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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칠팔매132
똑똑한칠팔매13223.05.01

목화씨는 문익점이 최초가 아니라는 말도 있던데 사실인가요?

어린시절 목화씨는 문익점이 붓통에 숨겨 들어와 우리나라에 들여왔다고 배웠는데,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던데 뭐가 사실일까요? 문익점이 최초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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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목화씨를 들여온 인물은 문익점이 맞습니다

    다만 보급에는 문익점의 장인 정창익이 크게 기여했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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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민국 목화의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 시절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이것을 가지고 온 것으로 유명했지만, 2010년 백제 시대의 면직물이 출토되면서 목화 도입의 원조를 내놓아야 할 판이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목화는 온난하고 건조한 기후인 인도의 고원지대가 원산지인 만큼 장마와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의 기후와는 잘 맞지 않아 극소수만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런 희소성으로 인해 그 용도 또한 높으신 분들의 사치품이나 의례용으로 사용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당장 면직물 유물이 출토된 곳을 보면 절터란 걸 확인할 수 있다. 왕실이나 귀족의 원찰이었다면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 그리고 백제 이후로도 삼국사기 색복지를 보면 통일신라 중기 사람들의 복식으로 견직물, 삼베, 소가죽 등이 주로 언급되고 있으므로 문익점 이전에 면직물이 존재했다 쳐도 그다지 대중적이진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동북아시아 기후에 맞게 개량된 퍼진 중국제 종자를 들여와 서민 계층에 대중화한 것은 여전히 문익점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로 덕분인지 조선 시대에는 공신으로 꼽혔다.[4]

    다만 위인전에 나오는 것처럼 붓두껍에 숨겨서 목숨 걸고 가져온 것은 아니다. 문익점의 목화와 관련해서 3대 거짓 정보가 있는데, '중국의 강남으로 3년간 유배', '붓두껍', 그리고 '목화는 수출 금지 품목'이 그것이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후손들이 점점 부풀린 케이스. 세종, 세조실록에서도 이 이야기는 많이 인용되고 있으니 전형적으로 성공한 사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해서 강남 드립이라거나, 조선 건국에 부정적이라서 폄하당했다거나 하는 것이 왜 의미없는 이야기인지는 문익점 문서를 참고.

    여담으로 비단을 중국이 독점하기 위해 누에의 밀반출을 금한 적이 있는데, 동로마 제국의 사신이 위의 일화처럼 지팡이 같은 곳에 누에 알을 숨겨서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 누에 재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목화 씨 밀반입 일화의 모티브가 되었을 거라 추측할 수 있다. 둘 다 직물 원료이기도 하고...

    목화의 전래가 기존의 삼베옷보다 백성을 따뜻하게 해준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화로 만드는 무명천은 비쌌고, 조선시대에는 이 무명천으로 화폐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평통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조선의 기축통화나 다름 없었다.[5] 그러니 일반 평민들은 겨울나기 옷 몇벌을 가지는 정도가 일반적이었고 설빔이라 해서 새해 첫날에 옷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던것도 옷을 짜내는것이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옷을 시장에서 사입는것도 부담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학솜 및 수입 목화와의 경쟁에 밀려 오늘날 한국산 목화는 산업용 수준으론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국의 목화 농업은 조선 시대 때 일본에 수출까지 했었을 정도[6]로 기반이 있었고, 개화기 때 수입 목화가 들어오면서 한 번 타격을 받았으나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한 남면북양 정책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인 일제강점기까지는 계속 성장해 나갔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당시 섬유 공업이 가장 발달해 있던 수도권이 초토화되고, 이후 미국의 원조로 대량의 미국산 원면이 들어오면서 사실상 목화 농업은 끝났다. 다만 목화 재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유기농 목화솜을 찾는 수요 때문에 소량으로 목화를 재배하는 농가들이 남아 있다.

    혹시라도 자기 집에 옛날 어머님이 혼수품으로 가져온 진짜 한국산 목화솜 이불 같은 게 있다면, 다시 구하기 힘든 물건이니 알아서 잘쓰자. 목화 솜은 오래 되면 뭉치기 때문에, 80년대만 해도 동네마다 이것을 얇게 떠서 풀어 주는 솜틀집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여기서 솜을 조금씩 빼돌리는 게 뉴스에 나왔다. 이런 이불을 덮던 사람들은 화학솜은 덮는 느낌이 안 나서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는 재래시장에서 몇 곳이 잔존하는 형태. 이런 솜틀집에서 솜을 푼다고 손님들이 맡긴 이불에서 진짜 솜을 빼고 더러운 쓰레기 솜을 넣는 행위가 시사프로에 나오기도 했다. 구식 목화솜 이불의 경우 매우 두꺼워서 한겨울에도 덮기 힘들 때가 있는데, 이를 재활용해서 좀 더 얇은 봄/가을용 이불로 나눠 만들기도 한다.

    조선의 영조가 왕비를 뽑는 시험을 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두 장미, 모란 같은 꽃을 언급할 때 정순왕후 김씨가 백성을 따뜻하게 하는 목화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대답해서 왕비로 채택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목화가 지력 소모가 심한 작추물이라 농민들의 고생이 심했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사실.

    출처: 나무위키 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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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 위덕왕 시기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충남 부여군 능산리의 절 유적에서 목화에서 뽑은 면사로 짠 직물이 발견되었고 이에 문익점이 고려에 처음으로 목화를 들여온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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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문익점이 목화를 들여온 이야기는 원나라의 강남으로 귀양가고
    귀양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몰래 붓뚜껑에 숨겨왔다는 겁니다.
    하지만 당시 목화는 원나라의 반출금지 품목이 아니었슴니다.
    길가에 널려있는 목화가 반출금지 품목이었을 리가 없져.
    또하나는 원나라의 강남에 귀양가는데 귀양에서 돌아오다 목화씨 10개를
    숨겨온다는데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씨는 강남산 다년생 목화가 아닌
    강북산 1년생 목화임니다.
    문익점이 목화를 들여온 사실이 각색된건 다음과 같은 이유임니다.
    문익점은 고려 충혜왕때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서 공민왕때 사신의 일행으로
    원나라에 가게 됨니다. 당시는 공민왕의 개혁정치로 고려와 원과의 관계가
    불편할때 였죠. 공민왕의 배원정책에 불만인 원나라는 원나라에 있던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봉하여 덕흥군을 고려에 보내는데 문익점이 원나라로 간 시기가 이때
    였죠. 이에 문익점의 사신일행은 공민왕과 덕흥군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문익점은 덕흥군을 선택함니다. 고려에는 그 이전에도 원나라에 의해 세워진
    왕들이 많았으므로 대부분 덕흥군을 선택했죠.
    그런데 당시는 원나라 말기로 원나라에게는 그 만한 힘이 없어 덕흥군은 공민왕에
    패해 덕흥군을 선택한 사람들은 역적으로 몰리게 되어 이듬해 문익점은 귀국,
    파면당하여 고향으로 낙향함니다. 이때 귀국하면서 목화씨를 가지고 오며
    강남으로 3년동안 귀양간것이 아니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문익점은 정천익과 함께 목화 보급에 성공하였으며 목화의 도입으로
    재배가 쉬워졌으며 많은 사람을 추위로 부터 구함으로써 의복혁명을 일으킴니다.
    이러한 목화보급의 성공으로 그의 후손들에 의해 점점 각색되어 극적인 이야기가
    된 것임니다.
    공민왕에 반대한 것이 덕흥군에 반대하여 귀양을 갔으며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몰래 목화씨를 들여온 것으로...
    목화재배 성공 후 문익점은 다시 전제개혁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입장에 서 다시
    파면당하며 다시 낙향합니다.

    이렇듯 문익점은 정치적으로는 실패하였으나 목화를 보급함으로써 큰 업적을 남긴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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