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종은 거란 성종의 침입에 참패하였으나 끝내 친조를 하지 않고, 6성 요구도 거절하였습니다. 다시 거란의 장군 소배압이 침입하자, 강감찬장군이 이를 섬멸하여 물리쳤습니다. 이후 거란과의 우호관계를 회복하고 기민(飢民) 구제에 힘썼으며 불교와 유교의 발전을 도모하였다고 합니다. 대장경의 제작에도 착수, 6천 권의 대부분을 완성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1006년(목종 9) 삼각산 신혈사로 옮겨졌으며, 1009년 서북면도순검사 강조의 옹립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해 강조가 목종을 살해한 데 대하여 문책한다는 구실로 거란의 성종이 군사 40만을 거느리고 쳐들어오자, 강조로 하여금 이를 방어하게 하였으나 참패하고, 다음해 개경이 함락되어 남으로 피난하였습니다. 이어 왕이 친조할 것을 조건으로 화의가 성립되어 거란군은 물러갔으나 끝내 친조를 하지 않았고, 또 6성을 요구해 온 것도 거절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