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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02

오스카 쉰들러가 실존인물이었나요?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예전에 티비로 언뜻보다가 유대인 학살관련한 내용인거 같은데요.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인데 주인공이 오스카 쉰들러 라고 나오던데요. 많은 유대인들을 구해줬다고 하던데..어떤 인물이었길래 영화로까지 만들었는지요? 인물의 업적과 주요 내용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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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무거운도라지볶음
    무거운도라지볶음23.07.03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스카 쉰들러는 실존 인물입니다. 독일계 체코인 사업가로 유대인 탄압이 자행되던 나치 독일 휘하에서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모든 재산을 바쳐서 유대인 1200명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스카 쉰들러는 실존 인물입니다. 오스카 쉰들러(1908-1974)의 고향은 체코 모라비아지방의 츠비타우이며,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한 폴란드의 어느 마을, 시류에 맞춰 자신의 성공을 추구하는 기회주의자 쉰들러는 유대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인수합니다. 그는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찌 당원이 되고 독일군에게 뇌물을 바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러나 냉혹한 기회주의자였던 쉰들러는 유대인 회계사인 스턴과 친분을 맺으면서 냉혹한 유대인 학살에 대한 양심의 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는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게 될 유대인들을 구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독일군 장교에게 빼내는 사람 숫자대로 뇌물을 주는 방법으로 유대인들을 구해내려는 계획을 세우고 스턴과 함께 구해낼 유대인들의 명단을 만든 다음 마침내 1100명의 유대인을 구해낸 인물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스카르 쉰들러는 1908년 4월 28~1974년 10월 체코 태생의 독일 사업가 입니다.

    나치 정권 당시 수감된 수많은 유대인들을 구출한 인물입니다.

    독일 국방군 첩보부와 관계를 맺은 뒤 첩보원으로 활동하다 반역죄로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1938년 체결된 뮌헨 협정에 따라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였던 주데텐란트가 독일이 합병되며 사형을 면했고 1939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에 입당했습니다.

    그는 한 유대인계 폴란드인 사업가의 조언을 받고 활발한 사업활동을 시작으로 나치에 의해 탄압받던 또다른 대상인 폴란드인을 대규모 고용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수많은 유대인을 구출했으나 전쟁 후 이때의 막대한 지출이 사업 실패로 이어졌고 이스라엘 정부의 초청을 받고 이스라엘에 방문하기도 했으며 말년에 독일에 거주하면서도 이스라엘에서도 거주, 1974년 사망하여 이스라엘 서예루살렘에 안장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스카 쉰들러(1908-1974)
    그의 고향은 체코 모라비아지방의 츠비타우

    우리가 아는 오스카 쉰들러(Oscar Schindler: 1908-1974)는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속의 군수품 공장 사장으로 유태인을 구한 인간적인 영웅의 이야기가 전부다.
    모터사이클 레이서로서의 쉰들러의 젊은 날은 그의 삶의 한 에피소드 정도로 들릴지 모르나,
    실지로 오스카 쉰들러는 쾨니히스 벨렌이라는 당시 레이싱 머쉰으로서 최고급인 250cc
    모터구치의 레이서로서 몇 번이나 순위에 입상을 할 정도로 이름을 날렸던 명 레이서였다.



    `쉰들러 리스트

    독일 기업가인 오스카 쉰들러가 나치 수용소에서 처형당할 운명에 처한 유태인을 자신의 공장 근로자로 채용해 목숨을 구한 실화를 영화화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세상에 존재가 널리 알려진 `쉰들러 리스트'의 실제 원본이 발견됨으로써 영화속의 상황을 사실로 증명할 수 있게 됐다.

    독일 일간 슈투트가르터 차이퉁은 15일 오랫동안 분실 상태에 있던 `쉰들러 리스트'가 들어 있는 여행 가방이 발견됐으며 이 가방에는 1천200명의 유태인 생존자의 명단과 함께 당시에 쉰들러가 주고 받은 편지와 관련 서류 등이 들어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가방에서 발견된 쉰들러와 유태인 직원들의 사진을 유태인 생존자가 진본이라고 확인했으며 이 문서의 주인은 문서를 공개하는데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문서의 원 주인은 쉰들러가 지난 74년 힐데스하임에서 사망할 당시 가장 가까왔던 친구로, 쉰들러로부터 이 문서를 받아 보관해 오다가 84년 사망했으며 그 자녀들이 집안을 청소하다가 우연히 이 문서를 발견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쉰들러 리스트'에 들어 있는 유태인 1천200명은 쉰들러가 나치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고 군수물자 생산에 꼭 필요한 인력이라는 구실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 폴란드내 수용소에서 크라코프의 공장으로 빼내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당시 목숨을 구한 유태인들이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에 정착하거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쉰들러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들이 이번에 발견된 여행가방에 들어있다.

    이 가방에는 쉰들러가 전쟁 종료 직후 유태인 공장 직원들에게 한 연설문 초고가 들어 있는 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신들에게 제발 인도적으로 행동하길 부탁합니다.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그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내버려 두십시요"

    슈투트가르터 차이퉁은 16일부터 이 문서의 내용을 지면을 통해 공개한 이후 이스라엘에 있는 야드 바셈 기념관의 홀로코스트 연구자들에게 넘겨줄 예정이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티브스티븐슨 감독이 지금까지 만들었던 영화는 이 영화를 위해서였다고 역설한 영화가 쉰들러리스트였습니다. 독일에 의해 무참히 살육당한 유태인들을 구원해 준 인물이 쉰들러이고 그는 유태인의 존경의 대상인 실존인물이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일계 체코인 사업가.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합니다.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던 나치 독일 휘하에서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모든 재산을 바쳐서 유대인 1,200명의 목숨을 구원한 업적으로 유명하며 이러한 그의 일화는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로 나왔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해준 의인이기는 하지만 생전에 술과 파티, 여자를 좋아하는 방탕하고 쾌락을 중시하는 속물의 전형으로, 아내 외에도 애인이 여럿 있었던 흑역사도 존재하는 인물입니다.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스카 쉰들러는 체코 태생의 독일 사업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감된 많은 유대인을 구출한 인물입니다. 나치 당에 소속되어 유대인 노동자들을 공급했지만 점차 그들을 인도적으로 대우하고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1944년에는 약 1,200명의 유대인을 자신의 공장으로 밀입국시켜 목숨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오스카 쉰들러의 일대기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묘사되었으며, 이스라엘에서는 그를 '세계의 의인'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뒤 점령하자 오스카르 쉰들러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폴란드로 갔으며, 10월에는 나치 독일로부터 법랑 용기를 만들고 있던 유대인 소유의 공장을 불하받았다. 이 공장은 점점 확대되어 45,000m² 부지에 8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하는 거대한 군수 공장이 되었다.


    이때부터 쉰들러는 나치당 친위대 슈츠슈타펠로부터 유대인 노동자를 공급받았다. 말하자면 강제 노동의 일환으로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들을 차출해 공장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쉰들러는 이 특권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어린이나 여성, 대학생들을 숙련된 금속공이라 속이고 자신의 공장에 데려와 은밀히 보호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암시장을 이용해서 모자라는 물자를 조달하거나 유대인을 우대해 뉘른베르크 법을 위반한 혐의 등으로 게슈타포에게 조사를 받았으나 돈, 보석, 예술 작품 등을 뇌물로 바쳐서 무마시켰다. 그는 뇌물로 바친 물품들을 장부에 꼼꼼히 정리해 두었는데, 악명 높은 게슈타포를 매수해야 하는 만큼 정말 어마어마한 액수의 물품을 뇌물로 바쳐 구워삶았다.


    1944년에 소련군의 진군으로 동쪽의 수용소가 해체되자, 많은 유대인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쉰들러는 약 1,100여 명에 달하는 유대인의 목록을 작성하고, 자신의 고향인 스비타비 지방에 군수 공장을 세운 다음 이들을 이곳으로 모두 빼돌리는 식으로 약 1,200명을 구해내고, 목록으로 차출했던 여성 유대인 근로자들이 행정 착오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자 이들을 다시 데려오면서 아우슈비츠 쪽에서 약 150명 정도의 장정을 추가로 구출했다. 그러고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소모해 가며 약 7개월간 이들을 보호했다.


    분명 그는 원래 물질적으로 탐욕스러운 성향이 더 강한 사람이었고, 나치 독일에 동조한 부패한 기업가였다. 애초에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을 직접 노동자로 끌어들인 것도 그저 돈을 수월하게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을 데려오고 난 이후 이들을 점점 더 인간적으로 대우해 주더니, 결국은 자신의 재산을 쏟아부어 가며 나치로부터 보호하기까지 한다. 서서히 그의 행동이 단지 돈벌이가 목적이라고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수백만 마르크에 달하던 자신의 재산을 모두 소모해 가며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힘썼다. 어찌보면 속물주의적인 탐욕에서 시작된 행위가 쉰들러가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은 계기가 된 셈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