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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한호저172
까칠한호저17223.01.31

사자왕 리처드는 왜 사자왕이라고 불리나요?

중세의 이야기하면 십자군 전쟁과 사자왕 리처드1세의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자왕 리처드는 왜 사자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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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잉글랜드의 헨리 2세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 사이에서 태어난 세 번째

    아들이다. 생애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냈으며, 그 용맹함으로 인해

    사자심왕(프랑스어: Cœur de Lion, the Lionheart)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후 중세 기사 이야기의 전형적인

    영웅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자료출처: 위키백과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리처드 1세(1157~1199)는 영국의 왕 헨리 2세의 아들 여덟 명 중 가장 용맹스러웠다고 하지요. 큰 키에 유달리 넓은 어깨까지 전사의 신체 조건을 타고났다고 합니다. 형제들을 물리치고 아버지와 전쟁을 벌인 끝에 1189년 7월 마침내 왕위를 계승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듬해인 1190년 7월에 리처드 1세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다며 영국을 떠났습니다.

    이국 땅에서의 고된 생활은 견디기 어려웠다고 하지요. 결국 함께 참여한 프랑스의 왕 필리프 1세도 고국으로 돌아갔구요. 그러나 리처드 1세는 끝까지 남아 이슬람 세력들을 차례로 무찌르며 살라딘을 위협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리처드는 ‘사자의 심장을 가진 것처럼 용맹하다’는 의미로 사자왕(Lionheart)이라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윤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사자왕 리처드의 본명은 리처드 1세(1157~1199)입니다. 영국의 왕 헨리 2세 아들로 큰 키와 유달리 넓은 어깨까지 전사의 신체조건을 타고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형제들을 물리친 후, 아버지와 전쟁을 벌인 끝에 1189년 7월 마침내 왕위를 계승받고, 이듬해인 1190년 7월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다며 영국을 떠났습니다.


    1095년 ‘십자군 전쟁’을 일어납니다. 십자군 전쟁 제1차, 제2차 이후 이슬람 세력의 왕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손에 넣습니다. 이때 리처드 1세는 병력을 이끌고 제3차 십자군 전쟁을 나섭니다. 이때 영국의 왕 리처드 1세는 제3차 십자군 전쟁에서 보여준 용맹으로 ‘사자왕’ 또는 ‘사자의 심장’이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제3차 십자군 전쟁에서 모두가 이국 땅에서의 고된 생활은 견디기 어려워서, 함께 참여했던 프랑스의 왕 필리프 1세도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리처드 1세는 끝까지 남아 이슬람 세력들을 차례로 무찌르며 살라딘을 위협했습니다. 덕분에 리처드는 ‘사자의 심장을 가진 것처럼 용맹하다’는 의미로 사자왕(Lionheart)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