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글은 세종이후 그러면 우리말의 역사는?
안녕하세요. 자료를 찾다 보니 아래와 같은 글이 있는데 우리의 발자취와 관련된듯 하여 전드리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가림토'는 상상력이 만든 거짓 문자?그렇다면 고구려인은 자신들의 말을 표현할 수 있는 독자적인 문자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한자를 이용한 것이 최초의 언어 표기 방식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여러 사정상 아직 마땅치 않다. 그러나 간접적인 정황을 살 펴보면 고구려에도 독자적인 문자 체계가 있었음을 확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한족의 문자라고만 알고 있는 한자는 동북아시아의 공용어였지, 중국 한족만의 글자 아니었다. 한자가 중국 한족의 글자로 독자적인 발전을 한 것은 진시황이 예서체를 중심으로 문자를 통일시킨 다음이었다. 동북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글자를 만든 사람은 창힐(蒼署)이라고 하는데, 그는 동이계의 사람으로 황제(黃帝)의 사관(史官)이 다고 한다. 황제도 기마종족의 한 갈래이니만큼, 그가 동이계라는 것은 당연하며,런 면에서 한자가 동북아시아 여러 기마종족의 공용문자였음을 추론하기란 어렵지 않다. 더구나 근래엔 한자의 원형인 '금문'(金文)을 연구하던 뤄빈치등에 의해 한자가 원래이계 기마종족의 언어였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어쨌든 창힐이 만든 글자는 표의문자로토씨어를 써왔던 기마종족의 일상적인 생활에는 걸맞지 않았다. 따라서 이른바 우릴-이어계의 기마종족들은 최소한 토씨를 표현할 글자가 필요했다. 이런 필요성은 에서 초대 단국 왕검이 신지(臣智)에게 글자를 만들도록 지시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그 결과 3세 단군 가륵(嘉勒)때 이르러 을보륵(乙普勒)이 38자의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른바 정통 역사서에서 가림토라는 문자는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따라서 가림토란 의 저자 등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든 것이라는 주장마저 나왔지만, 근래에 들어 가림토에 대한 관심을 높일 만한 유물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만주에서 옛 만주어와 비슷한 글자가 새겨진 비석의 탁본이 공개되었으며, 에도 가림토의 한 갈래로 추정되는 글자가 일부 실려 있고, 심지어 경남 산청에서 가림토의 한 갈래로 추정할 수 있는 글자 비석이 나타나면서 그 해석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12세기 경에 세운 신사의 비석에서 한글과 비슷한 글자들이 곧잘 발견되었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신대(神代)'라고 부르면서, 자기들 문자의 뿌리라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가림토의 한 변종으로 파악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인이 가림토와 비슷한 글자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러나 그 가능성에 대한 진단은 미루어두고, 먼저 고구려말과 현대 우리말의 놀라운 연속성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고구려의 땅이름 가운데 곡포(鵠浦)가 있는데, 이때 곡은 큰새 인 고니를 가리킨다. 그런데 고구려인들은 그것을 '고이'라고 불렀다. 또 그들은 길을'줄'이라고 불렀으며, 여우를 '야시'라고 불렀고, 나물을 '나생이'라고 불렀으며, 사슴을 '고라비'로, 멧돼지를 '윷'(윷놀이의 윷이 멧돼지이다.)으로 불렀다. 예를 계속 들수록 언어의 연속성이 더욱 뚜렷하게 확인된다. 나무 그늘을 '근울'이라 했고, 바위를 '바이라 했으며, 붓을 '붓시'라고 불렀고, 옆을 '엇'이라고 불었다. 또 넓고 긴 습지를 오늘날도(무)내미라고 부르는데, 고구려인들도 '내미'라고 불렀으며, 얼굴을 '낮짜-ㄱ' 또는'오걸'이라고 불렀고, 작은 개울을 '어울'이라 불렀으며, 말안장을 '말우'(말의 윗쪽)라고 불렀고, 밭을 '파흘'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오늘날과 매우 비슷한 말들도 많았지만, 오늘날의 우리 언어로는 알기 어려운 것들도 없지 않다. '셋'을 '미'라고 하거나 일곱을'나니-ㄴ'이라고 부르거나 열을 '도'라고 부른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말들은 일본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셋'을 '미'라고 읽으며 일곱을 '나나'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있고, 열을 '도'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어쨌든 말과 언어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그 개념도 깊고 넓을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런 개념을 잃어버리고 정신이 가난한 민족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다음 이야기는 그 개념의 놀랄 만한 깊이를 따라가게 될 것이며, 그 가운데서 우리말과 우리 정신의 나갈 길을 비추어줄 샛별을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Q. 우리나라 군 복무기간의 변화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대한민국 현역병의 의무 복무기간으로, 복무 기간에 따른 군복무는 6·25전쟁 이후인 1953년부터 시행됐다. 당시 36개월로 시작된 군복무기간은 국가적인 상황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고, 2020년부터 육군·해병대는 18개월, 해군은 20개월, 공군은 21개월(기존에는 22개월, 2020년 3월 입대해 2021년 12월 이후 전역자부터 21개월 적용)을 복무하고 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Q.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의 어느 왕인가요?
안녕하세요. 백제의 제 30대 무왕을 서동이라고 알고 있으며 선화공주 또한 실존인물에 대한 의구심은 개인적인 사견으로 사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유는 삼국유사의 기록을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대 금석문 등을 보아도 선화공주가 신라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져오게 하는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가상인물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보면 대다수 추측성 글입니다. 그러한 글들을 보면 단순히 몇몇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리 주장하는데... 역으로 해서 본다면야, 선화공주가 다른 곳의 사람이라는 기록도 보이지 않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선화공주에 대한 언급이 없고, 삼국유사에서는 선화공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작 화랑세기에서는 그러한 기록이 없는데.일부러 제하였을수도, 즉 호적을 파버렸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리고 의자왕이 무왕 즉위 30년이 넘어서야 태자로 된다는 것은 그럴만한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신라의 선화공주의 아들이라는 점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지요.도움이 되셨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Q. 기독교는 언제 로마에서 국교로 공인되었나요?
안녕하세요. "밀라노 칙령(313년, 라틴어: Edictum Mediolanense, 영어: Edict of Milan)은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사인한 칙령이다. 주된 내용은 종교에 관한 관용인데, 종교적인 예배나 제의에 대해 로마 제국이 중립적 입장을 취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이다." "380년 2월 27일 테오도시우스 1세가 테살로니카 칙령을 선포함으로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았다."밀라노칙령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채택한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를 믿을 권리를 로마의 시민들에게 허락한 칙령입니다.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채택한 칙령은 테살로니카 칙령입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 추천 부탁드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