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최질의 난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2차 거란전쟁에서 고생도 마다하지않고 혁혁한 공을 세운 두 장수가 거란이 물러가고나서 현종에게 반란을 일으켰는데요.
당시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인지요?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차 거란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김훈, 최질 장군은 1010년 거란의 대군을 물리치는데 큰 역할을 한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장군들이었으나, 1014년 11월 군사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킵니다. 반란의 직접적 원인은 녹봉(월급) 문제로, 2차 거란 전쟁 후 군사들의 정원이 늘어나면서 백관의 녹봉이 부족해지자, 황보유의와 장연우가 무신들에게 내려진 영업전을 뺏어 문관들의 녹봉을 보충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김훈과 최질이 난을 일으켜 장연우와 황보 유의를 유배 보내고 관직을 개편한 것이 김훈 최질의 난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조의 정변과 과거제 출신 관리들이 군인 대우가 박해진 원인이었을 것이며, 난을 진압한 것도 과거제 출신의 이자림이였기에 그런 관리들의 권위가 높았을 것으로 해석하는 분석이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훈과 최질은 1010년 거란이 침입하자 이들을 격퇴한 공으로 상장군에까지 오른 인물로, 최질은 변공이 있는데도 문관직을 얻지 못해 불만을 품어왔고 중추원사 장연우 등의 건의에 따라 경군영업전을 빼앗아 백관의 녹봉에 충당하려하자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이에 1014년 박성, 이협, 최가정, 임맹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 문신들로서 그러한 주장을 해오던 황보 유의와 장연우 등을 포박하고 왕을 협박하여 이들을 귀양보냅니다.
그리고 무신으로서 상참은 모두 문신을 겸하게 했고, 또 어사대와 삼사를 금오대와 도정서로 각각 개편, 이로부터 무관이 문관을 겸하여 정사를 함부로 하게 되자 국가의 기강이 문란해지게 됩니다.
이에 전 화주방어사 이자림이 왕에게 올린 계교에 따라 현종은 먼저 이자림을 서경유수판관으로 임명하고 미리 서경에 보내 친히 장락궁에서 잔치를 베푸는데 이때 이자림 등은 술에 취한 김훈, 최질, 이협, 최가정, 임맹 등 19인을 주살, 황보 유의, 장연우를 다시 불러 기용하고 무신들이 고친 관직의 이름도 모두 복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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