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충흔 전문가입니다.
튀김 요리에 쓰인 기름이 시간이 지나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변질되는 산패 현상은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산화 반응의 결과입니다. 식물성 기름에 풍부한 불포화 지방산은 탄소와 탄소 사이에 이중 결합을 가지고 있는데, 이 지점이 바로 산패가 시작되는 화학적 급소와 같습니다.
이중 결합은 단일 결합에 비해 화학적으로 불안정하며 주변의 산소와 반응하려는 성질이 매우 강합니다. 특히 요리 과정에서 가해진 높은 열이나 빛, 그리고 조리 기구에서 유래한 미량의 금속 성분들은 산소가 이중 결합 부위를 공격하도록 부추기는 촉매 역할을 합니다. 산소가 이중 결합에 달라붙으면 분자 구조가 뒤틀리며 연쇄 반응이 일어나고, 결국 거대한 지방산 사슬이 조각조각 부서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알데하이드나 케톤 같은 작은 크기의 휘발성 화합물들이 생성되는데, 이것들이 바로 코를 찌르는 산패취의 주범입니다. 또한 부서진 분자들은 서로 불규칙하게 엉겨 붙어 기름의 점도를 높이고 색을 탁하게 만듭니다. 신선했던 기름의 유연한 분자 사슬이 산소의 공격을 받아 불쾌한 냄새를 내는 독성 물질로 변모하는 셈입니다.
결국 산패란 산소가 지방산의 약점인 이중 결합을 파고들어 에너지가 높은 상태의 불안정한 구조를 무너뜨리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구조가 파괴된 기름은 영양소가 파괴될 뿐만 아니라 우리 몸속에서 세포를 공격하는 유해한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보관 시에는 산소와의 접촉을 피하고 빛과 열로부터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