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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성큼걷는펭귄836
성큼성큼걷는펭귄83622.12.04

과거 기미상궁은 고위관료였나요?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는 음식을 맛보는 역할이었던 기미상궁은 고위관료였나요? 역할 자체를 보면 매 끼니 형벌을 받는 기분이었을거같은데 드라마를 보면 왕실까지 같이들어가는 사람이었으니 고위직 이었을거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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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기미를 보는 일은 아무 상궁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상궁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어른 상궁인 제조상궁(提調尙宮·큰방상궁)이 맡아 했다고 전해집니다.

    제조상공은 내전의 어명을 받들며 대소치산(大小治産)을 관장했는데, 왕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므로 권세를 쥔 상궁도 많았으며, 부하 나인들에게는 두렵고 어려운 존재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기미상궁은 목숨을 담보로 먼저 음식을 맛보는 것이지만 의외로 아무나 먹을 수 없는(임금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맛볼수 있다는 점에서 꽤 인기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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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테스티아입니다.

    * 상궁이었으므로, 유교, 성리학 체제 하의 국가에서 그 자체로 고위 관료는 아니었으며, 다만 왕이 고급진 음식이나 고급 한약 등을 맛 볼 때도 기미를 하였으므로 어느정도 궁녀들 사이에서는 있는 직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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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미상궁 즉 제조상궁은 정5품 후궁 다음으로 높은 벼슬 입니다.

    제조상궁은 700 명에 이르는 궁녀의 최고 수장이자 내명부의 재상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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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녀는 임금의 간택을 받아 후궁이 되는 경우 이외에는 고위관료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조선은 양반사대부의 나라로 문과를 통해야만 고위관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삼사라 하여 언관직이나 감사 등 청요직이 고위직으로 가는 출세길로 선호되었습니다. 이외에는 아무리 성과와 능력이 좋더라도 정삼품 이상의 오늘날 장관급이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동의보감을 편찬하고 의학계의 큰 공이 있던 허준 같은 경우는 극히 예외적 사례입니다. 따라서 궁녀나 내시는 왕의 신뢰를 받을지언정 고위직이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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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실록에 의하면 기미상궁에 대한 고위관리라는 기록은 없지만 궁궐의 상궁 직위는 나라에서 녹봉을 받는 직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신의 딸이 상궁이 되기위해 애를 썼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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