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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점
창백한 푸른점24.04.27

과거 우리나라에 금주령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과거에는 백성들이 술을먹으면 안되게 금주령을 내린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금주령을 내린이유는 무엇인가요?

만약 금주령을 어기면 어떤 처벌을 내렸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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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때, 술을 만드는 데 곡식이 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주령을 내렸습니다.

    영조는 즉위와 동시에 금주령을 내려 조선 전역의 술을 모두 없애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명목적인 이유는 술을 만드는데 드는 백성의 수고와 술로 인한 사치를 막겠다는 것이지만 실제 의도는 자신의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근신하자는 의미에서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금주령이 내려졌어도 부유한 양반집에서는 몰래 소주를 만들어 먹는 일이 허다했으며, 국가 행사나 의례,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술이 필요했기에 그것까지 처벌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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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은 쌀로 술을 빚었기 때문에 흉년이나 기근이 발생하면 쌀의 소비를 줄여 식량 사정을 악화하지 않도록 금주령을 내립니다.

    예를 들어 1392년 조선 개국 직후 흉년이 들어 금주령이 처름 내려졌습니다. 특히 태종 때는 거의 매년 금주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금주령은 지방에서는 비교적 엄격하게 준행되었으나, 서울의 사대부·관료사회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고 단속도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금주령을 지키지 않으면 엄격하게 처별했는데, 심한 경우 삭탈관직에 귀양까지 가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실록의 기록을 보면 "금주령은 날로 엄하였으나 범하는 자는 그래도 그치지 않았다. 과천에 술이 있다 하여 그 지방관을 귀양보냈고, 또 강화도의 선상(船商) 중에 범한 자가 있으므로 강화 유수를 파직하였으며, 지방관인 양천 현감을 귀양보내고… 또 영광(靈光)의 뱃사람이 경강(京江)에서 술을 마셨다 하여 영광 군수를 남쪽 연변(沿邊)에 귀양보냈다." (<영조실록> 40년)와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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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금주령이 내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식량의 부족 입니다. 흉년이 들면 먹을 쌀이 부족한데 술은 쌀을 빚어 만듭니다. 이를 빛어서 먹으면 굶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흉년이 들면 금주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건국 초기에는 금주령이 수시로 내려졌는데, 실록에 따르면 태종은 백성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술을 올리지 못하게 했고, 세종 때는 술 마시는 것은 허용하되 과음하는 것을 금했다고 합니다. 중종 때는 금주는 물론이고 소주를 만드는 재료 중 하나인 누룩의 거래도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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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금주령이 내려진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큰 가뭄이 들거나 흉작·기근이 있을 경우 국가에서 술 마시는 것을 금하는 법령입니다.

    이러한 기간에 근신 절제함으로써 하늘의 노여움을 풀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로하며 식량과 비용을 절약할 목적으로 행하여졌습니다.

    1392년 조선개국 직후 흉작으로 인하여 금주령을 내린 것을 비롯하여 여러 대에 걸쳐 빈번하게 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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