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신기루아지랑이392
신기루아지랑이39223.07.07

정조가 죽은 후에 세도정치기가 시작되었다고 하던데 세도정치란 무엇인가요?

정조가 죽은 후에 조선 정치에 있어서 최악의 암흑기라고 불리우는 세도정치기가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세도정치라고 하는것은 무엇이고 왜 나타나게 되었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왕의 신임과 위임을 받아 정권을 잡은 특정인과 그 추종세력에 의해 이루어졌던 정치 형태 입니다.

    김조순은 정적인 벽파의 국정 주도 속에서도 1802년 자기 딸을 왕비로 들이는데 성공하여 국구의 지위를 얻고, 1804년 순조의 친정이 시작된 후 벽파는 조정에서 축출되고 김조순을 포함한 안동김씨 가문의 여러 인물들이 권력을 집중시켜갔지만 권력획득 과정에서 연합했던 인사들로부터 견제를 받고 순조가 국정을 주도하려 다각도로 노력함에 따라 1811년까진 절대적인 권력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국왕의 국정 주도 노력이 1809년 기근과 1811년 홍경래의 난으로 실패한후 1812년 ~1826년까지 김조순이 확고한 정치 주도력을 장악, 순조 27년부터 30년 5월까지 효명세자가 부왕 순조의 명령을 받아 대리청정하면서 권력의 새로운 기반을 조성하려 하나 이른 나이에 사망, 김조순은 효명세자가 모은 정치세력을 축출하고 권력을 다시 강화했고 그가 죽은 뒤 아들인 김유근이 권력을 계승해 1834년 순조가 사망할때까지 흔들림이 없었고 순조는 죽기 전 효명세자의 장인 풍양 조씨 조만영 가문에 속한 조인영에게 헌종을 돌 볼 것을 부탁, 그리하여 헌종이 즉위해 김조순의 딸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한 1840년까지는 대왕대비의 친정인 김조순 가문 인물들과 국왕의 외가인 조만영 가문 인물들이 균형을 이룬 가운데 연합 , 정국을 주도하게 됩니다. 그뒤 1894년 헌종이 친정할때 조만영 가문이 헌종의 원조를 기반으로 권력 행사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었고 헌종도 나름대로 국정 주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고, 헌종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는 강화도에서 농부로 살던 왕족 원범을 국왕으로 선택, 따라서 그 재위기간에는 김좌근을 중심으로 하는 김조순 가문이 앞 시기보다 훨씬 심화된 권력 독점을 누렸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도정치는 국왕의 위임을 받아서

    정권을 잡은 특정인과

    그 추종세력이 의해 이루어지는

    조선의 정치 형태로써

    '정치는 널리 사회를 교화시켜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라는 이념에서 나온 좋은 의미의 정치를 의미했지만,

    특정 세력에 의한 권력이 행해지는

    부정적인 정치형태의 의미로 더욱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