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하게 된 사건과 그 과정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전두환은 쿠데타를 일으킨 후 국가의 실권을 차지하고, 최규하 대통령 하야 이후 유신헌법에 의해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체육관 선거(간접선거)로 1980년 11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투표 없이 당선된 건 아니고 투표를 하긴 했는데, 국민의 직접 선거가 아니라 형식적 선거였습니다.그 후 유신헌법을 개헌해 제5공화국을 출범시키고, 새 헌법에 따라 다시 대통령선거를 치루어 1981년 7년 임기로 12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이때도 국민의 직접 선거가 아니라 체육관 간접 선거였고, 단지 선거인단 이름만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아니었을 뿐입니다.전두환은 1980~1987년까지 8년 집권합니다. 원래는 간선제를 바탕으로 퇴임 후에도 계속 자신의 허수아비를 세워 영향력을 행사할 계획이었는데, 국민들이 대통령 간선제 유지하겠다는 호헌조치에 반대하며 6월 민주항쟁을 일으키자 이에 굴복하여 현행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집니다.
Q. 약산 김원봉은 좌익과 우익 어느쪽 진영의 사람이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명목상으로는 중도파를 아우른다 하였으나 실상은 사회주의자들이 주도하였던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공동의장이자, 진보적 민족주의 단체인 인민공화당의 위원장이었던 김원봉은 미군정 하에서 더이상의 활동이 어려워졌다. 김원봉과 함께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공동의장이었던 박헌영, 백남운, 허헌은 1947년 말에 모두 월북했다. 하지만 김원봉은 남한에 더 머물렀다.당시 극심한 좌우 대립으로 혼란하던 서울에서 사회주의 핵심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김원봉은 다른 거물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공공연한 협박에 백색테러 위협을 받기도 했다. 남한에서 점차 공개적인 활동이 어려워지자 김원봉은 중국에서 그랬던처럼 거처를 수시로 옮기고 잠행을 했다. 강준만에 의하면 한곳에 2시간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고 한다.1948년 1월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김원봉과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한국 내 좌익 세력의 최대 거물이었던 김원봉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그러나 민전이 와해되면서 김원봉의 권력도 크게 약화되었다. 김원봉은 사마로(司馬路)[39]에게 월북 이전에 보낸 편지에서 '북조선은 그리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남쪽의 정세가 너무 나쁘고 심지어 나를 위협하여 살 수가 없다'고 쓰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이 기정사실화되자 월북을 결심한다. 북조선민전은 1948년 3월 25일에 남북연석회의에 대한 서한을 김원봉 을 포함한 김구, 김규식, 홍명희, 백남운, 박헌영, 허헌, 김창준 등에게 발송 하였다. 남조선민전 등에서도 남북협상 실현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김원봉도 조선인민공화당을 대표하여 남북협상 회의에 참가하겠다고 연락원 을 통해 답신을 보냈다. 남조선민전 발표에 따르면 조선인민공화당은 김원봉 외 7명이 1948년 4월 9일에 새로운 정치무대 평양으로 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