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도 정치의 폐단은 국정의 정점에 있어야 할 국왕의 권력과 권위가 크게 약화되었다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정조가 죽은 후 왕권이 매우 약해져서 세도 정치가 판을 쳤는데 세도(世道)란 ‘세상 가운데의 도리’란 뜻으로서, ‘그 도리를 이끌어나갈 책임’을 함께 뜻하기도 했습니다. 세도의 책임은 원래 국왕에게 있어야 하지만, 조선후기에 신료의 발언권이 강해짐에 따라 유학자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산림(山林)이 세도의 담당자로 지목 되었는데 19세기의 권세가는 위와 같은 논리에서 합리화되었으며, 그 자의적인 권력행사를 비판하던 황현(黃玹), 안확(安廓) 등의 논자들이 세도(世道)를 세도(勢道)로 바꾸어 표현함에 따라 세도정치의 용어가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국왕의 외척 인물들이 권력을 장악했던 순조·철종대의 정치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나, 고종대 흥선대원군과 여흥 민씨 척족의 국정 주도를 포함시켜 지칭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