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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유의 확장 예술 향유를 통해 인생폭을 넓혀봐요

안녕하세요 사유의 확장 예술 향유를 통해 인생폭을 넓혀봐요

신현영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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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나라 선명력을 도입한 신라왕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말씀하신대로 신라시대에 어떤 왕이 선명력을 도입했는지에 대한 문건이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상위고' 나 '중보문헌비고'의 기록을 살펴보며 유추할수 있는데요. 그 기록을 살펴보면 첫째. 신라시대중 9세기경에 처음 도입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둘째.그리고 당나라가 선명력을 처음 내보였을 당시는 신라 헌덕왕 시절입니다. 셋째는 고려 건국918년 당시 신라에서 선명력을 이어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이를 유추해보면 신라 헌덕왕시절인 (809년~826년) 때에 당나라의 선명력이 알려졌고 이후 선명력이 신라에 도입이 된후 고려에 전해졌다면 선명력이 널리 쓰였을 시기일것입니다. 그리고 나라의 체계가 잡히고 왕권이 강했을즈음을 생각하면 제 개인적인 의견은, 해당 시기 왕들을 추릴때 헌덕왕~경순왕까지 중 문성왕 시기일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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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계적으로 동물권, 동물복지 차원에서 폐쇄한 동물원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아르헨티나의 수도에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의 경우 2016년 쯔음 140년 동안 운영된 후 동물 거의 모두를 자연 보호 구역으로 옮길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동하기에는 너무 늙거나 허약한 동물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더 이상 공개 전시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동물원은 불법 인신 매매 거래에서 구출 된 동물을 돕고 수용 할 수있는 교육 생태 공원이 됐다고 하네요. 진정 동물을 위한 결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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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드라마 작가라는 직업이 매력이 있네요.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드라마 작가가 되기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교육기관을 통하는 것이겠지요. 대학이나 교육원에 시나리오 과정 작가 과정을 해울수있는 창작문학과나 영화과 등의 전공을 배운후 관련 전공 교수님들의 추천아래 공모전이나 인턴 방송국으로 취업을 한후 드라마 작가까지의 길을 밟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일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드라마의 경우 한국에는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런 교육원에서 공부하셔서 등단하시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이런 교육기관을 이용하는 것의 장점은 아무래도 같은 관심사와 전공을 공부하는 친구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장단점을 파악하고 서로 영향을 받으며 더 많은 피드백과 비판을 거쳐 스스로 진짜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겪을수 있다는 것에 있겠습니다. 그외에는 독학을 해서 드라마 시나리오 공모전같은 방식을 취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쪽은 혼자서 모든걸 파악하고 퇴고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으니 어느정도 타고난 재능을 가진사람이라면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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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스터섬의 모아이석상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모아이 석상은 당시 학자들 연구에 따르면 변변찮은 도구나 밧줄도 없었던 섬의 환경에 맞지 않게 거대한 돌석상이 높게 세워져있는것이 말이 안된다고 하여 세계 7대 불가사이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모아이 석상과 이스터섬을 연구한 결과 섬에 나무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점등을 비추어 볼때 아마도 씨족사회였던 이스터섬의 부족들이 본인들의 지위를 과시하고 공고히 하기위해 경쟁적으로 모아이 석상을 세우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마땅한 운반이 어려웠던 부족들은 석상 이동수단으로 나무를 잘라 통나무를 이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거대한 돌을 통나무들을 이어이어 굴려가며 옮겨 세우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무에 씨가 말라버린 것이지요. 결국 나무에서 나고 살던 열매와 새 동물들은 잡아먹으며 살던 원주민들은 나무씨가 말라버림으로 인해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고 나중에는 일부 식인까지 하는 비극이 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혹은 섬 외부에 살던 선진적인 부족이 이스터섬에 이주해와 기존부족과 함께 석상을 제작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두 가설일 뿐이고 정확한 내용은 아직도 미스터리이기 때문에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것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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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순장이라는 풍습이 있을 때 같이 묻히기 싫어하던 사람은 그냥 생매장을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중국에서 들어온 순장이란 풍습은 내세를 믿은 문화의 잔인한 장례풍습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여 가야 고구려 신라시대에 순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권력이 높을수록 함께 순장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죠. 순장은 이후 농경사회의 발달로 인간의 농경노동인구가 중요하게 되었고 불교의 교리가 살생을 금했기때문에 신라시대 지증왕때 되어서야 금지하게 됩니다. 당시 조선시대에서 순장을 거부한 내용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중국에서는 황제가 죽었을 당시 후궁이 따라 순장되고 했는데 이때 따라 죽기 거부하는 후궁이 있었다고 합니다. 거부한다해도 먼저 자결을 강요하거나 그도 따르지 않으면 굶어죽게 했다고 합니다. 순장이 결정된 후궁에게는 마지막으로 호화로운 만찬을 준비한후 별궁같은곳에 가두게 되는데 그곳에 목을 맬수있는 밧줄이 있었다고 합니다. 절망한 후궁이 밧줄에 목을 매거나 순장을 거부하고 버틸시 굶어죽게 한것이지요.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내시가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하네요. 참 잔인한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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