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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대학생
호기심대학생24.01.19

반고흐의 생애에 대해 알려주세요!!

반고흐가 되게 불행한 삶을 산 화가로 유명한데 어떠한 생애를 살았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린 시절과 나중에 성인이 된 시절을 나누어서 설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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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 북쪽에 위치한 준데르트 지역에서 출생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목사, 어머니는 1857년 그의 동생을 낳고 아버지의 이름을 따 테오도루스라 이름지었습니다. 1864년 빈센트는 부모와 떨어져 기숙학교에 다녔는데 가난으로 15세때 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1869년 빈센트는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판화를 복제해 판매하는 일을 시작, 당시 빈센트는 모범적이고 성실한 청년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873년부터 빈센트의 동생 테오도 브뤼셀 지점 구필화랑에서 일했으며 1873년 3월 빈센트는 헤이그를 떠나 구필화랑 런던지점으로 발령받아 영국에 머무르며 1875년부터 파리 지점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런던에서 부터 신비주의에 빠져 화랑일을 소홀히 했고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으며 결국 화랑에서 해고당합니다.

    성직자의 길을 열망하던 그는 파리를 떠나 영국 램스케이트로 갔고 매일 성경을 탐독하고 설교활동을 했으며 복음 전도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에 전념하나 암스테르담 신학 대학에 낙방하고 전도사 양성학교에서도 그의 자질이 부족하다 여겨 6개월간 평신도로서 전도활동만을 허가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보리나주로 갔고 이곳에서 그는 최하층민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오두막에서 지내며 전도활동에 전념하나 그의 광신도적인 기질과 격정적인 성격으로 결국 교회로부터 전도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1880년 실의에 빠지는 그는 그동안 계속 해온 습작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라 믿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 그는 미술공부를 위해 파리로 갔습니다. 드로잉에 관한 기초지식이 부족했던 빈센트는 라파르트라는 5살 아래의 미술학도에게 드로잉을 배운 후 그의 외사촌이자 헤이그화파의 유명한 화가였던 안톤 모베의 화실에서 유화를 그리게 되면서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습니다. 이 시기 그는 그동안 열광했던 종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목사인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는 과격한 성격으로 자신에게 어떠한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작은 충고에도 심각한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의 성격으로 그에게 그림을 지도하던 안톤 모베와도 절교하게 됩니다.

    그는 크리스틴이라는 매춘부 출신의 여자와 동거하며 지냈는데 그녀는 알콜 중독에 매독환자였습니다. 빈센트 가족은 그가 크리스틴과 지내는 것을 우려하였고 동생 테오는 그녀와 헤어지기를 강요합니다. 빈센트는 그녀와 헤어지는 것을 괴로워했지만 생활비를 줄이고 그림에 전념하기 위해 그녀와 어린아이를 저버리게 되며 이때문에 양심의 가책으로 오래 고통받게 됩니다.

    빈센트는 브뤼셀, 헤이그, 앙베르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언제나 노동자, 농민 등 하층민의 생활과 풍경을 그렸으며 초기 걸작 감자먹는 사람들이 이 무렵의 작품입니다. 1886년 화상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생 테오를 찾아 파리에 나온 그는 코르몽의 화숙에서 베르나르와 툴루즈 로트레크를 알게 됩니다.

    인상파의 밝은 그림과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에 접함으로 그때까지의 렘브란트와 밀레풍의 어두운 화풍에서 밝은 화풍으로 바뀌었으며 정열적인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자화상이 급격히 많아진 것도 이 무렵부터이나 곧 파리라는 대도시의 생활에 질려 1888년 2월 보다 밝은 태양을 찾아 프랑스 아를로 이주합니다. 이후부터 죽을때까지의 약 2년 반은 빈센트 반 고흐 예술의 참다운 개화기였습니다. 그는 그곳의 밝은 태양에 감격했으며 아를의 도개교, 해바라기와 같은 걸작을 제작했습니다.

    한편 새로운 예술촌 건설을 꿈꾸고 고갱과 베르나르에게 그곳으로 올 것을 권유, 고생과의 공동생활이 시작되나 성격차이가 심해 순조롭지 못했고 그해 12월 그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켜 고갱과 다툼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랐습니다. 그 후 빈센트의 생활은 발작과 입원의 연속이었고 발작이 없을 때 그동안의 공백을 메우기라도 하듯 마구 그림을 그렸습니다. 발작과 그림 제작에 지쳐 파리 근교에 오베르에 있는 의사 가셰에게 찾아간 것은 1890년 5월로 한때 건강회복으로 발작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듯 했으나 다시 쇠약해져 끝내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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