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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페퍼민트23.07.27

백제 금동대향로는 왜 유명한가요?

한국사에서 여러 가지 항로가 있었을 텐데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금동대향로가 특별히 이름이 더 알려지고 유명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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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2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형상과 예술성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백제의 금동대향로(金銅大香爐)는 1993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부여 능산리절터를 발굴하던 도중에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금동대향로가 보여준 완벽한 정형성과 뛰어난 예술성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으며,

    동시에 백제 장인의 예술혼과 기술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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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금동대향로가 특별히 이름이 더 알려지고 유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백제시대의 금속공예 기술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금동대향로는 그 당시의 기술을 집약하여 만든 작품으로, 그 아름다움과 정교함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 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문화와 종교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금동대향로에는 연꽃, 사자, 용 등 다양한 동물과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들은 모두 백제의 문화와 종교를 상징합니다.

    • 금동대향로는 백제의 역사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금동대향로는 6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는 백제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문화와 종교, 역사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금동대향로는 한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추천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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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 금동대향로가 지닌 조형성이나 회화적인 구도는 향로의 기원지라 할만한 중국의 것을 초월하는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고 7세기 초 백제인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극대화 된 걸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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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96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향로는 1993년 12월 12일 부여 능산리의 백제시대 고분군(古墳群)과 사비성(泗泌城)의 나성(羅城) 터 중간에 위치한 백제유적 발굴 현장에서 백제시대의 다양한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었다.


    동체(胴體)를 연꽃봉오리로, 뚜껑은 산모양으로 만들어 많은 물상(物象)을 등장시켰고 정상에 봉황을, 아래에는 용을 배치하였다. 이로 보아 이 향로는 불로장생하는 신선(神仙)이 용과 봉황과 같은 상상의 동물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다는 해중(海中)의 박산(博山) 즉 신선세계(神仙世界)이자 별천지(別天地)·이상향(理想鄕)을 닮게 만들었다는 전형적인 박산향로(博山香爐)임을 알 수 있다.

    이 향로의 뚜껑에 박산은 5단(段)으로 되어 있다. 그 각단은 5봉우리로 구성되어 결과 큰 산은 25개이다. 이 큰 산의 각단은 엇갈리게 배치되었고 또 큰 산과 연결되는 49봉우리도 있어 결과 산은 매우 중첩된 양상이 되었다.


    이 산에는 최정상의 봉황을 비롯한 37마리의 상상의 동물과 악사(樂士) 5인을 비롯한 17인의 신선이 있다. 또 나무 6그루, 향연구멍(香煙穴) 12개, 산중턱을 가르며 난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입체적으로 돌출되어 낙하하고 있는 폭포 그리고 낚시터가 된 호수(湖水)도 있다.


    이 향로 노신(爐身)을 감싸 장식한 연꽃도 뚜껑인 산의 5단과 일치시키려고 5단 연판(蓮瓣)으로 나타냈다. 이 연판에 2인의 신선과 25마리의 상상의 동물을 나타냈다. 이 동물들은 이곳이 물 속과 물가 부위임에서인지 주로 물가에 사는 동물 또는 물고기를 비롯한 수중(水中) 동물로 구성되어 있다.


    유려한 동작을 보여주는 이 향로의 용은 대좌의 역할을 한다. 가느다란 머리 위로 넓고 무거운 향로의 동체(胴體)를 짊어지고 있다. 용의 몸통, 꼬리, 수염, 머리카락 등은 연꽃이나 연꽃과 관련된 당초문으로 나타냈다. 몸통은 착지면으로 갈수록 그 면적이 확대되고 있다. 몸통 맨 바깥쪽에는 이 향로가 해중신산이고 용은 해중(海中) 동물임을 알리려는 듯 바다의 파도(波濤)도 나타냈다.

    이 향로 정상에 있는 새는 맨 아래에 위치한 용(龍)과 대비되어 나타내진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신수인 봉황이다. 봉황은 박산(博山)에서 양(陽)을 대표하는 신수로서 그리고 음(陰)을 대표로 하는 맨 아래에 배치된 용과 대칭되어 맨 정상에 안치되었다. 봉황은 막 비상하려는 듯 날개와 꼬리를 거의 50도(度)가량으로 펼치고 있다. 봉황의 부리 밑에는 용을 비롯한 신수(神獸)의 입 언저리에 배치되던 여의주가 있다. 봉황은 절로 노래하고 절로 춤을 춘다고 하며 노래는 묘음(妙音) 또는 오음(五音)이라고 하는 것에서 보듯 예로부터 음악과 관련된 동물이다. 이 향로에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동반된 것, 다섯 원앙(鴛鴦)이 봉황을 응시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연화화생이란 연꽃에 의하여 만물(萬物)이 신비롭게 탄생되는 생명관을 말한다. 이 향로는 신산(神山)인 박산을 표현한 것이지만 향로에 표현된 용·봉황·연꽃·산 그리고 수많은 물상(物像) 모두가 이 연화화생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다. 연화화생의 중심을 이루는 연꽃은 이 향로의 경우 동체(胴體)인 연꽃봉오리이다. 그런데 연꽃은 물 속에 뿌리를 박고 물 위로 꽃을 피우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 향로에서의 연꽃은 용을 통하여 물 속과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이 향로의 연꽃은 용의 입과 연결되고 있다. 이 연화는 단순히 용의 입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바로 동아시아의 신수(神獸)인 용의 입에서 피어나는 기(氣)이다. 결국 용과 연꽃이 상호 동격인 것이다. 용의 입에서 화생된 이 향로의 연꽃은 노신(爐身)에서 보듯 만개한 연꽃이다. 그런데 이 만개한 연꽃은 뚜껑 부위에서는 산(山)으로 화생(化生)하고 있다. 이 산은 신선세계의 중심인 산(山), 박산(博山)이다. 결국 박산이 연꽃에 의하여 화생된 것이다.

    신선사상에는 음양오행설도 포함되고 있다. 이 향로에서 음양관은 맨 정상에 봉황을 배치하여 양을 상징하고, 맨 아래에 용을 배치하여 수중세계이자 음을 상징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오행관은 뚜껑의 산이 5방위로 또 5단으로 솟았으며 또 각 단은 5봉으로 이루어져 있고 5곳의 박산문(博山文)을 남긴 것, 원앙 5마리, 악사(樂士) 5인, 5개의 구멍을 2겹으로 뚫은 향연구멍(香煙穴) 등으로 반영되었다.


    신선세계 또는 신선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도교(道敎)에서는 의례히 향을 피우며 음악이나 춤이 동반함을 본다. 이 향로의 악사도 같은 차원에서, 즉 신선세계의 음악의 연주자로서 등장한 것이라고 본다. 또 악사는 예로부터 음악을 동반하며 나타내던 봉황 즉 이 향로 정상의 새와 관련된다. 즉 봉황이 절로 노래하고 절로 춤을 추자 이에 동반하여 악사가 선계(仙界)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악기를 정면에서 왼쪽으로 살펴보면 커다란 둥근 몸체에 기둥이 꽂혀 있는 현악기는 우리나라의 ‘월금(月琴)’이나 중국의 ‘완함(阮咸)’과 흡사하다. 세로로 불고 있는 관악기는 ‘종적(縱笛)’이다. 가늘고 길이가 다른 관(管)을 여러개 묶은 관악기는 ‘배소(排簫)’이다. 배가 불룩하고 양쪽이 좁아지는 몸통 위에 두 손을 얹고 있는 현악기는 ‘琴(금)’으로 보인다. 한 손으로 윗판을 들고 있는 타악기는 ‘동발(銅鉢)’로 보여진다.


    동체를 연꽃봉오리형으로 뚜껑을 산모양(山形)으로 만든, 그리고 유달리 봉황(鳳凰)과 용(龍)을 돋보이게 배치한 이 박산향로를 일명 용봉봉래산향로(龍鳳蓬萊山香爐)라고도 부르고 있다. 여기서 종래 흔히 불리던 박산이라는 명칭보다 봉래산(蓬萊山)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은 향로의 박산이 일찍부터 동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 쪽에 있다는 상상의 신산(神山)인 삼신산(三神山)을 가리키고, 또 그 삼신산 가운데서도 봉래산을 가장 많이 언급함에서이다. 결과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근한 이상향으로 알려진 봉래산이란 이름을 이 향로에 부여한 것이다.

    이 향로는 같은 박산을 표현한 6세기 전반(前半)에 제작된 백제 무령왕릉 출토 동탁은잔이나 7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는 부여 외리 출토 백제문양전과 비교하여 볼 때 더욱 다양하면서도 세련되고 발전된 모습이다. 따라서 이들보다 이 향로는 약간 시대가 내려가는 7세기 전반(前半)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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