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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내일도모레도
오늘도내일도모레도24.03.04

고구려 정벌에 왜 김유신은 참전하지않았나요?

백제에는 김유신이 직접 군을 이끌고 참전했는데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김유신은 명목상으로 총사령관일뿐이었지 참전하지않은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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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김유신은 661년(문무왕 1)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이 고구려 수도 평양을 포위하고 공격하다가, 겨울이 오면서 퇴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당군은 식량의 부족과 추위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함부로 퇴각하다가는 고구려군의 반격에 크게 당할 수 있어 곤경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때 김유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지략을 발휘하여 험지를 뚫고 당군에 무사히 군량을 전하고, 적군의 일부를 유인하여 격파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당군이 피해 없이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이렇듯 신라는 김유신을 중심으로 당이 효과적으로 고구려를 공략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김유신 장군이 당군을 지원하여 고구려와 전투에 참전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664년 70살이 되어 사직을 문무왕에 고할 정도로 연로했습니다.

    668년(문무왕 8) 삼국통일의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는 고구려 원정이 있었습니다. 이때 김유신은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대당대총관(大幢大摠管)으로 임명되었으나, 직접 출전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다른 장군들이 김유신의 출전을 청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무왕은 그의 나이와 건강을 생각했기 때문에 참전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즉 문무왕은 74세의 고령으로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의 논공행상에서, 그가 직접 출전하지 않았지만 문무왕은 김유신이 삼국통일에 큰 공이 있다고 하여 특별히 비상위(非常位) 최고 관등인 태대각간(太大角干)을 새로이 만들어 승진시키는 한편 식읍 5백호를 지급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정벌 전쟁에 김유신이 풍질로 직접 참가치는 못했다 하지만 같은 삼국사기 권제42 열전 제3 김유신 하에는 그와는 언뜻 다른 듯한 사정이 거론됐으니, 병이 아니라 문무왕의 뜻에 따라 수도에 머물렀다 한다고 합니다. 나까지 수도를 비웠다가 수도에 무슨 일이 생기는 비상사태에 대처할 인물로는 김유신 밖에 없으니 그래서 문무왕이 남겨두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감국의 역할을 김유신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원정군의 촤고 총사령관인 대당대총관에 임명되었으며 당나라와의 전장에 직접 참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