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대한민국에서 시행한 불곰사업이란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불곰사업은 대한민국 정부가 1970년대 초반에 시행한 대규모 사업으로, 일본, 러시아 등에서 매입한 불곰을 한반도에 소개하여 사육 및 번식하도록 육성한 사업입니다.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불곰을 사육함으로써 가축사육산업 및 가죽산업 발전을 목표로 하였으며, 또한 불곰을 도축하여 고기 및 약재 등으로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불곰사업은 1970년대 초반에 시작되어 1980년대에 종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예상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일부 불곰은 사육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사망하였으며, 또한 불곰과 인간 간의 충돌 등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불곰사업은 러시아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며, 주요한 불곰 매입처는 일본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곰이 원래 북방지역에 서식하던 동물이었기 때문에, 이 사업이 한반도 지역에서 시행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Q. 우리 나라 역사에 무속인이 처음 나오게 된 것은 언제 부터 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한국의 무속인 문화는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조선 시대부터 무속적 신앙과 문화가 존재하였으며, 삼국시대부터 특히 귀족 사회에서 무속적인 신앙과 관행이 보편화되었습니다.무속적 신앙의 보편화는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도 이어졌습니다. 고려 시대의 무속적인 신앙은 주로 신앙적인 의미와 함께 예술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예로는 무속인이 참여하는 무용, 음악, 무예 등이 있습니다.조선 시대에는 무속인 문화가 제한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그 시대의 정치적인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는 유교 국가로서 국가의 이념과 사회제도가 유교적인 규범에 기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속인 문화는 존재하였고, 이는 도덕적인 규범을 넘어 인간의 육체와 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20세기 이후, 한국의 무속인 문화는 대중문화와 연결되어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발전해왔습니다. 현재에도 여전히 무속적인 신앙과 문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문화와 사회 제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Q. 티비에서 잉카문명에 대해 보여주던데 잉카문명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잉카문명은 약 13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명으로, 이전에 존재하던 문명들을 흡수하고 통합하여 발전해온 문명입니다.잉카문명은 주로 농경과 양식, 건축, 도로망, 통신 등에서 뛰어난 발전을 이루어내었습니다. 특히, 안데스 산맥 지역의 가파른 산악 지형에서도 농경기술을 발전시켜 다양한 식물들을 재배하였고, 도로망을 구축하여 수많은 지역들을 연결하였습니다.잉카문명의 사회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군주제로 운영되었는데, 군주는 신의 후계자로 여겨졌으며, 국가의 재산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국민은 국가의 재산을 공유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잉카문명은 스페인 정복자들에게서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그들이 남긴 유산은 현재까지도 남아있어 많은 사람들이 잉카문명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Q. 전쟁을 일으킨 국가가 패했을때 동맹국은 전쟁 배상금 안내도 되나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동맹국이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지 여부는 그 동맹국이 전쟁에서 실제로 참전했는지 여부와 어떤 조건에서 동맹을 맺었는지에 따라 다릅니다.태국은 1941년 12월 8일, 일본이 진격을 개시한 날, 일본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나 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고, 주로 후방 지원과 인프라 구축 등의 역할을 맡았습니다.전쟁에서 패배한 동맹국은 일반적으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하지만 태국은 일본과의 동맹 조건 중 하나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태국은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이후 태국과 국제사회 간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태국은 전쟁 피해 국가들에게 복구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일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에게도 보상금을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Q.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이론에서 종교는 경제적인 억압과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종교는 권력의 유지와 사회 질서의 유지를 위한 일종의 '위안' 혹은 '아편'으로 작용한다고 봅니다.카알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간이 자신의 본질적인 자유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존재하는 일종의 일시적인 보상"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에 따라 종교는 경제적 억압과 권력의 차원에서 작동하며, 진정한 인간의 자유와 혁명적 변화를 방해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인간의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이익의 상충으로 이해하며, 경제적인 불평등과 권력의 집중이 종교적 신념과 관행을 지속시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따라서 종교가 권력과 경제적 이익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공산주의의 이념과 민중의 혁명적 변화를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종교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들을 간단하게 단순화하고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서, 종교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 다양한 입장들과 충돌하고 있습니다.
Q. 비류라는 사람은 자살했다고 하던데 도시의 자랑거리가 되는게 맞나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비류(比流)는 고구려 시대에 살았던 왕자로, 왕족들 중에서 가장 인재가 있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철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겨서 후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았습니다.비류가 자살한 이유는, 그가 온조의 건축사업을 비롯한 정책에 반대했지만 이것이 이루어지자 더 이상 백성이 머무르기 좋은 곳이 아닌 미추홀을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러한 정책과 백성의 이동에 반대하는 심정으로 자살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인천 미추홀구에서 비류문화를 홍보하는 것은, 비류가 미추홀에서 살았던 것과 그의 업적을 기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비류의 자살과는 별개로 미추홀은 인천의 중요한 지역 중 하나로,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와 역사적 유산을 지니고 있습니다.
Q. 보이스카웃은 어떻게 만들어진 단체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보이스카우트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창설된 청소년 단체입니다. 1907년 영국에서 스카우트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미국으로 전파되어 1910년에 미국 보이스카우트 단체가 창설되었습니다. 보이스카우트는 청소년들의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캠핑, 등산, 낚시, 요리, 예절, 기부 등의 활동을 통해 자립심과 협동심, 책임감 등의 미덕을 심어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보이스카우트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으며, 다양한 국가 및 지역에서 각각의 문화와 환경에 맞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Q. 1592~1598년까지 7년동안 계속 된 임진왜란을 다른 한편으로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의 정치적인 야심과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일어난 전쟁으로, 이전의 조선과 일본 사이의 교류가 적었던 상태에서 갑자기 침략을 일으켰기 때문에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이전까지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는 왕래가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침략은 완전한 놀람과 충격을 조선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은 처음에는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일본군의 성공적인 전략과 무기력한 왕정의 대응으로 점차 전쟁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이전에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군이 침략을 할 때에는 조선의 군사 전략을 예측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조선 군대는 일본군과는 달리 도시 전투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군의 공세에 대처하기가 어려웠습니다.따라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도자기 전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이는 조선이 무기력하게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도자기를 깨뜨리는 듯한 모습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Q. 외국에는 수백년이 지난 건물들이 많은데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외국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지어진 건물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첫째, 외국에서는 건물을 장기간 사용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내구성과 수명을 고려하여 만들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건물들이 많습니다.둘째, 외국에서는 건축물의 보존과 복원에 대한 역사와 문화적인 관심이 높습니다. 많은 유적지나 역사적인 건물들이 국가적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정기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셋째, 외국에서는 건축 기술과 건축 자재의 질이 높습니다.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전통적인 건축 기술과 자재를 유지하면서도, 현대 기술을 도입하여 보존과 복원을 할 수 있습니다.넷째, 외국에서는 건물의 역사적 가치나 문화적 의미가 인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습니다.하지만 한국에서도 전통적인 건축 기술과 자재를 적극 보호하고, 보존과 복원에 대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역사적인 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고려하여 건축물을 설계하고 건축을 하는 데 있어서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