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나라와 흉노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해 갔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기원전 3세기 말에서 2세기 초, 진나라가 멸망한 뒤 혼란한 시기를 틈타 흉노는 세력을 확장하였고, 한 고조 유방은 흉노와의 충돌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습니다. 기원전 200년, 유방은 백등산 전투에서 흉노의 묵특선우에게 포위당하며 패배하였고, 이후 한은 흉노와의 무력 대결을 피하고자 화친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이 정책은 공주를 흉노에 시집보내고, 조공을 바치는 방식으로 평화를 유지하려는 것으로, 이를 “호한통혼” 또는 “친선 외교”라 부릅니다. 하지만 이 화친책은 흉노의 침입을 근본적으로 막지 못했고, 한 내부에서도 굴욕적인 외교로 여겨졌습니다.이후 한나라 무제(재위: 기원전 141~87년)는 적극적인 정복 정책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는 장건을 서역으로 파견해 흉노를 견제할 연합 세력을 모색하는 한편, 실질적으로는 군사 원정을 단행하여 흉노를 압박했습니다. 특히 기원전 119년의 하란산 전투에서는 이광리와 위청이 이끄는 한나라 군이 흉노를 크게 격파하였고, 이는 한나라가 군사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이후 흉노는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남흉노는 결국 한나라에 복속되어 한나라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북흉노는 일정 기간 독립을 유지했으나, 지속적인 한의 공격과 내부 갈등으로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Q. 신성로마제국은 어느시기부터 쇠퇴를 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신성로마제국이 본격적으로 쇠퇴기에 접어든 시점은 17세기 중엽, 특히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 이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조약은 30년 전쟁을 종결시키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신성로마제국의 정치적 분열과 황제 권한 약화를 공식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다음으로 쇠퇴기에 접어든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30년 전쟁은 종교 갈등에서 시작되었지만, 점차 유럽 강대국들의 세력 다툼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제국 내 수많은 도시와 농촌이 초토화되었고, 인구 감소와 경제 붕괴가 이어졌습니다. 황제는 제후들을 통제하지 못했고, 오히려 외국 세력이 제국 내부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게 되었습니다.또한 베스트팔렌 조약의 체결로 인해 신성로마제국 내 제후들에게 외교권과 독립적인 통치권을 인정하였고, 제국은 사실상 수백 개의 독립 국가들의 연합체가 되었습니다. 황제의 권한은 상징적인 수준으로 축소되었으며, 중앙정부 기능은 거의 마비되었습니다.마지막으로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유럽은 주권국가 중심의 국제 질서로 전환되었습니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과 같은 중앙집권 국가들이 급속히 성장한 반면, 신성로마제국은 중세적인 봉건 분권 체제를 유지한 채 변화에 뒤쳐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