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여성들의 인권 신장은 언제부터?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여성들의 인권이 신장된 계기는 세계사적 흐름에서 보면 1차세계대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과 아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장 잔혼한 전쟁이 여권신장의 계기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1차대전은 현대전의 시초로, 총력전의 특징을 지녔습니다. 대규모 무기와 인원이 투입되고, 국력을 총동원하는 대량살상의 전면전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전선에 많은ㅈ남성이 투입되고 희생되면서 무기 및 각종 물자를 만들 노동력이 부족해졌습니다. 여기에 여성들이 투입되면서 국가에의 공헌을 인정받았고 이에 따라 전쟁 후 여성들의 참정권이 보장된 것입니다. 뉴질랜드가 최초로 여성참정권을 보장했으며, 유럽의 국가들도 동참하게 되었스비니다.실질적 여성인권이 성장하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며, 여성인권의 신장의 흐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Q. 조선시대 총리는 어느 정도의 사회적 신분에 위치에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오늘날 주민 정도의 위치라면 양인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인층 대표적으로 노비는 사람이 아니라 동물과 같은 재산 취급을 받았지요. 양인층의 대다수는 농민이고, 기술공, 상인이 있습니다. 그 위에는 중인이라 할 수 있는 기술과이라는 하급관리가 있습니다. 그 위에 양반사대부가 지배층이었습니다.조선시대 오늘날의 총리격은 영의정이 되겠습니다. 조선시대는 국정은 왕 밑에 의정부와 6조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의정부의 핵심은 3정승입니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인데 영의정이 최고자리입니다. 영의정은 신하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로서 오늘날 총리와 유사합니다. 1인지상 만인지하라는 말이 바로 그런 말인데, 영의정 위에 왕 1인만 있고 나머지는 모두 아래에 있다는 뜻이지요.
Q. 우리나라 조선 시대의 신분제도를 언제 어떻게 빚이 되었는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전근대와 근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신분제 유무입니다. 서양의 근대도 신분질서의 타파의 노력이 성과를 맺게 되는 것인데요, 동양 역시 오랫동안 신분제 국가였습니다. 우리나라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기까지 고대국가에서부터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신라의 골품제가 대표적이지요. 성골, 진골, 6두품~4두품, 일반 평민, 노비 순의 위계가 있었지요. 점차 능력 중심의 사회로 발전하지만 신분제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요. 고려는 과거제를 통한 신분상승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고려는 초기 호족, 문벌귀족, 무신, 권문세족의 지배층이 있었는데, 하급관리 및 중인, 양인, 노예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조선은 양반사대부가 지배층이었으며, 중인, 양인, 천민으로 4신분층이 있었습니다. 사농공상은 사대부, 농민, 기술공, 상인 이라는 위계가 있었습니다. 농자천하대본이라하어 양인 중에서도 농민을 우대하였고, 생산하지 않고 이문을 취하는 상인을 낮춰보았습니다. 물론 그 밑에 천민 즉 노비, 광대, 기녀 등도 있었습니다.각각의 신분제 위계가 다를지라도 전근대 시기 신분제는 상존해왔던 것이죠. 조선 전기는 신분제가 안정적인 반면 양란 이후 신분제는 해이해져, 면역층인 양반의 수는 급증하고, 양인층은 감소, 천인층도 감소합니다. 전반적으로 담세층인 양인의 수가 감소하며 큰 사회경제적 모순이 심화됩니다.
Q. 일본은 언제부터 자신들의 문자를 사용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자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핵심요소 중 하나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도 한자를 받아들여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신라는 한자의 음과 훈을 우리식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이두라는 것을 만들었는데요. 이것과 비슷하게 일본도 만든 것이 가나문자입니다. 삼국으로부터 한자를 받아들인 일본은 7세기 나라시대에 고유한 문자인 가나문자를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문자인 한글은 한자어가 상당히 많지만 표기는 모두 한글로 할 수 있지만, 일본은 한자를 모르면 표기가 어렵습니다. 한자와 가나를 같이 활용하는 것인데 이런 점에서 세종대왕이 아니었으면 우리도 한자를 익히는 데 큰 고생을 계속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Q. 광해군은 정말 폭군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광해군은 선조의 서자로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피난간 선조 대신에 분조라하여 왜란을 극복하고 민심을 수습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함께 활약한 이들이 북인이라 광해군 정권은 북인정권으로 불립니다. 광해군은 정통성에 한계가 있었고, 선조는 끝까지 광해군을 지지하지 않고 뒤늦게 태어난 어린 영창대군을 좋아했지요. 왜란이라는 특수성이 없었다면 영창대군이 왕위를 이었을지 모릅니다. 여하간에 광해군이 즉위하게 되었고 광해군과 북인은 조급함을 드러내는데,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적자인 영창대군을 죽이는 우를 범합니다. 역모를 대비한 것이지만, 나중에 인조반정의 명분을 제공하게 되지요. 폐모살제라고 합니다.광하군은 중립외교로 높이 평가받았고, 대동법도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중립외교 또한 조선을 구해준 재조지은이라하여 명의 은혜를 저버린 것으로 이 역시 반정의 빌미를 줍니다. 북인은 정권을 독점했응셔 북인 내 소붕당 사이 당쟁이 격화되었는데, 이는 나머지 붕당 즉 서인과 남인의 반정의 동기를 제공했습니다.광해군에 대한 오늘날 학계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입니다. 인조반정 후 외교정책이 친명배금정책으로 일관되는데, 이로써 조선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외침과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지요. 이런 면에서 중립외교는 특히 높은 평가를 받는데, 명분도 지키지만 실리와 국익을 우선시한 정책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Q. 공화국은 어떤 기준으로 나누어지나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최초의 공화정 국가는 로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왕이 통치하는 왕정에 대한 반대개념이 공화정입니다. 즉 왕의 없는 정치체제를 뜻하는 것이죠. 우리나라도 공화국이고 북한에서 쓰는 공화국도 그런 의미에서 같은 의미죠.1공화국은 이승만 정부, 2공화국은 장면 정부, 3,4공화국은 박정희 정부, 5공화국은 전두환 정부, 6공화국은 노태우 정부부터 현재까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누구인가에 따른 구분도 있지만 대체로 정치체제의 변동, 즉 헌법의 개정에 따른 구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2공화국은 내각책임제 헌법에 따른 것이고., 3공화국은 다시 대통령제로 돌아갔으며, 4공화국은 유신헌법에 따른 박정희의 영구집권체제이고 대통령간선제입니다' 5공화국은 역시 대통령간선제이지만 기존의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선거인단으로 바뀌고 단선제였습니다. 6공화국은 다시 직선제 개헌으로 바뀌어 노태우 정부부터 현재까지 5년단임제를 채택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