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일본은 조총을 언제부터 사용하게되엇는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총은 전장식 화승총으로 16~19세기 동안 사용되었으며, 16세기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중국-한국의 순서로 도입되었으며 조총이라는 이름은 나는 새를 떨어뜨린다 하여 새 조(鳥)자를 써서 명나라 때 지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타네가시마(種子島)' 또는 '텟포(鉄砲, 철포)'라고 불렸으나 일본의 사신이 조선 중기 1591년에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소개할 때는 우리에게 익숙한 한자어인 명의 이름인 조총으로 소개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은 센고쿠시대(전국시대)로 혼란기였는데 이 때 조총이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전해지기는 했지만 그 배후에는 유럽의 가톨릭 세력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신대륙으로 교류를 넓히던 포르투갈 상인을 태운 배가 명나라로 가던 중 풍랑에 의해 규슈 남단의 다네가시마에 도착하게 되었고 영주인 다네가시마 토키타카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조총의 위력에 놀라 도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럽에서 종교개혁 이후 가톡릭의 위세가 약화되던 터라 이내 신대륙으로 포교활동을 넓혀갔고 포르투갈 상인이 들어간 이후 1549년 예수회 선교사가 파견되었습니다. 이후 다이묘 중에서도 신자들이 많이 나왔고 교황은 4명의 소년사절을 1582년에 로마로 보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도입이 시작된 기독교는 막강한 세력인 오다 노부나가를 지원하였고, 오다 노부나가는 기독교를 보호했고 신자가 급격히 늘어나게 됩니다. 오다 노부나가 세력은 전국시대 전쟁 시 조총 부대를 가장 효율적으로 써서 결국 경쟁 세력들을 제압했으며, 그의 수하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일본의 통일시대를 이끌게 됩니다. 하지만 천황이 있는 봉건사회였던 일본에 침투한 기독교는 인간성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 지배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종교였기에 자신들을 지지했던 오다 노부나가의 수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강력한 탄압을 받게 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처음에는 이 문화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자신들이 정신적인 지주로 삼고 있는 신의 나라 일본 천황과 다이묘(영주) 체제인 일본의 전통을 부정하게 되므로 기독교 포교 금지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선봉장으로 임진왜란을 진행했던 고니시 유키나가 등 크리스찬 다이묘들이 일본 통일을 방해할까 염려도 있었고, 나가사키의 사원을 기독교도들이 불태우는 사건 등 계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일본에서는 현재까지도 개신교와 가톨릭의 포교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세력이 처음에는 일본의 봉건제도를 확실하게 무너뜨리고 남미처럼 기독교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문화과 기술을 지원해주었으나, 일본은 그들의 발전된 문명과 기술 만을 뽑아 먹고 자신들만의 실리를 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군사력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중국 명나라까지 삼킬 군국주의적 계획을 했던 것입니다.
Q. 새해복많이받으세요 는 언제부터 새해인사가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해가 바뀌는 시기의 인사말입니다.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추정하자면 달력이 만들어지고 그 달력으로 1년을 계산할 수 있게 된 이후부터가 아닐까 추정합니다. 대한민국, 중국의 경우 복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건강, 하는 일에 대해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일반적인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이웃나라이지만 일본의 경우 복이라는 단어보다는 새해가 밝은 것에 대해 축하를 전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영어권의 경우 Happy new year 처럼 새해에 행복을 기원하는 말을 전합니다. 이 모든 것이 1년을 계산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생겨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Q. 중국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국력이 촉나라 국력이랑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 전성기 시절의 국력은 중국의 삼국시대 위, 촉, 오와는 비교도 안될 점도로 강대국입니다. 이후 최강국이라고 하던 당나라도 단독으로는 고구려에 패하고 돌아갔습니다. 고구려에 내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멸망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초기에는 중국의 한, 후연 등에 전력적으로 밀렸으나 주변국의 정복하며 영토를 넓혀갔고, 광개토태왕, 장수왕 등 전성기 시절 고구려는 황제국가로서 백제, 신라, 일본, 돌궐, 말갈 등을 영향력 하에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고대국가의 국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고구려 열망 이후 고구려보다 더 넓은 영토를 가졌던 대진국 발해라던가, 신라를 멸하고 다시 삼국을 통일한 고려 둘다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정통성을 내세울 정도로 강력한 고대국가였음은 추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