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목종은 대량원군 순을 후계자로 삼고, 궁궐 수비를 위해 중추사 우상시 겸 서북면 도순검사인 강조에게 개경 궁궐을 수비케 하였습니다. 이때 세간(世間)에서는 목종이 위독한 틈에 김치양 등이 나라를 빼앗으려 한다는 풍문이 돌았다습니다. 이윽고 왕이 죽었다는 헛소문이 전해지자 강조는 군사 5천명을 거느리고 오던 도중, 평주(平州 : 지금의 황해 평산)에서 왕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보고를 듣고 한때 주저했으나 부하 장수들과 회의한 뒤 개경으로 가 목종을 퇴위시키고 대량원군을 왕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 정변을 강조의 정변 이라고 합니다. 이와 함께 김치양 부자를 죽이고 태후와 그 무리들을 귀양보냈으며, 양국공(讓國公)으로 폐했던 목종을 죽였다고 합니다 이어 왕실의 부패를 척결하고 새로이 관제개혁을 실시하여 국왕의 측근 보좌기구인 은대(銀臺)와 중추(中樞) 남북원(南北院)을 일시에 혁파하고 대신 중대성(中臺省)을 설치했다. 이때 중대사(中臺使)에 올랐으며, 1009년에는 이부상서참지정사(吏部尙書參知政事)가 되어 당시 제일의 실력자가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