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국군과 UN군은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고 서울 수복, 평양 점령,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갑니다. 당시 북한군은 거의 괴멸 직전까지 갔고
잔세력들이 백두산 인근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
습니다. 그런데 중공군이 대규모 군대를 보내서
국군과 UN군을 공격하였고 당시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에 맞서 핵무기를 사용하여 적의 진출을 막고
한반도 통일을 완성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트루먼 대통령은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을 경계하며
허락하지 않고 맥아더 장군을 해임시켜 버립니다.
맥아더 장군은 미 의회 연설에서 유명한 말을 남기지요. 노병은 죽지 않는다. 사라질 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중공군 규모가 대략 26만 쯤이었다고
했는데 한창 전쟁을 빨리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UN군에게는 중공군 참전이 사기가 꺽이는 일이었습니다. 병력도 부족해 지고 무기도 부족해
지고 당시 중공군은 이미 국공내전과 일본군과의
전투로 단련이 된 정예군이었습니다. 결국 국군과
UN군은 철수를 결정하고 그후 휴전선 부근에서
고지전이 벌어지면서 휴전협상이 길게 이루어 집니다. 국군과 UN군은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협상하기
위해서 한치의 땅이라도 더 빼앗으려 노력했고
결국 지금의 휴전선이 형성됩니다. 여담으로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스탈린이 중공군의 참전을 요구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련은 무기를 지원해
주었고요. 그리고 소련이 UN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을 한국전쟁에 끌어들여 그들의 전력을
소모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고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중공군의 공격과 소련의 지원으로 인하여 국군과 UN군은 최선을 다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철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