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글은 창제 직후 신료들의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당시 지배층은 어려서부터 한자를 익히기 때문에 한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서민 계층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먹고살기에 바빴던 그들은 어려운 한문을 익힐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경우는 드물었지요.한글은 이러한 서민들이 좀 더 쉽게 글자를 다룰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부 선비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최만리의 반대 상소문’ 입니다. 최만리는 집현전 부제학으로 집현전의 리더에 가까운 역할을 맡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가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에 반대 상소를 냈다는 것은 그 때 당시의 높은 직급의 사람들의 생각을 적나라 하게 보여준다고 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