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일본의 마루타 실험에 대해서 궁금한 적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일본이 자행한 극도로 반인륜적인 실험 중 하나가 마루타실험(Maruta Experiment)입니다. 마루타는 일본어로 "통나무"를 의미합니다.마루타실험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의 특별한 의학부대인 "731부대"가 수행한 인체실험으로, 주로 중국인과 소련인 포로, 화자 및 군인 등에게 실시되었습니다. 실험은 기본적으로 생체실험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체온, 혈압, 심박수, 호흡 등을 측정하고, 각종 병원균, 박테리아, 독균 등을 접종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상처를 내어 상처 치료나 감염증에 대한 치료 등을 실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험에서는 대부분의 대상자가 사망하였으며, 일부 생존자들에게는 후유증과 장기적인 신체적, 정신적 피해가 남았습니다.마루타실험은 당시 일본군이 병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간 실험을 수행하였던 것으로, 인류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는 엄청난 범죄행위입니다. 이 실험은 일본군의 인신매매, 성노예화, 대량학살 등과 함께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 행위 중 하나로 꼽히며, 일본군의 전쟁 범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Q. 조선의 고종이 커피를 그렇게 좋아했다는 사실이 정말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조선 시대에는 커피가 아닌 '가비'라는 용어로 불리는 차가 유행했습니다. 가비는 인도네시아나 인도 등에서 생산되는 차로, 커피와는 다른 종류의 음료였습니다.고종은 1896년 이후 일본에서 강제토지개혁을 받은 후, 국외여행을 다녀오면서 커피를 처음 맛보았습니다. 이후 국내에 커피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고종은 커피에 빠졌고, 참차처럼 매일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하지만 조선 시대에는 커피가 들어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고종이 실제로 가비를 마시던지 커피를 마시던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종의 커피 취향은 국내 커피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했으며, 한국 커피산업의 역사와 연관된 중요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Q. 람세스2세가 자신을 신격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람세스 2세는 자신을 신격화한 이유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우선, 람세스 2세는 파라오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그 자체로 이미 매우 위대하고 권위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람세스 2세가 자신을 신격화 시키는 것은 자신의 위엄과 권력을 더욱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또한, 람세스 2세는 자신의 통치 기간 동안 국가를 강력하게 통치하였으며, 그의 통치는 큰 번영을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성취를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통치를 신의 가호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믿음을 신성화한 것이 아부심벨 신전인 것입니다.또한, 이러한 건축물들은 그 시대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위엄과 권력을 인식하고 나타낼 수 있는 상징적인 건축물이었습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통치자의 권력과 지위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람세스 2세가 자신을 신격화한 것은 이러한 상징적인 건축물을 건설하고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마지막으로, 람세스 2세는 자신이 신격화되어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자신의 건강과 안녕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가 영원히 기억될 것임을 의미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그의 건강과 안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신격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따라서, 람세스 2세가 자신을 신격화한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조합되어 있을 것이며, 그 중에는 자신의 위엄과 권력을 강조하고 나타내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Q. 그리스로마신화 책을 읽으면 어떤게좋은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양문명의 기원이자 대표적인 문화 유산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신화는 수천 년간 서양 지역에서 인간들의 상상력과 예술적 창조력을 자극하며 발전해왔습니다.그리스 로마 신화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인간의 복잡한 심리적 상태와 감정을 다루는 데 있습니다. 그들의 신들과 영웅들은 인간적인 재능과 결함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인간성을 탐구하며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훌륭한 예술과 문학 작품으로 구현되었으며, 이후 수세기에 걸쳐 서양의 다양한 예술, 문학, 철학 등의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인간의 문제와 상황들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신화의 이야기들은 인간의 열망, 갈등, 충동, 성격의 결함 등을 다루며, 이를 통해 우리가 마주치는 다양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합니다.마지막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인간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자극해주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들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며, 이를 통해 우리의 창조력과 상상력을 자극해주며 우리 자신의 인간성을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합니다.따라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우리가 인간성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예술 작품이며, 또한 우리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자극하여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예술 작품입니다.
Q. 옛날에 백인노예도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노예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백인도 노예가 되는 경우는 일부 있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이는 대부분 아프리카나 유색 인종의 노예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노예제도가 생기게 된 원인은 각 나라나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이유와 인종차별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백인 지주들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노예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이를 통해 대규모 농장과 식물원을 운영하였습니다. 이러한 식으로 노예를 이용한 생산 방식은 인종차별적인 사고와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결과였습니다.그러나 백인 노예도 존재했던 이유는, 노예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는 사회적 계층 구조와 인종적인 편견이 노예제도의 존재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일부 경우에는 백인 노예가 강제로 노예로 되었거나, 범죄나 빚 때문에 노예로 팔려갔던 경우도 있었습니다.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였고, 대체로 노예제도는 인종차별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로 생겨난 것입니다. 따라서, 백인 노예가 대다수를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Q. 프랑스 국민이 연금개혁안에 분노한 이유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프랑스에서의 연금 개혁안에 대한 시위는 2019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위의 원인은 정부가 연금제도 개혁을 추진하면서 연금 수령 시기와 연금액 조정 등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기존의 연금제도는 정년 이후 62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지만, 정부는 이를 64세로 올리고 최저 연금 수령액을 인상하는 등의 개혁안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들은 이러한 개혁안이 불공평하다고 여겨 연금 개혁에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개혁안으로 인해 연금 수령 시기와 연금액이 감소될 것이라 우려했으며, 이를 예견하여 시위를 벌였습니다.이러한 시위가 우리의 불길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를 통해 우리는 보다 나은 연금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는 점과, 연금제도 개혁은 민감한 문제이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
Q. 우리나라에 안경이 실제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한국에서 안경의 보급 시기는 20세기 초반으로 추정됩니다. 1910년대에 일본식 안경이 소개되면서 한국에도 안경이 도입되었고, 1920년대에는 한국에서도 안경을 만드는 제조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실제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사이입니다. 이 시기에는 안경을 구입할 수 있는 지점이 증가하고, 안경의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안경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돋보기의 보급 시기는 안경과는 조금 다릅니다. 돋보기는 안경보다 더 오래된 기술이지만, 한국에서 상용화된 시기는 안경과 비교하면 더 늦었습니다. 돋보기는 19세기 후반부터 조금씩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20세기 초반에는 대중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안경과 달리 돋보기는 보급되는 데에는 시간이 좀 더 걸렸습니다.
Q. 조선시대는 하루에 밥을 몆끼나 먹었나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세 끼를 먹는 것이 기본 원칙은 아니었습니다. 대개 인구의 대다수는 생계유지를 위해 식량 부족이라는 현실을 경험하였고, 식사도 제한적이었습니다. 특히, 군사들과 권세층의 경우에는 다소 풍족한 식사를 즐기는 반면, 서민층과 노비들의 경우에는 기아와 영양실조가 일상적인 문제였습니다.조선시대의 식문화에서는 삼시세끼 개념이 없었고, 하루 한 끼를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때 한 끼의 식사에는 주로 밥과 국, 나물 등 간단한 반찬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풍년의 경우에는 더 많은 반찬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또한, 흔히 양념이나 조미료로 사용되는 고춧가루, 간장 등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간단한 조미료만을 사용했습니다.조선시대의 식사 형태는 지금과는 다르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식량 부족 문제와 권세층과 서민층간의 식사 격차는 조선시대의 식문화에서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Q. 가장 비싸게 팔려나간 미술작품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미술품의 가치는 작가의 이름, 작품의 희소성, 작품의 상태와 유명도 등 여러 가지 요소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그 가장 비싼 작품은 계속해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가장 비싼 미술품으로는 아래와 같은 작품들이 소개됩니다.《The Card Players》, Paul Cézanne, 2011년에 2억 5천만 달러(약 2,800억 원)에 판매됨.《Interchange》, Willem de Kooning, 2015년에 3억 0.5천만 달러(약 3,400억 원)에 판매됨.《Nafea Faa Ipoipo (When Will You Marry?)》, Paul Gauguin, 2015년에 3억 0.0천만 달러(약 3,400억 원)에 판매됨.《Number 17A》, Jackson Pollock, 2016년에 2억 0.5천만 달러(약 2,300억 원)에 판매됨.《Salvator Mundi》, Leonardo da Vinci, 2017년에 4억 50.6만 달러(약 4,800억 원)에 판매됨.위 작품들은 높은 예술가치와 동시에, 작가의 이름과 작품의 희소성 등이 모여서 이러한 높은 가격을 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