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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내일도모레도
오늘도내일도모레도23.09.16

조선의 양반들은 한글창제를 반대했나요?

일부학자들을 제외하고 조선의 양반들은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하는것에 대해서 반대했나요? 반대하는 유생들이 들고 일어나거나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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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9.17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444년 2월 최만리, 신석조, 김문, 하위지, 정창손 등 집현전 내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6가지 이유를 들며 반대상소를 올렸습니다. 이때 상소를 올린 집현전 학자들의 대표격이었던 부제학 최만리가 한글반포에 대해 크게 반대하다가 세종의 노여움을 사 책망받고 투옥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날 석방되었으나 사직하고 낙향했습니다.

    상소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의 한자와 방식이 다르다.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것은 일본, 여진, 몽골 같은 오랑캐나 하는 일이다.

    -원래 존재하던 이두는 조악하기는 하나 한자를 배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자와 관련이 더 적은 한글을 쓴다면 한자를 아는 자가 적어질 것이다.

    -훈민정음을 반포하면 형사(刑事)에 있어서 억울함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하나, 이는 재판이 공정해야 해결되지 훈민정음과 관계없는 문제이다.

    -논의도 없이 갑작스럽게 글자를 만들고 운서를 고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동궁(세자)이 해야 할 다른 일이 많은데 훈민정음 창제에 너무 관여하고 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실록에서 자문을 받기 위해 신하들을 불렀다가 격렬한 반발을 받고 참다 참다 분노한 세종이 반대한 신하들을 전부 의금부에 가두고 한 명은 파직시켰을 정도로 당시 기득권층의 반발이 매우 심했습니다.

    1444년 2월 최만리, 신석조, 김문, 하위지, 정창손 등 집현전 내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6가지 이유를 들며 반대 상소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글 창제 당시에 최만리를 비롯한 양반들은 언문의 창제로 인하여 학문적 경지가 떨어지고, 일반 민중들과 사족 들의 문자 공유로 인하여 조선 사회를 지지 하던 신분제의 혼란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그 반포를 반대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자기 밥그릇 뺏길 까봐 두려워 했던 것 입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글창제 반대 이유는

    첫째, 우리의 문자를 만드는 것이 중국을 사대하지 않는 중국에 반하는 행동이라 생각했기 때문

    둘째, 선조들의 지혜가 한문에 담겨 있는데 새 문자를 사용하면 그 지혜를 모두 잃는다 라는 생각 때문

    셋째, 노비나 서민들이 글자를 알면 양반들이 불리한 점이 많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 이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 입니다.

    ✅️ 네, 그렇습니다. 사실상 한글 창제를 통해 한문을 통해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던 자기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협이 될 수 있어서 그랬던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최만리 등을 중심으로 상소가 이어지기도 하는 등 반대가 극심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권태형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중국과의 관계를 우려하며, 백성들의 의식 상승을 우려하며 꽤 반대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만리가 대표가 되어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들과 함께

    대대로 중국의 문물을 본받고 섬기며 사는

    처지에 한자와는 이질적인 소리 글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에 대해서 부끄러운 일이라며

    반대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