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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재위 당시 박지원은 청의 발달한 문물을 수용하자고 주장한 북학 사상가입니다. 그는 문장도 고전문을 배격하고 비속어, 해학, 풍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연암체라고 하고 <열하일기>, <양반전>,<허생전>등에 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집권 붕당인 노론 벽파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던 정조의 입장에서는 박지원이 노론 벽파 계열이고, <열하일기>에 사용된 문체가 타락하고 순수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며 금서로 지정하는 '문체반정'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박지원은 문체반정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문체반정은 정조의 왕권 강화를 위한 노론 벽파와 대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