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중화사상과 유교사상에 어긋난다고 해서 반대를 한 것입니다.
한자의 구성 원리와 어긋나는 표음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는것을 중국에 대한 사대 원칙에 어긋난다고하여 최만리 뿐만 아니라 이 당시 대부분의 조선 양반들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중국 외에 문자를 가진 나라는 모두 문화가 낮은 나라였고, 이들은 오랑캐로 불렸습니다.
그래서 자체적인 문자를 만드는 것은 중화를 버리고 스스로 오랑캐가 되려는 것으로 옳지 않다고여겼다합니다. 그리고 신라때부터 이두를 써와서 불편이 없고, 이두는 한문에서 학문 진흥에 도움되지만 훈민정음은 그렇지 않다고 여겼다합니다.
양반들은 한자를 몰라도 쓸 수 있는 훈민정음 때문에 학문이 쇠퇴해 질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모든일은 신하들과 의논하여 결정을 했으나, 훈민정음만은 그렇지 않았다고합니다.
훈민정음 창제와 같은 중대한 일을 신하들의 의견을 모으지 않고 독단으로 진행하는것은 옳지 않다고 여기면서 반대에 힘을 더 실었다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