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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혹한 쇠똥구리
고혹한 쇠똥구리23.06.28

천자문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릴 때 한자를 배울 때 천자문부터 먼저 배우잖아요. 하늘천 땅지. 이런 식으로 이런 천자문을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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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0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자문은 한자교재로 쓰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중국 남북조시대 양무제 시절 학자 주흥사(470~521)입니다.

    삼국시대 종요가 이미 천자문을 지었다고 하나, 현재 알려진 것은 주흥사의 천자문이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천자문은 '백수문' 혹은 '백두문'으로 불리우는 책인데요.

    이 천자문은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당시 양나라의 황제였던 무제가 신하였던 '주흥사'를 시켜 만든 책이었습니다. 당시 무제는 황제로서 시문에도 아주 뛰어 났는데요. 당시 신하였던 주흥사에게 황희지의 행서에서 중복되지 않은 한자 천개를 가져내게 한 뒤 4음절씩 한구절로 묶어 문장을 완성하도록 요구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주홍사가 만들었습니다.

    주흥사(470?~521)는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 사람입니다. 그에 대한 기록이 부족해 자세하게 알 순 없으나 대단한 수재였던 그에게 무제 임금이 하룻밤만에 만들도록 명하여 만든 것이 천자문이라고 합니다. (천자문은 다른 사람 몇몇도 만들었지만 우리가 흔히 배우는 천자문은 주흥사의 것에서 비롯됐습니다.)

    주흥사는 아는 건 많았지만 가난해 돈을 받고 낡고 글자가 빠진 책을 수선해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원래의 것과 한 글자도 안 틀리고 워낙 잘하다 보니 무제도 이를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주흥사를 불러 낡은 책(동진-삼국지에 나오는 삼국시대 이후의 나라- 의 서예가 왕희지의 글이 쓰인 책이었다고 합니다.)을 주고 이를 복원해보라고 하죠. 이에 주흥사는 완전한 복원은 힘드나 핵심 내용에 맞게는 할 수 있다고 하고 그렇게 해서 천자문이 만들어졌다 합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주흥사가 죄를 지어 죽게 되자 무제가 수재인 그의 능력을 아까워해 자신이 모아놓은 왕희지가 쓴 글자 1000개를 주고 문장이 되도록 잘 지으면(단, 하룻밤만에) 죄를 없애주겠노라 해서 만들어졌다고도 합니다.

    천자문은 자연현상, 도덕 등의 내용으로 4글자씩 되어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마지막 4글자를 뭘로 할까 주흥사가 끙끙대니 귀신이 나타나 언재호야(焉哉乎也. 별 뜻은 없습니다.) 로 마무리하라고 일러줬다고 하죠. 그리고는 너무 머리를 쓴 나머지 머리카락이 백발이 됐다고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불립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자문은 4언 절구 한시이자 대표적인 학문 습자 교본 입니다. 저자는 중국 남북조시대 양무제 시절 학자 주흥사. 삼국시대 종요가 이미 천자문을 지었다고 하나 현재 알려진 것은 주흥사의 천자문 입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통 천자문을 검색하면 주흥사 천자문이 검색됩니다. 중국 남조의 양나라 무제 때 주흥사(周興嗣)가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자문의 저자는 중국 남북조시대 양무제 시절 학자 주흥사 입니다.

    사국시대 종요가 이미 천자문을 지었다고 하나 현재 알려진 것은 주흥사의 천자문입니다.

    주흥사가 양무제의 명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며, 두가지의 설이 있습니다.

    양무제가 그의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무작위로 훼손된 고서를 하나 뽑아 이 책의 내용을 복원해보라 했다는 설, 주흥사가 우연한 일로 양무제의 노여움을 사 주살 당하게 되었는데 이를 용서받는 조건인 하룻밤 안에 4자씩 250구절 시를 짓되, 한 글자도 같은 글자를 쓰면 안된다 에 맞게 만들었다는 설이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자문은 중국 남조 양 (502~549)의 주흥사가 양 무제의 명을 받아 지은 책으로, 모두 다른 한자 1000자를 사용하여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만들었다.고 전해 집니다. 아이들의 한문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고 하며 보통 처음 글을 배울 때 가장 기초가 되는 책 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천자문』이 한자(漢字)를 배우는 입문서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그리하여 이 책에 ‘天 하늘 텬’과 같이 새김(뜻)과 음을 달아 읽게 되었고 이 석음(釋音)을 단 책이 간행되었다.


    지금까지 석음이 있는 『천자문』으로 알려진 가장 오랜 책은 1575년(선조 8) 광주(光州)에서 간행된 것이다. 맨 끝에 ‘만력삼년월일 광주간상(萬曆三年月日光州刊上)’이라는 간기가 있는 책으로, 현재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중앙도서관 소장본이 알려져 있는데 『광주판 천자문』이라 한다.


    이와 비슷한 책이 일본의 오히가시하야루기념문고(大東急紀念文庫)에 소장되어 있음이 최근에 밝혀졌다. 이 책에는 간기가 없어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위에 말한 『광주판천자문』보다 조금 뒤에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천자문』은 명필 한호(韓濩, 호는 石峯)의 글씨로 1583년 서울에서 간행된 『석봉천자문』이다. 현재 전하는 책들 중에서 경상북도 영주의 박찬성(朴贊成) 소장본과 일본 나이카쿠문고(內閣文庫) 소장본이 원간본 또는 이에 가까운 책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봉천자문』은 임진왜란 뒤에도 여러 차례 중간되어 우리나라에서 『천자문』이라면 이 책을 연상하리만큼 일반화되었다.


    18세기에 들어 『주해천자문(註解千字文)』이 새로 간행되었다. 『광주판천자문』이나 『석봉천자문』은 한자 하나에 하나의 석음만 달았는데, 이 책은 둘 또는 세 석음을 단 경우가 많이 있으며, 이에 더하여 간단한 주석과 함께 250구에 대하여 통해(通解)를 베푼 점이 다르다.


    『주해천자문』은 1752년 홍성원(洪聖源)이 편찬하였다. 1804년 방각본(坊刻本)으로 간행한 책도 있는데, 이것은 신증본(新增本)이다.


    이 밖에 그 현존본이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황윤석(黃胤錫)의 저서 『이재유고(頤齋遺稿)』에 『영남인본천자문(嶺南印本千字文)』이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자문은 중국 고대의 한자 교육 시스템에서 사용되던 교재로, 양기와 소나문파가 작성한 것입니다. 이 교재는 한자의 기초를 익히고 학습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중국의 통치 철학과 사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천자문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한자부터 시작하여 순차적으로 어려운 한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천자문을 외워 쓰는 방식으로 한자를 익히고 문화적인 교양을 배웠으며, 중국에서 오랫동안 교육 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 양(502~549)의 주흥사가 양 무제의 명을 받아 지은 책으로, 모두 다른 한자 1000자를 사용하여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