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수동과 능동을 나타내는 분사에 대한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질문에대하여 설명하기 전에 우선 도구개념이되는 자동사와 타동사, 그리고 감정유발동사라는 개념을 먼저 설멸드리겠습니다. 자동사: 목적어의 도움이 없이 주어만을 가지고 온전히 의미를 전달하는 동사(보어가 필요한 경우도 있음). e.g. go, happen, rise, occur, emerge 등타동사: 반드시 목적어(~을, ~에게)의 도움을 받아야 온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동사. e.g. want, get, take, collect, like 등감정유발동사: 영어에서 감정을 나타내는 동사 중 많은 수가 감정 유발동사(타동사)입니다. 가령 surprise는 '놀라다'가아니라 '~를 놀라게하다'의 의미로 반드시 목적어를 필요로 합니다. frustrate, disappopint, shock, excite, interest, irriate등 수많은 감정과 연관된 동사들은 타동사인 감정유발동사입니다. 독특하게도, tire는 자동사(지치다), 타동사(~를 지치게하다)의 용법으로 쓰여집니다. 더하여, 동사의 과거형과 수동태를 구별하셔야합니다. 동사의 과거형은 단순히 동사의 과거형으로 능동, 수동과 관련이 없습니다. 가령, 질문에서 예로 든, tire의 경우 동사의 변화가 tire-tired-tired 로 동사의 과거형과 과거분사의 형태가 같으므로 혼동 될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수동태는 반드시 be+p.p.의 구조를 가져야 수동태라고 합니다(be동사 대신 become, get도 가능). be+p.p.의 구조를 가지지 않은 동사를 절대로 수동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제 질문에 포함된 문장을 살펴보겠습니다. He tried. (능동태): 여기서 tire는 뒤에 목적어를 가지고 있지 않고, 문장에는 반드시 하나의 동사가 있어야 하므로, 자동사로 '그는 지쳤다'입니다. 동사의 과거형이므로 능동태입니다. He was tired. (수동태) :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be+p.p.의 구조로 수동태 입니다. 이 문장에서 tire는 원래 ~를 지치게하다 라는 타동사 인데 뒤의 목적어가 문두로 나오면서 수동태의 구조로 전환된 것입니다. His car was tiring. (능동태-어색한 문장):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동태는 반드시 be+p.p.의 구조를 가지는데, 이 문장은 그렇지 않으므로 능동태 문장입니다. 이 문장에서는 trie는 뒤에 목적어가 없으므로 자동사(지치다)입니다. 그러면 앞에 be동사가 있으니 진행형으로, [그의 차가 지쳐가는 중이었다] 혹은 tiring을 보어로 보아 [그의 차는 지쳤다]정도가 되는데, 사물에게 tire라는 동사를 쓰려면 뒤에 목적어를 취하여, ~를 지치게하다라는 타동사의 의미로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려운 개념들이 서로 섞여 있어 이해하기에 힘든 점이 있으시겠지만, 꾸준히 공부히시어 좋은 결과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다른 어려운 개념에 대한 질문이 있으시면 답글이나 질문으로 올려주세요.감사합니다.
Q. 칸트의 정언명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원칙에 기반하나요?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칸트의 '정언명령'이라는 개념과 '가언명령'이라는 개념은 그의 철학에서 핵심적인 내용인데요, 이중 정언명령이 어떤 원칙에 기반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정언명령이란, 무조건적 명령으로 어떤 목적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옳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지켜야 하는 도덕적 명령입니다. "무조건 ~해야 한다" 또는 "~해서는 안 된다"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또한 절대적이고 보편적 성질을 가지는,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항상, 그리고 예외 없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입니다. 결과나 유용성과 상관없이 오직 의무이기 때문에 행해져야 합니다. 정언 명령이 기반한 원칙을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로, 보편성의 원칙입니다. "네 의지의 준칙(格律)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는 정언명령으로 설명이 됩는데, 이는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의 준칙(내가 따르려는 주관적인 규칙)이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따를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원칙입니다. 만약 내 준칙이 보편화되었을 때 모순이 발생하거나 나 자신도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 준칙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뜻입니다.두번째로, 인격존중의 원칙입니다. 이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너 자신이나 다른 어떤 사람에게나 단순한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고,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위하라"는 정언명령으로 설명되는데,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자기 입법(스스로 도덕 법칙을 세움)이 가능하고, 그 자체로 존엄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결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할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마지막으로, 자율성의 원칙 또는 목적의 왕국(원칙)입니다. 이 또한 "네 의지가 스스로 보편적인 법칙을 세우는 입법자의 역할을 하도록 행위하라"는 정언명령으로 설명됩니다. 이는 이성적인 존재는 외부의 어떤 강제나 유혹 없이 스스로 도덕 법칙을 만들고 그에 따를 수 있는 자율적인 존재라는 원칙입니다. 모든 이성적 존재가 서로를 목적으로 대하는 '목적의 왕국'이라는 이상적인 공동체에서, 각자의 의지가 보편적인 법칙을 세우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칸트의 정언명령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윤리적 문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칸트의 정언명령 세 가지는 나름의 한계점과 현실 반영에서의 어려움, 그리고 다른 가치들과의 충돌 등의 문제점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환경윤리, 기업윤리, 의료윤리, AI윤리등에 적용가능하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Q. 무라카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어떤 내용의 책이며 어떤 메세지를 우리에게 전해주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는 일본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 (ノルウェイの森)'입니다. 비틀즈의 동명 노래에서 제목을 따왔으며 하루키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힙니다.책의 내용: 주인공 와타나베 토루가 37세가 되어 비행기 안에서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다가 스무 살 무렵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1960년대 후반 일본의 격동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상실, 죽음, 사랑, 고독, 방황, 그리고 성숙을 다룹니다.주요 인물과 그들의 관계:와타나베 토루: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 주변 사람들의 죽음과 상실을 겪으며 고독과 혼란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인물입니다.기즈키: 와타나베의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이자 나오코의 남자친구. 어느 날 갑작스럽게 자살하여 와타나베와 나오코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나오코: 기즈키의 여자친구이자 와타나베가 사랑하게 되는 인물. 기즈키의 죽음 이후 깊은 상실감과 정신적인 불안으로 요양원에 입원하며, 결국 다시 한번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미도리: 와타나베가 대학에서 만나는 발랄하고 솔직한 성격의 여성. 나오코와는 대조적으로 현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매력을 가지고 있어, 와타나베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습니다.레이코: 나오코가 입원한 요양원에서 만나는 인물. 나오코의 룸메이트이자 선배로서,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를 지켜보며 조언과 위로를 건넵니다. 그녀 역시 과거의 상처를 지닌 인물입니다.이 소설은 와타나베가 기즈키와 나오코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현실적인 삶과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나오코와의 애틋하고도 비극적인 사랑, 그리고 미도리와의 현실적이고 건강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성장하는 와타나베의 내면이 섬세하게 묘사됩니다.책이 주는 메세지: 상실과 죽음의 보편성: 소설은 죽음이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늘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 등 피할 수 없는 상실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고통받고,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극복해나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이 언젠가 상실을 경험하며, 이는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청춘의 방황과 고독: 196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혼란과 변화의 시대를 상징합니다. 소설 속 젊은이들은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들은 고독과 불안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며, 사랑과 관계를 통해 위로와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이는 비단 그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의 젊은이들 역시 겪는 보편적인 고민과 방황을 대변합니다.삶의 지속과 성장: 소설은 상실의 아픔에 갇혀 죽음을 향해 가는 나오코와, 그 아픔을 극복하고 삶을 향해 나아가는 와타나베를 대비시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어떤 진리나 강인함으로도 치유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아픔을 겪더라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며, 그 상실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해야 함을 강조합니다.현실을 살아갈 용기: 와타나베는 결국 나오코라는 과거의 상실과 작별하고, 미도리라는 현실의 삶과 사랑을 선택합니다. 이는 불완전하고 상처투성이일지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 여기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나아갈 용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결론적으로 '상실의 시대'는 죽음과 상실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그림자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삶의 고통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성숙하며, 결국은 현실을 긍정하고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천사와 악마와의 관계에 있어서, 미카엘과 사탄의 전투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나요?
안녕하세요. 김민수 전문가입니다.미카엘 대천사와 사탄의 전투 형태에 대한 질문인것 같습니다.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성경의 기록을 토대로 유추하고 의미를 추론해야할 것 같습니다. 우선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요한계시록 12장 7절에서 9절"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맞서 싸웠습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큰 용, 그 옛날의 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 온 세계를 속이던 그 자가 떨어졌습니다. 그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부하들도 그와 함께 떨어졌습니다." (공동번역 성서)이 구절에 따르면, 전쟁은 미카엘 대천사가 이끄는 천사 군단과 '용'으로 묘사되는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는 미카엘의 완전한 승리로, 사탄과 그의 세력은 하늘에서 패배하여 땅으로 쫓겨나게 됩니다.질문자께서는 이 싸움의 의미와 의의보다는 싸움의 진행 형태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싸움은 신학적으로 물리적 전쟁이라는 접근 방식보다는 영적인 힘의 충돌, 힘보다는 진리와 권위의 싸움, 실제 칼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선포라는 점에서 이해야셔야 하는게 맞습니다. 또한 미카엘이라는 이름 자체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Mī-khā-’ēl)라는 의미이므로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외침을 대신한다고 이해하셔도 되겠습니다.물론 예술 작품 속에서는 실제의 싸움으로 묘사되고는 합니다만(미카엘이 거대한 용[사탄]을 발로 짓밟거나 창으로 꿰뚫는 모습), 이는 단지 영적 싸움을 시각화하여 상징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