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글중에 없어진 글자에 뭐가 있을까요?
한글 창제 초기에는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그 중 일부 글자들은 현재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아래아 (ㆍ): 이 글자는 단음절의 중성으로 쓰였습니다. 예를 들어 "아"는 'ㅏ'가 아니라 'ㆍ'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이 글자의 사용이 사라져 현재는 사용되지 않습니다.ㅿ, ㆆ, ㆁ, ㅸ: 이들 글자는 쌍자음으로, 원래는 복잡한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자들은 오늘날에는 사용되지 않습니다.이중 모음: 오랜 시간 동안 'ㅒ'와 'ㅖ'만 이중 모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ㅘ', 'ㅝ' 등의 이중 모음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글자들은 현재도 사용되지만, 그 발음이나 구조가 약간 변경되었습니다.이 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이들은 언어의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의 일부입니다. 한글의 경우 그 구조와 원칙은 대체로 유지되었지만, 일부 문자와 발음은 시대와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Q. 시집가다라는 말과는 다르게 장가들다, 장가가다라는 말이 있나요?
"시집가다"와 "장가들다"는 모두 한국의 전통적인 결혼 표현입니다. "시집가다"는 여성이 남성의 집으로 이사가는 것을 의미하며, "장가들다"는 남성이 여성의 집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이런 표현은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구조와 연관이 있습니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는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했으며, 여성은 결혼 후 남편의 집으로 이사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시집가다"라는 표현이 생겨난 것입니다.반면에 "장가들다"는 표현은 남성이 결혼을 통해 자신의 가족에 여성(아내)을 데려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가'는 원래 신랑의 집을 뜻하는 말이지만, 여기에서 '들다'는 신랑이 그 장가, 즉 자신의 집에 신부를 데려오는 행동을 뜻하게 됩니다."장가가다"라는 표현은 사실 문법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대화에서 종종 사용되기는 합니다. 이는 언어의 유동성과 변화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시일 수 있습니다.
Q.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물은 정말 수치를 계산해서 만든건가요?
안녕하세요, 조용한문어80님.안토니 가우디의 건축 작품은 그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직관적인 디자인 방법론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유연한 곡선과 복잡한 형태를 다루었는데요, 그의 작품 중 많은 부분이 정교한 수치 계산을 통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그의 직관적이고 실험적인 접근법에 의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예를 들어, 그는 건축 구조를 실험하고 이해하는 데 "거꾸로 된 모델"이라는 테크닉을 사용했습니다. 이 방법은 가중치를 매달아 중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구조를 관찰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건물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복잡한 수치 계산 없이도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구조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또한, 그는 여러 가지 건축 소재와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직관적으로 복잡한 형태를 설계하고 구현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복잡한 곡선이나 형태는 대부분 수치적 계산보다는 그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한 결과입니다.이처럼,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 작품은 수치 계산에 의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그의 독특한 사고방식과 실험적인 방법론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디자인과 건축에 있어서 이러한 접근법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디자이너나 건축가 개개인의 독특한 방식을 보여줍니다.
Q. 우리나라 고려장이라는 어이없는 풍습은 왜 있었던건가요?
안녕하세요. 김선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장"은 고려시대에 있었던 근거 없는 추측이나 전설 중 하나로서, 실제로 존재한 행사나 풍습은 아닙니다. 이 표현은 사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일반 대중 사이에서 널리 퍼진 오해나 신화에 가깝습니다.일반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때는 학문적으로 검증된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유형의 오해나 신화는 종종 잘못된 정보가 널리 퍼지게 하고,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Q. 프랑스와 영국간의 전쟁이었던 100년전쟁이라는게 실제로 그 기간이 정말 100년이었나요?
"100년 전쟁"이라는 이름은 실제로 그 전쟁이 지속된 기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14세기와 15세기에 걸쳐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에 계속된 일련의 군사 충돌을 일컫는 용어입니다.이 전쟁은 1337년에서 1453년까지 지속되었으므로, 사실상 그 기간은 116년에 달합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평화의 시기도 있었지만, 두 나라 사이의 군사적 충돌은 계속되었으므로, 이를 통틀어 "100년 전쟁"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따라서 "100년 전쟁"이라는 이름은 실제로는 그 이상의 기간동안 전쟁이 계속되었음을 나타냅니다.100년 아니고 116년 입니다.
Q. 전쟁과 사변 뜻 차이가 어떻게 되나요?
단아한테리어180님 안녕하세요. 김선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전쟁"과 "사변"이라는 용어는 많은 상황에서 서로 바꿔 쓰이기도 하지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전쟁"은 대개 국가 간 또는 국가 내부에서의 대규모 군사 충돌을 의미하며, 이것은 일반적으로 명확한 시작과 끝, 그리고 일정한 규모와 구조를 가진 군사 행동을 포함합니다.반면에 "사변"은 보다 일반적인 용어로, 특정한 사건 또는 충돌을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이 용어는 전쟁보다 작은 규모의 충돌을 포함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전쟁과 같은 대규모 충돌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6.25사변"이라는 표현은 한반도에서 발생한 이 군사적 충돌이 사건의 형태로 발생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충돌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대규모 전쟁으로 인식되게 되었고, 따라서 "6.25전쟁"이라는 용어가 더욱 널리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사건이 한국사에서 가지는 중요성과 그 영향력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Q. 법명은 유정인데 왜 사명대사로 불리는건가요?
조용한문어80님 안녕하세요. 김선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법명은 승려가 출가할 때 새로 받는 이름을 말하며, 사명은 해당 승려가 중요한 사리(사찰, 절 등)에서 주지 스님이나 스승 등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때 주어지는 이름입니다.사명대사는 실제 이름이 아니라, 그가 대중 앞에서 선원(禪院, 젠센터)의 스승으로서 수행하던 역할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사명"은 사찰의 명장(명장은 절의 주지를 뜻함)을 뜻하고, "대사"는 대를 이어 사(僧, 승려)가 된다는 뜻이므로, 사명대사는 사찰의 명장이자 대를 이어 승려가 된 사람을 뜻합니다.따라서 유정 스님은 그가 주지로 있는 사찰에서의 역할을 나타내는 "사명대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름은 종교적,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의 법적 지위나 권한을 대표합니다.
Q. 조선시대 얼자는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요?
조선시대에 얼자는 사회적 지위가 다소 애매한 존재였습니다. 얼자는 아버지가 양반이고, 어머니가 천민, 노비, 중인 등의 계층일 때 태어나는 자식을 말합니다.얼자들은 종종 서얼(서로의 얼, 즉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회적 지위가 동일한 자)보다 낮은 대우를 받았으나,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었습니다. 일부 얼자들은 그들의 부모 중 한 사람이 양반이라는 점을 바탕으로 일정한 대우를 받았으며, 실제로 몇몇 얼자들은 승진하여 고위 관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그러나 대체적으로 얼자들은 자신들의 출신과 혈통 때문에 국가 공무원 진출이 제한되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시험인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고, 따라서 양반 계층과 동일한 교육을 받거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이는 조선 시대 사회의 혈통 중심의 가치관과 질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혼혈이나 혈통의 '오점'은 크게 불이익으로 작용하였습니다.
Q. 트럼펫, 트럼본, 튜바와 같은 금관악기들은 언제부터 만들어져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을까요?
알록달록동그라미417 님 안녕하세요. 김선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군악대에 복무한 생각이 나는군요..금관악기는 수천년 동안 인류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가장 초기의 금관악기는 동물의 뿔이나 해골, 껍질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들이었습니다.트럼펫: 트럼펫과 같은 구조의 악기는 약 3500년 전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그림 속에는 트럼펫과 유사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트럼펫과 유사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악기는 15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개발되었습니다.트럼본: 트럼본의 초기 모델인 "사크부트"는 중세 유럽에서 사용되었습니다.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트럼본이 나타났습니다.튜바: 튜바는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악기로, 19세기 독일에서 최초로 개발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오보에나 후르니처럼 콘 모양의 구리관으로 대체하였습니다.따라서 각 금관악기의 원형은 고대 이래로 존재했으나, 현대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금관악기들은 대체로 중세 또는 이후에 개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