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암일기에 의하면 아침에 일어나자 우선 거울을 보고 머라를 빗어 상투를 틀고 세수를 하려 대청으로 갑니다. 추운 겨울에는 방안에서 했겠지 요. 하인이 대야에 물을 담아 방대청에 준비해놓 으면 먼저 입안을 헹구고 이를 닦았습니다. 오늘날은 치약을 사용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가는 버 드나무 가지로 잇 사이에 낀 음식물을 제거했습니다. 이를 닦는 것으로는 궁궐의 왕족들은 벛꽃 말린 것을 곱게 갈아서 소금과 함께 사용했으며, 평민 들은 소금을 손에 묻혀 이를 닦았고 이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은 지푸라기나 모래로 닦고 쑥을 다린 물로 헹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충치가 거의 없었 다고 합니다. 충치는 설탕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단 것이 귀했던 조선시대에는 충치가 거의 없었고 대신 나이기 들면 잇몸이 약해져 풍치가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입에서 악취가 날까봐 염려되어 입에 계설향을 머금었다고합니다. 세안은 얼굴에 물을 묻히고 조두를 손에 담아 얼굴에 문질러서 얼굴의 더러움을 해결하였으며 몸에서 향기가 나도록 향냥 을 달았고, 부채살이 모이는 끝에 향선추를 달아 장식했습니다 부채를 부칠 때 바람에 실려 향기가 퍼졌습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멋쟁이 였던것 같습니다. 일반 서민들은 단오날에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즐겼고 양반들처럼 씻고 치장할 수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