 축구 시합은 1906년 3월에 서울 삼선평에서 열린 대한축구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YMCA)간의 시합이라고 할수 있다.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칙하에 경기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갖추고 경기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1920년대부터이다. 1921년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가 개최되고, 1928년 조선심판협회(조선축구협회의전신)가 창립되었다. 1933년에는 조선축구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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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모나리자 그림에 눈썹이 없는 이유는 뭘까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나리자 그림에는 원래 눈썹이 있었다 모나리자의 눈썹에 관해 여러가지 황당무계한 억측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그 당시에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이어서 눈썹을 뽑는 것이 유행이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부터 다빈치가 모나리자 그림에 신비감을 더해주기 위해 일부러 눈썹을 그려넣지 않았다는 등 또는 모델이 그리던 도중 사망했다는 등 이 모든 이야기가 사실상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다빈치는 모나리자의 눈썹을 그렸습니다. 이 것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지워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에는 이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의외이지만 모나리자 눈썹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눈썹을 그렸는데 복원과정에서든 자연적인 이유에서든 그 눈썹이 지워진 것이라는 것은 모든 미술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였습니다. 세계적인 미술사나 미술에 관련된 서적에는 이미 다 나와있습니다. 더구나 이를 뒷받침 하는 것으로 미국 CNN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인 모나리자가 당시에는 눈썹이 그려져 있었다고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를 고해상도카메라 분석으로 찾았음을 뉴스로 이미 보도했습니다.모나리자의 눈썹에 관해서는 다빈치가 그리지 않았다는 설과, 복원하는 과정에서 지워졌다는 의견이 있어 '세기의 미소'의 수수께끼 중 하나였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회자된 것은 사실입니다.CNN에 의하면 분석작업은 프랑스의 기술자 파스칼 콧이 했다고 합니다. 자작한 2억4천만 픽셀의 카메라로 모나리자를 촬영, 그 사진을 더욱 확대해서 상세히 조사한 결과, 오른쪽 눈 위에 눈썹으로 보이는 붓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파스칼은 모나리자의 눈 주위에는 거북이등 모양의 균열이 있고, 복원과 크리닝작업 중 눈썹과 속눈썹을 훼손했다고 것이 사실이고. '눈썹이 있다는 것은 당시에 눈썹과 속눈썹이 그려졌었다는 증거이며 그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파스칼씨는 이 외에도 모나리자의 피부와 배경하늘이 그려졌을 당시에는 선명한 채색으로 되어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분석용으로 쓰인 사진 등은 샌프란시스코의 전람회에서 전시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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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대금은 언제부터 발명된 악기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금은 '만파식적'에서 유래된 악기이다. 신라 31대 왕 신문왕이 어느날 동해에 가 일관에게 보고를 받기를 동해 가운데 작은 산이 떠다니고 더욱 신기한 일은 그 산위의 대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낮에는 둘이 되고, 밤에는 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아뢰었습니다. 신문왕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곳으로 가 용에게 물었습니다. 용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한손으로 손벽을 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두손으로 쳐야 소리가 나듯이, 대나무도 합해야 소리가 나는 것이다. 또 용은 신문왕에게 소리로 천하를 다스리는 상서로운 증조라고 아뢰었고, 신문왕은 그 즉시 그 대나무로 악기를 만들었습니다. 대나무로 만든 악기를 불면 질병이 쾌유되고, 적병이 물러가고, 장마는 멈추고, 물길은 평안해졌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신문왕은 그 피리를 '만파식적' 이라 명명하고, 국보로 삼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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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만행에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일제 감정기때 일본의 만행은 알려진 것만 해도 어마어마 하죠. 우선 위안부 문제가 있는데 위안부란 일제가 일제감정기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을 강제로 징병해가서 일본의 성노리개로 삼았던 일입니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 여성들애게 돈 많이 주는 일자리를 구해준다면서 데려가다가 모집되는 인원이 적자 마을 곳곳에 있는 처녀들을 강제로 데려갔고요 아직도 피해자 할머니 분들이 살아계시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제대로된 사과 한번 한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젊은 남자들을 해외로 징병해가서 고된 노동을 시켰었는데 말이 노동이지 노예나 다름이 없는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 광산에서 일하다가 죽은 노동자도 수없이 많고 남태평양에 끌려간 분들은 전쟁 종결후(1945년)에도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안타 까울 나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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