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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4.03.23

진시황제의 분서갱유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진시황제는 분서갱유로 알려져 있는데요.

근데 원본 서적들은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고, 진시황 이후 항우가 함양을 함락한 다음 불태워 버렸다는게 정말인가요?

항우 때문인데 진시황제가 억울하게 분서갱유로 까이고 있다는 얘기가 정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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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분서갱유는 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파묻는다는 뜻으로 기원전 213년과 기원전 212년에 일어난 별개의 사건을 하나로 합쳐서 일컫는 말입니다. 실용서를 제외한 사상서를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생매장한 탄압책으로 중국에서는 분갱이라고 부릅니다. 진시황제는 혼란한 중국을 안정시킨 유능한 군주였다가 이 사건으로 희대의 폭군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실제로도 폭군의 행보를 걷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합니다. 후에 항우는 초한전쟁 때 주가 등의 유학자들에게 욕을 먹자 시황제 그놈이 왜 그렇게 너희들을 탄압했는지 알겠다고 하며 이기기만 하면 이것을 벤치마킹하려는 속내를 보였지만 전쟁에서 패하여 그럴 기회는 갖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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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진나라 시황제가 기원전 213년에서 206년 사이 사상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농업과 의학 서적을 제외한 각종 서적들을 불태우고 수백 명의 유생을 생매장한 사건입니다. 당시 불태운 서적들은 죽간을 말하며, 이 사건은 후세에도 많은 논란을 낳았습니다.

    항우와 분서갱유 관계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항우가 진시황 사후 함양을 점령하고 서적을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별개이며, 항우의 진나라 기록을 파괴히려 했던 행위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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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그냥 책만 태운게 아니라

    법가 사상에 동의 안하는 대부분 학자들을 처형하기도 했기 때문에

    분서=책을 태우고 갱유=학자를 묻는다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원본이 남겨져있었다 던가

    항우가 학문 소실에 영향을 끼쳤다던가 하는건

    꽤나 진지하게 연구되는 학설이긴 하지만

    설령 이 모든게 사실이었다고 해도

    애초에 진시황이 자기 정책 반대한 학자들 다 죽이고

    책 모조리 수거해가서 복사본만드는 것을 불법화 하지 않았다면

    도시 하나 태웠다고 학문 자체가 사라지는 일은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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