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전세계에서 유명한 스타벅스의 이름의 유래를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스타벅스라는 이름의 탄생 유래는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 최초의 스타벅스 설립자는 고든보커, 제럴드 제리 볼드윈, 지브 시글 3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동창이었는데 커피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졸업 후에도 양질의 커피를 공유하는 모임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시애틀에서 3명이 공동투자를 하여 커피의 원두를 파는 작은 소매점을 열게 됩니다. 당시 카페의 이름을 고민하던 중 소설 모비딕의 1등 항해사인 스타벅이 커피를 사랑한다는 것에 기인하여 자신들을 3명의 스타벅이라는 뜻으로 '스타벅스'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대표 로고를 생각하던 중 바다와 관련되어 있고, 자신들의 가게에 사람들이 커피맛에 홀려 자주 들르기를 바라는 마음에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을 상징으로 도입하였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Twin tail Siren입니다. 초기의 로고는 위 사진에 있는 것과 같이 조금 괴기스러운 면도 있고, 선정적이라는 지적이 있어 좀더 단순화하고 거부감을 배제하여 현재의 로고가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가 어플로 직접 주문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이렌 오더'도 여기에서 근원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참고로 스타벅스 음료의 사이즈 명칭은 1982년 CEO였던 하워드 슐츠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Q. 역사적으로 나라가 망할때 어떤 현상이 일어났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가가 멸망할 때는 몇 가지 공통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 대외적으로는 1. 왕권이 약화되고, 권문세족들의 권력이 강해진다.2. 국가 핵심세력들이 자국이 아닌 타국과 많은 관계를 갖는다. 3. 왕권이 약화되었으니 왕권을 노리는 자들이 많아지기 마련이고 이에 왕족 간의 내분과 내란이 자주 일어난다.4. 공교롭게도 상기와 같은 상황에 주변국의 국력이 강해지고, 세력 확장시기가 도래한다5. 폭군의 출현 및 국가 지도자들의 이탈 (극단주의 심화)6. 모든 계층의 부패사회적 문화적 환경적으로는1. 음주가무 및 성생활이 문란해진다.2. 생산성은 떨어지고 소비성향이 강해진다.3.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붕괴된다.4. 천재지면 재난 및 식량, 자원의 고갈 (기근)5. 종교 탄압 또는 종교 부패등이 역사적으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우리나라 트로트는 언제부터 대중화가 되었나?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도입의 시기로 따진다면, 일본과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에는 엔카라고 하는 트로트와 유사한 장르의 음악이 있습니다. 사실 엔카도 정식 장르명인 트로트와 같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엔카는 1880년대 메이지유신 때 연설을 위한 곡으로 초기의 엔카가 만들어졌다가 서양의 7음계가 들어오면서 그것을 일본식의 5음계로 고쳐서 적용되었습니다. 1914년 4/4박자의 폭스 트로트라는 장르가 들어와 결합되면서 지금의 엔카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기에 트로트 장르가 들어왔고, 우리의 민요와 섞여서 특유의 민족의 희로애락을 담은 음악으로 전통가요라 칭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처음 우리 나라에도 전해져 2/4박자 즉 '뽕짝'이라는 트로트가 시작되어 발전되었습니다. 1930~1940년대에 백년설, 고복수, 이난영, 남인수, 이애리수를 중심으로 한국 트로트는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합니다. 당시는 트로트를 고급음악이라고 생각했고, 그 수준도 높아 작품성을 인정받을 때였습니다.그러다가 1950~1960년대에 들어서 한국전쟁 이후에 트로트는 고급음악을 벗어나 대중성에 한창 열을 올리게 됩니다. 박재홍의 울고 넘는 박달재, 현인의 신라의 달밤 등이 히트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0~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트로트음악은 새로운 세대들이 서구에서 들여온 포크, 발라드, 락, 댄스, 힙합 등 다양한 서구음악이 들어오면서 낡은 음악, 수준이 낮은 음악으로 치부되는 암흑기를 거치게 됩니다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트로트계에서의 스타들은 탄생하고 있었고 김수희 등 대스타들이 있어 그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발라드의 유재하, 김현철, 신승훈 등과 락, 댄스, 힙합의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시나위, 부활 등 유명한 뮤지션들이 출현하게 됩니다. 트로트에게는 강적들이었죠. 2000년대 이후에 들어어서면서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또다시 부흥기를 가져옵니다. 장윤정, 박상철, 박현빈, 홍진영, LPG 등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고연령층의 팬만을 타겟으로 하던 지난 트로트 문화를 젊은 사람들에게까지 확대시키면서 또다시 힘을 키워가게 됩니다. 그리고 최근 수년간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소위 대박을 치면서 남녀노소가 모두 즐기는 음악으로 트로트가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아이돌 출신의 가수가 트로트로 전환하고, 어린 트로트신동이 계속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서도 트로트 음악을 하며, 그 수준 또한 많이 올라가고 팬층도 두터워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트로트가 대중화된 시기가 언제냐 하면 지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채널의 방송에서 트로트에 대한 소개와 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방송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자칫 아이돌이 판치는 음악방송처럼 식상해질까봐 두렵습니다. 단순히 예능식으로 트로트와 트로트 가수들을 활용하지 말고, 좀더 전문적으로 트로트를 접근해가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Q. 옛날에는 왜? 탈을 쓰고 춤을 추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탈춤은 일종의 해학, 풍자가 들어있는 연극, 춤, 노래가 포함되어있는 현대의 뮤지컬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신분제도가 있는 관계로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예인 또는 평민 이하의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라 공연 중 왕이나 관리, 양반들에 대해 비판적인 요소를 담은 공연을 하던 중 신분이 드러나 곤욕을 치를 수도 있는 위험성에 대해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의 탈을 쓰고 공연을 했던 것입니다. 부채 등을 들고 있는 배우는 양반에 해당 됩니다. 탈은 우리나라의 풍자와 해학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Q. 중국과 대만은 왜 사이가 나쁜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과 대만은 한민족이고 한나라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 내에서 1949년에 국민당의 장제석, 공산당의 모택동의 전쟁에서 국민당의 장제석이 패하면서 지금의 대만으로 쫓겨나듯 가서 자리를 잡고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국가를 세운 것입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두 당이 서로의 정책으로 대립하며 권력을 잡으려고 하던 중 두 당의 승패를 결정지은 것은 토지 정책의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공산당의 모택동은 땅을 몰수하고 무상분배해주겠다고 하였지만 장제석의 국민당은 토지개혁에 대한 특별한 청사진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장제석의 국미당은 토지사유제도를 기반으로 한 토지소유평등권을 주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 인구의 90%가 농민이었고, 그 중에 90%가 자기 땅이 없는 소작농과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러니 토지소유주들의 땅을 빼앗아서 모든 농민들에게 똑같이 분배해주겠다는 공산당 쪽으로 여론이 기울면서 전세는 공산당에게 유리하게 되어 결국 장제석의 국민당은 본토에서 공산당에게 패하고 대만으로 후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공산당에 패해 섬으로 도망가 대만이라는 국가를 선포하였지만, 사실은 중국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국제적으로는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여 중국과의 관계에 종속적인 국가들의 경우나 민감한 관계가 있는 경우 대만, 즉 Taiwan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chinese taipei라고 합니다. 이것은 대만이 국제기구 등에 가입할 때는 대만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고, 차이니스 타이페이라고 사용하도록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여전히 중국은 대만이 자기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양국의 관계가 좋을 수 없겠죠. 꼭 대한민국과 북조선인민공화국과 같이 말이죠.
Q. 깨비 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깨비는 여러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깨비만을 가지고 볼 때는1. '가지'의 경남 방언2. '개비'의 경상, 중국 흑룡강성의 방언3. '(~할)까봐'의 전라도사투리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깨비는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한 잡된 귀신을 뜻하는 말로, 도깨비의 경우 원래 돗가비>독갑>독갑이>도깨비로 변형되었습니다. 허깨비는 이러한 도깨비로부터 파생되어 헛것,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허상을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방아깨비는 메뚜기과의 곤충인데 뒷다리를 잡으면 방아를 찟듯이 움직인다 하여 방아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깨비라는 이름을 같이 붙인 이유는 특별히 설명되어진 것은 없는 듯 한데 유추해보면, 아마도 가늘고 길다란 것에 대한 표현인 '개비'를 가져와 '방아+개비'를 붙였고 오랜 세월 된소리로 방아깨비라고 불려져 표준어로 정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Q. 우리나라 트로트랑 일본 엔카랑 비슷하던데 뭐가 먼저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둘 중 누가 먼저라고 하는 것을 구분하기란 좀 어렵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일의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에게서 서양음악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고, 당시 4/4박자의 폭스 트로트라는 장르의 음악이 유행하여 여기에 각자의 민요나 구전가요들이 섞이면서 저마다의 음악으로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일본은 2박자에 익숙한 '쿵짝 쿵짝' 식의 엔카로 발전하였고, 한국의 경우 일본식의 2박자음과 아리랑과 같이 3박자에 익숙한 '쿵짝짝 쿵짝짝'의 형태로 발전했다가 폭스 트로트와 같은 4박자 그대로 트로트라는 이름을 들여와 사용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서양음악의 경우 대부분이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누가 먼저냐를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일본이 먼저일 것입니다. 우리보다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이죠. 그리고 일제강점기이니 당연히 엔카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엔카 가수들 중 당시 조선인도 있었고, 그들이 트로트 가수로도 활동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엔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코카 마사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생 5천여곡의 작품을 발표했고, 독특한 음악성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린 시절 8세부터 12년간 조선에서 살았고, 선린상고까지 졸업했습니다. 그는 경성의 큰 형님네 가게에서 조선인들이 민요를 흥얼거리는 것을 들었고, 그 멜로디가 뛰어나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일본에 돌아간 후 그것을 반영하여 음악을 많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 "만약 어린 시절을 조선에서 보내지 않았다면 이런 곡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자신의 음악적 기반이 조선에 있음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1980년 대에는 일본에서 엔카가 한국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돌았다고 합니다. 도입의 시기로 따진다면, 엔카는 1880년대 메이지유신 때 연설을 위한 곡으로 초기의 엔카가 만들어졌다가 서양의 7음계가 들어오면서 그것을 일본식의 5음계로 고쳐서 적용되었고, 1914년 4/4박자의 폭스 트로트라는 장르가 들어와 결합되면서 지금의 엔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처음 우리 나라에도 전해져 2/4박자 즉 '뽕짝'이라는 트로트가 시작되어 지금에까지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감성은 어떤 시기나 지역을 특정할 수 없고, 다양한 양국의 문화와 외부의 문화가 혼용된 것이니 그냥 음악의 아름다움만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Q. 조류(새)를 공룡으로 보는 것이 맞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류는 우리가 잘알고 인기 있는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가 속한 용반목 수각류 공룡에서 진화했다고 보는 것인 정설입니다. 가와카미 카즈토라고 하는 일본의 조류학자가 2020년에 출간한 에서도 현생 조류의 신체구조를 살펴보았을 때 과거 공룡에서 진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종의 호흡법에서 기인하는데 공룡은 조류와 마찬가지로 기낭 (air sac)을 지니고 있습니다. 포유류의 경우 횡격막과 흉곽이 움직임으로 호흡하고, 파충류의 경우 횡격막이 없어 흉곽이 움직이면서 숨을 쉬지만 숨 쉬는 기관이 폐 밖에 없기 때문에 그 효율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공룡은 파충류보다는 조류에 가까운 것이죠. 조류의 경우 폐와 기낭을 이용해서 공기를 순환시키면서 최대한 산소를 뽑아내기 때문에 많은 양의 산소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주 높은 고도에서도 저산소증 없이 비행이 가능한 것입니다. 공룡이 트라이아스기 말에 저산소 환경에서 본격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한 점과 공룡과 새가 같은 뿌리라는 점을 생각하면 공룡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호흡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남아공의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교 (University of the Witwatersrand, Johannesburg)의 연구팀은 2016년 우연히 발견된 2억년 전 소형 초식 공룡인 헤테로돈토사우루스 (Heterodontosaurus tucki)의 완벽한 골격 화석을 표본을 파괴하지 않고 초고해상도 CT로 내부를 3차원적으로 확인했습니다. 헤테로돈토사우루스의 내부 장기와 골격을 분석한 결과, 노처럼 생긴 갈비뼈와 작고 이쑤시게 같은 뼈를 이용해서 복부와 흉곽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숨을 쉬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가슴 근육을 비행에만 사용하고 숨 쉬는 데는 사용하지 않는 조류와 다른 방식이라고 합니다. 조류는 기낭을 통해 공기를 순환시키기 때문에 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데 이 공룡은 이와 다른 방식으로 호흡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헤테로돈토사우루스는 조반목에 속하는 가장 오래된 공룡 중 하나입니다. 조반목에 속하는 공룡들이 같은 방식으로 호흡했다는 점을 시사하지만, 모든 공룡이 그렇지는 않았을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족 보행을 했던 용반목 수각류 공룡의 경우는 현생 조류의 조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것 같으나 다른 종의 공룡들은 또다른 동물류의 조상이지 않을까 합니다. 조류가 형태적으로 과거 용반목 수각류 공룡의 진화라고 볼 수 있지만, 모든 조류가 다 그러한 지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공룡이 조류의 조상이라는 설도 여러 번에 걸쳐 지금까지 온 것이니 또 다른 근거가 발견된다면, 비슷하기는 하나 조류의 조상을 따로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조류의 골격 등의 근거로 볼 때 그 조상이 공룡이다 라고 하는 것은 정설로 여겨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