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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역사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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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광 전문가
카이로스 아카데미
Q.  조선시대에도 배를 타고 멀리 나간 사람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도 배를 타고 멀리 바다로 나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선은 주로 농업과 내정을 중시한 나라였지만, 외교나 무역, 공물 수송, 그리고 표류 등의 이유로 바다를 이용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대표적으로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위해 조선통신사를 파견했으며, 이들은 배를 타고 일본의 에도(지금의 도쿄)까지 항해하며 문화와 학문을 교류했습니다. 또한 조선 성종 때의 관리인 최부는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중국 해안으로 표류한 후, 그 여정을 기록한 『표해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이 외에도 곡물과 물자를 서울로 운반하기 위한 조운선들이 남해와 서해를 따라 움직이며 중요한 해상 수송 역할을 했습니다. 일부 상인들은 동남아시아나 중국과의 무역 활동을 위해 바다를 건너기도 했습니다.
Q.  비행기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비행선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비행기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비행선은 존재했으며, 한때 항공 기술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었습니다. 비행선은 고정된 날개 대신 가벼운 기체(헬륨이나 수소)를 채운 거대한 기낭을 통해 공중에 뜨는 비행체로, 열기구와 비행기의 중간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비행선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발히 개발되었으며, 특히 독일의 페르디난트 체펠린이 개발한 '체펠린 비행선'이 유명합니다. 이러한 경식 비행선은 내부에 금속 구조를 가지고 있어 형태를 유지하며, 엔진과 조종실도 갖추고 있어 일정한 방향으로 비행할 수 있었습니다.20세기 초에는 비행선이 장거리 항공 운송 수단으로 각광받았습니다. 실제로 1920~1930년대에는 대서양을 횡단하는 정기 여객 비행선 운항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1937년, 독일의 힌덴부르크 호가 미국 착륙 중 폭발하며 3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비행선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습니다. 이후 더 빠르고 안전한 비행기 기술의 발달로 인해 비행선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Q.  미국의 메모리얼데이는 어떤날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메모리얼 데이의 기원은 미국 남북전쟁 직후인 18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각 지역에서 전사자들의 무덤에 꽃을 바치고 추모 행사를 열던 관습이 점차 퍼지면서, 1868년 북군 참전용사 단체인 '북부재향군인회'에서 처음으로 ‘장식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제정하였습니다. 이후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전쟁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모든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을 기리는 날로 확대되었고, 1971년부터 현재의 ‘메모리얼 데이’로 명칭이 바뀌며 연방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이 날에는 워싱턴 D.C.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공식 추모식이 열리며, 대통령이나 고위 관료가 무명용사의 묘에 화환을 바치는 행사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미국 전역에서는 추모 행진, 기념 행사, 묘지 방문 등이 이뤄집니다. 한편, 비공식적으로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로 여겨져 가족 모임이나 야외 활동도 많이 이루어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Q.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성물들은 정말 신빙성이 있는 것들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가톨릭에서 말하는 ‘성물’은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는 물건으로, 성인의 유해, 그들이 사용한 물건, 또는 축성된 십자가, 묵주, 메달 등입니다. 이러한 성물은 하느님의 은총을 전하거나 믿음을 북돋는 도구로 여겨지며, 물질 자체에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가르칩니다.또한 가톨릭 교회는 성물이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라는 입장인데, 이러한 성물들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합니다. 일부 성물은 명확한 역사적 근거 없이 전승이나 구전에 의존한 경우도 있으며, 중세 유럽에서는 성물과 관련된 사기나 남용도 존재했습니다. 이에 따라 오늘날 교회는 성물의 진위 여부에 대해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며, 실제로 교황청이나 교구에서 정식으로 인증받은 경우에만 공식 성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Q.  을지문덕이 전설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을지문덕은 고구려의 명장으로, 특히 수나라의 침입을 막아낸 살수대첩에서의 활약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을지문덕의 가장 큰 업적은 612년 살수대첩에서 수나라의 대군을 물리친 것입니다. 당시 수나라의 양제는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약 113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침공했습니다. 이는 동아시아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원정이었지만, 을지문덕은 뛰어난 전략과 지략으로 이들을 물리치는 데 성공합니다.그는 처음에는 수나라 군대와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유인과 후퇴를 반복하며 적의 보급로를 끊고 지치게 만드는 전술을 펼쳤습니다. 또한 적장 우중문에게 시를 보내는 등 심리전도 펼쳐 적의 혼란을 유도했습니다. 결국 수군이 퇴각하는 틈을 타 살수(오늘날의 청천강) 부근에서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수나라 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이 전투에서 수나라 군대는 대부분 전멸하거나 퇴각했고,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은 실패로 끝났습니다.을지문덕의 이 승리는 단순한 전투의 승리를 넘어서, 고구려의 독립과 주권을 지켜낸 사건이었고, 동북아시아에서 고구려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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