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만리장성은 어떤 세력을 막기 위해 지어진건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만리장성은 기원전 220년 진시황(秦始皇, BC 259~BC 210)이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통합된 방어 산성을 쌓기 시작하였고, 이것은 그 후 명나라(1368~1644)까지 계속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장대한 규모의 장벽이 되었습니다. 당시 북방민족이라 함은 진시황 때는 흉노제국이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 때는 몽골이었습니다. 진시황 당시의 장성은 대부분 토성이었고, 이것은 거의 소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남아있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축조된 것과 고구려의 천리장성을 현재 자신들의 영토에 있다는 이유로 포함하고 있다고 합니다.
Q. 책은 한달에 몇 권정도가 적당한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매월 책읽기를 계획한다면, 독서감상문을 스스로 쓰거나 독서토론을 한다는 계획으로 볼 때, 300페이지 내외의 단행본 기준으로 하여 1~2권 정도가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저도 책을 많이 보려고 노력하지만, 하루종일 잠을 줄여가며 읽는 것이 아니고, 가십거리가 아닌 소설책이나 인문학책을 기준으로 한다면, 보통 오롯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2시간을 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루에 30~60페이지 정도가 여가시간에 강박 없이 읽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됩니다. 나머지 시간은 회사생활 등 사회적인 교류가 있고 식사시간 등을 제외해야 하니까요. 물론 오랜 훈련으로 속독을 하여 책 한권을 2~3시간에 독파하는 분들도 계신다고 하지만, 전 한달에 1~2권 정도를 넘기기 어렵더라구요. 그리고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권을 읽더라도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와 자신의 가슴 속에 어떠한 것이 남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루에 한 페이지 한 장의 책을 읽더라도 자신의 품에서 책이 떠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화이팅입니다.\^^
Q. 우리나라 궁중예법이 고유문화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왕실의 궁중 예법은 중국과 비슷한 것이 많고, 같은 것도 많습니다. 궁중 예법 및 문화적인 것에 대해서 과거부터 양국이 서로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사극 등에서 널리 보이는 조선시대의 궁중 예법의 경우에는 당시 조선은 중국의 명나라를 사대하였기에 그 격식을 들여온 것이므로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1381년 중국의 명나라에서 라고 하는 예법을 기록한 책이 쓰여졌습니다. 국가의 각종 의식, 복식과 품계, 공문서의 양식 등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려시대까지는 서로 각자 고유의 제도를 운영한 것으로 보이고, 조선시대에 와서는 기존의 문화와 풍습을 를 적절하게 적용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태종 8년 1408년에 왕의 장인이 죽자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의 상복 착용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원래 고려 때부터 전해오는 것은 전통적으로 출가한 딸의 경우 친정의 부모상에 상복을 입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허나 명을 사대했던 조선의 신하들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예조에서 태종에게 에 출가한 딸도 1년 간 상복을 입는다는 구절을 인용하여 그에 따르자고 상소하였고, 태종이 이를 받아들여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종 대에 들어서는 는 명나라의 지방에 적용하는 제도이므로 독립국가인 조선의 국가 체제에 적용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의견이 대두하여 그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이를 참고하고 고유의 풍습, 제도들을 조사하여 15세기 후반 라고 하는 예법과 제도에 대한 책이 편찬되었습니다.따라서 드라마 등에 보이는 여러 고대 문화는 사료 등을 조사하여 고증하여 구현하는데 중국 쪽에서 영향을 받은 것과 고유한 문화가 접목되어 발전 반영된 것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고조선도, 고구려도, 백제도, 신라도, 대진국 발해도, 조선도 모두 현재의 중국 영토인 곳을 지배했던가 영향권에 두었던 적이 있습니다. 중국과 대한민국, 일본은 전성기 시기에 따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 주었던 이웃국가입니다. 각각의 고유한 문화들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서로의 문화들을 주고 받으며 발전해 온 융합 문화라고 보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