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는 어째서 소현세자를 박대했나요?
인조는 반정으로 왕의 자리에 오른 인물로 재위 기간 동안 청나라가 침략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소현세자는 8년동안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지만 돌아온 이후에 인조에게 박대당했는데 왜 그랬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현세자는 정묘호란(1627)이 일어나자 분조를 만들고 의병을 모집하고, 민심을 수습했습니다. 그러나 병자호란(1636)의 패배로 청의 심양에 인질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8년의 인질 생활 이후 귀국하였으나 인조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인조의 컴플렉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조는 반정으로 운 좋게 즉위한 인물입니다. 따라서 재위 내내 출신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을 것입니다.
두번째 소현세자에 대한 시기심입니다. 소현세자능 청에 머무르는 동안 인질로 끌려간 조선인의 복리 증진과 조선을 위해 노력하고, 청 왕자들과 교유하였으며, 인조는 이런 소식을 듣고 불편해 했습니다.
세째 소현세자의 혁신적 태도입니다. 소현세자는 서구문물에 호감을 보이고, 이를 적극 수용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인조와 서인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소현세자는 볼모 생활 중에도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하여 청나라 조정의 신뢰를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인조를 분노케 했습니다. 1645년에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는 귀국하자마자 의문사합니다. 소현세자가 죽자, 조 귀인은 세자빈 강씨를 역적으로 내몰았습니다. 강씨가 소현세자를 독살하고, 인조마저 죽이려 했다고 누명을 씌웠습니다. 인조는 그 말을 믿고 강씨를 역모로 몰아 죽이고, 그 아들 셋도 모두 귀양 보냈습니다. 그런데 귀양 보낸 세 손자 중에 둘이 또 의문사했습니다. 하지만 왕위 계승은 조 귀인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인조는 소현세자가 죽자, 둘째 아들 봉림대군(효종)을 불러들여 세자로 삼았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조는 1636년 병자호란으로 국가적 위기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큰 치욕(삼배고구두)을 겪었으며 소현세자 부부와 봉림대군(효종) 부부 그리고 삼학사(윤집 오달제 홍익한) 등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게 됩니다. 청나라에 잡혀간 소현세자가 인조 자신을 위해 항의하고 대립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청나랴황실과 친하게 지내며 그들의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앞장서자 자신의 권력을 찬탈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되면서 소현세자를 경계하였고 귀국한 세자에게 음독(?)하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세자빈을 출궁시키고 사사했으며 세손들도 제주도로 귀양보내는 등 최악의 아버지요 시아버지요 할아버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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