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삼국사기에 고구려를 하구려라 낮잡아 기록된 부분도 있다는데 왜 그런 기록이 있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삼국사기에서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麗)’라고 기록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우선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유교적 관점에서 편찬한 역사서입니다. 김부식은 유교 이념에 따라 질서와 중앙집권을 중시했으며, 고구려보다 신라를 더 이상적인 국가로 보았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삼국 중 고구려는 상대적으로 덜 문명화되고, 무력 중심의 국가로 인식되었고, 이에 따라 신라보다 ‘낮은’ 위상으로 평가되었던 것입니다.또한, ‘하구려’라는 표현은 단순히 위치적인 개념이 아니라, 삼국 간의 서열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적 용어로 볼 수 있습니다. 김부식은 신라를 ‘상국(上國)’으로, 백제와 고구려는 각각 ‘중’, ‘하’로 분류하여 신라 중심의 역사관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당시 고려 왕실이 신라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라의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고구려를 ‘하구려’로 낮춰 표현한 것입니다.
Q. 천동설을 무려 1000년넘게 과거에 주장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과거에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천동설이 주장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먼저, 천동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에 의정립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가 중심이라는 우주관을 제시했고, 프톨레마이오스는 이를 바탕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체계적인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델은 당시 관측 가능한 천체의 움직임을 꽤 정확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과학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또한, 사람들은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을 체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구가 정지해 있고 다른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겼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지구가 돈다면 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지, 또는 하늘의 별들이 왜 위치를 바꾸지 않는지 등의 질문이 생겼고, 당시의 지식으로는 이를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무엇보다도, 중세 유럽에서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했는데, 성경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 구절들이 있었습니다. 천동설은 이러한 종교적 세계관과 잘 맞았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천동설을 지지했고, 이는 학문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Q. 삼국시대부터 먹던 우리나라의 전통 면 요리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의 면 요리는 삼국시대부터 존재해 왔으며, 메밀을 주재료로 한 국수나, 중국에서 전래된 제분 기술을 바탕으로 만든 밀면 형태의 음식들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면 요리는 더 다양해졌고, 오늘날의 국수, 칼국수, 냉면 등의 전통 면 요리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Q. 중국에 남아있는 우리 조상의 무덤은 대표적으로 어떤 무덤들이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중국 대륙에는 고려, 조선, 발해, 고구려 등 우리 역사와 관련된 조상들의 무덤이 여전히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들 무덤은 대부분 고대 한민족의 활동 영역이 넓었던 만주와 요동 지역, 또는 역사적으로 중국과의 교류가 잦았던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무덤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할 수 있습니다.첫째, 고구려의 왕릉과 귀족 무덤입니다. 중국의 지린성(길림성)과 랴오닝성(요령성) 일대에는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지안)과 그 주변에 조성된 수많은 무덤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장군총(將軍塚)은 고구려 초기 왕릉으로 알려져 있으며, 피라미드 형태의 거대한 석실분으로 그 규모와 축조 기술이 뛰어납니다. 또한 이 지역에는 무용총, 각저총, 쌍영총과 같은 고분 벽화 무덤들이 다수 존재하여 고구려인의 생활상, 종교관, 예술 수준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들 무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습니다.둘째, 발해의 무덤도 중요한 유산입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 국가로, 중국 동북부의 흑룡강성과 지린성 지역에 걸쳐 존재했습니다. 대표적인 무덤은 정혜공주묘와 정효공주묘로, 이 무덤들은 벽화와 묘지석을 통해 발해 귀족 문화와 고구려 문화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정효공주묘에서는 당시 사용되던 한자 묘지석이 발견되어 발해의 문자 사용과 외교 관계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임진왜란 때 동해 남해 부근 바다 깊숙한곳에 아직도 그때 전쟁을 했던 당시 옛날 물건들이 바다속에 많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임진왜란 당시 동해와 남해 일대는 많은 해전이 벌어졌던 주요 격전지였습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활약하신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 노량 해전 등은 남해안 근처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전선(戰船)이 침몰하고 다양한 전쟁 관련 물품들이 바닷속에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이 지역 해저에는 아직도 당시 사용되었던 무기, 군수품, 생활용품, 선박 부품 등이 남아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실제로 통영 앞바다나 진도 울돌목 등에서는 수중 발굴을 통해 임진왜란 시기의 유물들이 일부 발견된 바 있습니다. 이들 유물은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연구 대상으로 활용되며, 당시의 전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하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많은 유물들이 여전히 해저 깊은 곳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다의 조류, 퇴적물, 바위 지형 등 자연환경뿐 아니라 발굴을 위한 기술적·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아직까지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입니다.
Q. 인도 점성술과 중국 점성술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인도 점성술은 베다 경전에 뿌리를 둔 전통적인 점성술로, '조티시(Jyotish)'라고 불립니다. 주로 서양 점성술과 유사한 12궁도 체계를 사용하지만, 시드레얼 별자리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는 실제 별자리를 기준으로 하여 별자리의 위치를 계산하기 때문에, 같은 생년월일이라도 서양 점성술의 태양 별자리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인도 점성술은 개인의 출생 시각과 장소를 매우 중요시하며, 출생 차트를 바탕으로 인간의 카르마(업), 전생의 영향, 운명 등을 분석합니다. 또한 다샤(Dasha)라는 시기 체계를 통해 인생의 주기와 중요한 변화를 예측합니다.반면 중국 점성술은 주로 음양오행 사상과 십간십이지에 기반을 둡니다. 사람의 운명을 분석할 때 사주팔자를 중심으로 하며, 이는 출생한 해, 달, 날, 시의 네 기둥(사주)을 각각 하늘의 천간과 땅의 지지로 나눈 팔개의 요소로 구성됩니다. 여기에 오행(목화토금수)의 상생상극 관계와 음양의 조화를 고려하여 인간의 성격, 건강, 직업, 대인 관계, 운의 흐름 등을 분석합니다. 또 하나의 독특한 특징은 12간지(띠)를 바탕으로 하는 점성법으로, 해당 해에 태어난 사람의 성격과 궁합을 간단히 예측하는 데 널리 사용됩니다.정리하자면, 인도 점성술은 천체의 실제 위치와 개인의 전생·업보·운명 분석에 초점을 둔 우주 중심의 점성술인 반면, 중국 점성술은 시간의 흐름과 음양오행의 조화를 통해 인간의 삶을 분석하는 자연 철학 기반의 운명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아편 전쟁후 난징조약 채결로 중국의 항구 개방후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중국의 문화가 변동된 것이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아편 전쟁 이후 체결된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중국은 여러 항구를 서양 열강에 개방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서양의 문물이 급속히 유입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우선, 의복과 생활양식에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서양식 복장과 머리 스타일이 일부 상류층과 개혁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고, 서양식 건축물과 가구, 식기 등이 도입되면서 생활공간도 변화했습니다. 교육 면에서는 서양식 학제가 도입되며 전통적인 한학 중심의 교육이 점차 약화되고 수학, 과학, 외국어 등을 가르치는 신식 학교가 세워졌습니다.또한 인쇄술과 출판기술의 발전으로 서양의 사상과 과학 기술, 정치 체계에 대한 책자들이 번역되어 소개되면서,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개혁과 근대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유교 중심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도전하는 사조들이 등장하였고, 점차 중국 사회는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Q. 쇼카콜라는 독일에서 군인들이 전쟁시에 비상식량으로 사용을 했다는데, 어떤 것이 도움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초콜릿은 독일 군인들이 전쟁 시기에 비상식량으로 자주 사용한 식품 중 하나였으며, 이는 여러 가지 실용적인 이유에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첫째, 고열량 식품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초콜릿은 단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전투나 행군 등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상황에서 병사들이 빠르게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특히, 독일군은 초콜릿을 ‘전투 식량’의 일환으로 배급하면서, 병사들이 장시간 음식 없이 버틸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둘째, 보관과 휴대가 간편했습니다. 초콜릿은 다른 음식에 비해 부피가 작고 가벼우며, 잘 상하지 않아 전쟁터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했습니다. 이는 장거리 이동이나 보급이 어려운 전투 상황에서 큰 장점이었습니다.셋째, 심리적인 위안의 역할도 했습니다. 전쟁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겪는 병사들에게 초콜릿은 달콤함을 통해 일시적인 기쁨과 안정을 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극심한 피로와 공포 속에서 초콜릿 한 조각은 정신적인 휴식처가 될 수 있었습니다.
Q. 1차세계전쟁과 2차세계전쟁에서 사용되었던 전투식량은 무엇이 사용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전투식량은 병사들의 이동 방식, 물자 보급 상황에 따라 달라졌지만, 공통적으로 병사들이 장기간 전투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간편하고 보존성이 높은 식품이 중심이었습니다.1차 세계대전에서는 참호전이 주된 전투 방식이었기 때문에, 식량 보급이 어렵고 제한적이었습니다. 주로 통조림 식품, 말린 고기, 딱딱한 비스킷, 건조 콩이나 완두콩, 말린 감자 등이 제공되었습니다. 식사는 영양을 공급하는 데 중점을 두었지만 맛이나 다양성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고, 식량의 부족과 품질 문제로 병사들의 사기는 종종 낮아졌습니다. 물과 차도 보급되었으며, 일부 병사들은 술이나 담배도 지급받았습니다.2차 세계대전에서는 보급 체계가 더욱 발달하면서 전투식량의 종류와 질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K-레이션(K-Ration), C-레이션(C-Ration)과 같은 전투식량이 개발되어 보급되었습니다. K-레이션은 개인이 하루 동안 소비할 수 있도록 구성된 패키지로, 통조림 햄, 크래커, 건조 과일, 껌, 커피 분말, 설탕, 초콜릿 바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독일, 영국, 일본 등도 각자 국가 상황에 맞춘 전투식량을 개발했으며, 말린 국수, 즉석 스프, 쌀, 통조림 육류, 과자류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Q. 레오폴드 2세는 고무농장 및 카카오 농장을 만들어가고 착취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어느 정도로 잔혹 행위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레오폴드 2세가 고무농장과 카카오 농장에서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이유는 주로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벨기에 국왕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콩고 자유국을 식민지로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유럽과 미국에서는 고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레오폴드 2세는 이 기회를 이용해 콩고의 천연자원을 착취하고자 했고, 고무와 카카오 같은 상품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원주민들에게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그는 콩고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폭력과 공포를 수단으로 삼았는데,원주민들이 고무 채취량을 채우지 못하면 신체 절단, 처형, 가족 인질 등 극단적인 처벌이 가해졌습니다. 이는 국제 사회의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1908년에 벨기에 정부가 콩고 자유국을 국왕 개인 소유에서 회수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